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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스런 제주

‘한국야구명예전당’을 가보니

by 광제 2008.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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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년, 한국야구의 역사가 한자리에

-2008 포스트 시즌에 찾아간 명예의전당-

이 포스트를 보시는 분 중에는 분명히 "어어? 한국에도 야구명예의전당이 있었나?"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1998년에 개관을 하였으니 정확히 10년째를 맞고 있는 ‘한국야구명예전당’을 찾아가봤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프로야구의 가을잔치인 포스트시즌이 한창 진행중이라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전당이 있는 서귀포의 강창학공원으로 향하였습니다.

한국에 프로야구가 출범한지 26년, 명예전당이 문을 연지도 어언 10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 야구명예전당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언젠가는 블로거뉴스를 통하여 소개를 해야지 해서 찾은 것은 사실 한달여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찾은 날이 하필이면 휴관일인 월요일이었습니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리면서 눈길을 잡은 것은 다름아닌 박물관내 사진촬영금지 문구였습니다. 촬영이 안된다면 글솜씨가 없는 제가 이곳을 소개할 길은 막막해집니다. 사전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저 자신을 탓할수 밖에요.


몇일전 명예전당 관리관청인 서귀포시청에 문의를 하였습니다.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이유에 대한 문의였죠. 카메라 후레쉬 발광에 따른 소장품들의 변색을 우려한 조치더군요. 다행히 후레쉬 발광을 하지 않기로 하고 관계자의 적극적인 도움하에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십년 한국야구역사의 숨결이 깃들어 있어

행여 명예전당으로서 기대에 못미치는 보잘 것 없는 자료들로 인하여 실망감만 안고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던 부분은 촬영을 시작하면서부터 눈길을 붙잡아두는 하나하나의 소중한 소장품을 접하는 순간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프로스포츠의 역사가 찬란한 미국에는 각 프로종목마다 명예의전당이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로스포츠의 본고장 미국의 명예전당을 가본적은 없으나 1869년 공식적인 프로야구단을 출범시킨 미국야구의 명예전당과 비교하는 것은 터무니 없을지 모르지만 이제 갓 출범한지 26년째인 한국야구가 보유하고 있는 귀한 자료들과 수십년 한국야구역사의 숨결은 야구팬으로서 무한한 자긍심을 갖기엔 충분해 보였습니다.

 
 
 
 
 
 

 야구인들의 애정과 관심이 박물관 개관으로 이어져

한국야구명예전당은 야구인 이광환씨가 1982년 여행중 제주도경치에 매료되어 부지를 매입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1994년 준비를 시작 1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1995년 4월12일 제주시 하귀리에 ‘야구의집’이란 이름으로 개관을 하였습니다. 사재를 털어 운영하던 이광환씨는 ‘야구박물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을때쯤 1998년 1월 서귀포시가 ‘야구박물관건립’을 결정하자 이광환씨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야구관련 애장품 3000여점을 서귀포시에 기증하였습니다. 3000여점의 자료들 중에는 미국 카디널스 팀에서 코치를 하면서 모은 자료,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에게서 얻은 물건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야구선수들로부터 기증 받은 각종 야구 기념품들로서 세계야구역사의 기록사진 7백여점과 유니폼, 글러브, 배트, 변천자료 2백여점, 국내 외 주요경기 영상자료 5백여점과 국내 8개 프로야구 구단 관련 기록물 1백여점 등입니다. 서귀포시는 야구박물관 명칭을 ‘한국야구명예전당’으로 명명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박물관으로 기록되는 이 곳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설명>
: ‘한국야구사’ 최초의 야구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 던 해에 창단 되었으며 최초일 뿐만 아니라 최강이었고, 황성신문에 경기 결과가 실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야구단, 사진은 YMCA야구팀의 1912년 당시 선수단. 좌로부터 송태근, 김영제, 이태훈, 이원용, 박천병, 현홍운, 현창운, 김주호, 박영근, 유용탁, 허성

:  실업야구가 오늘날 프로야구와 같은 풀리그 페넌트레이스을 처음 도입한 1964년, 야구기록을 보관하고 정리하는 작업도 처음이뤄졌는데 그해 9월23일 크라운맥주 소속의 투수 고순선이 철도청과의 경기에서 한국야구역사에 길이 남을 실업야구 최초 퍼펙트 승을 달성하였습니다. 사진은 고순선과 당시 실업야구연맹으로부터 받은 상장, 그리고 트로피

: 1965년 당시 고교야구대회에 제출한 것으로 보이는 중앙고 선수들의 선수 등록카드 아래 왼쪽의 교복복장을 한 이광환씨가 보입니다.

 
 
 
 
 
 

<사진설명>
좌상: 프로원년 6개구단 선수명단이 적혀져 있는 각구단의 패넌트들. 해태타이거즈의 경우 선수 14명 코칭스텝 3명,총 17명이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당시 야구단 규모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밖에 MBC청룡 25명(코칭스텝4명), OB베어스 29명(코칭스텝4명), 삼성라이온스 23명(코칭스텝2명), 삼미슈퍼스타즈 27명(코칭스텝4명), 롯데자이언츠 20명(코칭스텝2명) 등이었습니다. 6개 전구단의 선수와 코칭스텝 인원을 전부 합해도 141명이었습니다.

: 원년 OB베어스의 박철순 투수가 입었던 유니폼과 기념품들과 옆에는 국보급 투수 선동렬의 세계야구선수권당시 입었던 국가대표 유니폼과 기념품들.

좌하: 1981년 모든 준비를 마친 한국프로야구는 1982년3월27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첫 고성을 울렸습니다. 쌀쌀한 날씨속에서도 역사적인 개막전을 지켜보기 위해 3만여 관중이 몰렸고, 당시 최고령 선수인 OB베어스의 윤동균(당시33세)선수가 서종철 총재앞에서 페어플레이 선서를 하는 모습입니다. 서종철 초대 총재는 육사1기이며, 전 국방부장관을 지낸 사람으로 굳이 설명을 안해도 알만한 분들께서는 아시리라 봅니다.

: 개막식 시구를 하고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과 올스타전에 같이 자리를 한것으로 보여지는 김응룡 해태감독과 빨간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청룡감독. 

 
 
1994년 LG트윈스 우승 당시 받았던 챔피온 반지(이상훈 기증)과  오른쪽의 금빛 찬란한 골든볼은 전설의 야구선수 베이브루스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714개의 골든볼중 1개입니다. 714개는 베이브루스가 선수생활중 기록한 통산 홈런갯수입니다. 반면, 루스가 선수생활중 기록한 삼진갯수는 1330개였습니다.

2003년 12월4일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소속 선수들이 명예전당 방문을 기념한 단체촬영

선수들의 땀냄새가 묻어나는 소중한 자료들을 세밀히 살피다 보니 보통관람시간인 40분을 훨씬 넘긴 3시간이상이 소요되었을 정도로 방대하고 많은 자료들이 있어 모두를 한번에 보여드리지 못함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한국야구명예전당’이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하나만이라도 야구팬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저에게는 대단한 행운인 것 만은 분명합니다. 이제는 한국의 야구팬과 관계자의 관심으로 ‘한국야구명예전당’이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에 버금가는 한국야구의 심장으로 발전해 나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선수들의 혼이 묻어있는 자료들은 정리되는 데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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