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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비경

알고도 못가는 제주의 숨은 비경, 무수천 계곡

by 광제 2017.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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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못가는 제주의 숨은 비경 일번지
, 무수천 계곡

“비밀의 정원과도 같은 무수천8경의 숨 막히는 비경”

한라산 정상 서북벽에서부터 시작되는 물줄기인 광령천, 민가에 이르러서는 무수천이라 부르고, 가장 하류인 바닷가에 이르러서는 다시 월대천이라 달리 부르기도 하지만, ‘무수천’은 제주시내 한복판을 관통하는 한천과 더불어 제주북부지역 가장 깊은 계곡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수천을 단순한 계곡으로 보는 까닭에 무심코 지나치지만, 무수천 계곡 깊은 곳에는 제주도 최고, 아니 대한민국 어느 풍경과 견주어 봐도 떨어지지 않을 천혜의 비경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무수천이 스쳐 지나가는 광령마을과 제주시에서는 이곳을 널리 알리고 명소화 하기 위하여 몇 해 전에 탐방로를 조성하고 기존의 광령8경을 소개하면서 발길을 유도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지금은 아는 사람들 몇몇만 조용히 찾는 곳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워낙에 깊은 계곡이고, 주변 지리나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직접 찾아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고 위험이 상시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 빠르게 황폐해지는 자연 특성상, 오라고 해도 못 찾아가는 것은 개인적으로 하늘에 감사할 일입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기에 굳이 발길을 차단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자연의 일부분이기에 갖춰야 할 예의라는 것은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함께 오래도록 공존하며 누리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수많은 명소들이 있고 그 명소들을 사람들이 직접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곳만큼은 쉽게 허락되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간간히 올라오는 사진으로만 감상할 수 있는 비밀의 정원과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수천 깊은 곳에는 광령8경, 또는 무수천 8경이라는 걸출한 비경들이 존재합니다.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해안에 이르기까지 계곡의 곳곳에 숨어 있는 비경들을 선정하여 스토리와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인데요, 실제로 가이드 없이 초행자가 이곳을 다 돌아본다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듭니다.

얼마 전에는 이곳을 잘 아는 지인들과 함께 무수천 8경의 면면을 살펴보기 위해 제1경부터 시작하여 상류를 거슬러 올라 탐방을 다녀왔는데요, 실제로 진입하는 곳도 까다롭지만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위험한 곳이기에 직접 가보시란 말씀은 감히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곳도 있구나 사진으로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제주에서 가장 차량들이 많이 오가는 평화로 변의 무수천 다리 부근에는 무수천 계곡에 대한 설명과 함께 8경의 유래에 대해 자세하게 적어놓은 비가 있습니다.


무수천8경과 함께 이렇게 무수천 탐방로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표시를 해놓은 8경은 대부분 탐방로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계곡을 타고 내려가야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탐방자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과는 조금 떨어진다고 봐야 옳습니다. 안내판에 표시된 8경의 명칭은 맞지만, 사진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안내판에 적힌 대로 무수천(無愁川)이란 명칭은 울창한 숲과 깎아지른 절벽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속세의 근심을 잊게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다르게 해석하여 부르는 명칭으로 ‘머리가 없다는 의미의 無首川’, ‘물이 없는 건천이라는 의미의 無水川’, ‘분기점이 많다는 의미의 無數川 등이 있습니다.

문헌상에 ‘무수천’이라는 명칭이 나온 것은 1653년(효종 4년) 8월에 제주목사 이원진과 전적 고홍진(高弘進)이 편찬, 간행한 제주의 역사 지리서인 [탐라지(耽羅誌)]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보면 ‘무수천은 주 서남 18리에 있으며 조공천의 상류이다. 냇가의 양쪽 석벽이 기괴하고 험하여 경치 좋은 곳이 많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문헌에는 ‘조공천’이라는 명칭을 설명하면서 ‘상류에 폭포가 있어 수십 척을 비류(飛流)하고 물이 땅속으로 숨어 흘러서 7,8리에 이르면 다시 암석 사이로 용출(湧出)하여 드디어 큰 내를 이루었다. 내 밑에 깊은 못이 있는데 거기 물체가 있어 그 모양이 달구( 拘)와 같으며 잠복변화(潛伏變化)하여 사람에게 보물로 보이고 못 가운데 놓여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현장을 돌아보면 무수천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인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탐방을 시작해 봅니다. 보이는 사진은 제3경의 진입로입니다.


무수천은 많은 비가 내려 하천이 범람하면 엄청난 양의 물이 불어나는 곳으로 해마다 피해가 발생할 정도로 우천 시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곳곳에는 위험지역임을 알리는 안내판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중산간 지역이라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마을의 아이들이 종종 물놀이를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때문에 물놀이의 위험성도 알림과 동시에 인명 구조함이 설치되어 있는 것도 눈에 띱니다.


처음으로 마주한 곳이 바로 이곳, 무수천 8경중 제1경에 해당하는 ‘보광천(오해소)’입니다.

인근 사라마을에서 400여 미터를 거슬러 올라가면 계곡 좌우로 병풍처럼 석벽이 둘러서 있는데 그 너머에 있는 곳이 바로 ‘보광천’입니다. 지금은 숲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숲이 무성해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나 되어서야 잠깐 햇볕이 든다고 하여 오해소라 불렸다고 합니다.


숲이 사라진 곳에는 도로를 내면서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는데, 파괴된 경관 아래에서도 그 비경을 잃지 않는 모습입니다. 광령1리 출신의 한학자인 광천 김영호(光泉 金榮浩 1912-1987)선생은 ‘무수천 팔경가’에서 ‘보광천 변에 낮이 되니 / 비로소 건곤조화의 공을 알리라’고 노래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무수천 8경중 제2경에 속하는 ‘응지석’입니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위압감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데요, 응지석은 일명 ‘매 앉은 돌’ 또는 ‘매머를’이라고도 합니다. 옛날에는 매가 자주 날아와 앉았다하여 맷돌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곳의 운치를 영주십경에서는 ‘응지석월(鷹旨石月)’이라 했습니다.


이곳에 서면 계곡을 타고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온갖 시름조차도 다 잊게 되는데요, 예로부터 물이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곳으로 이곳에서 상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영을 해야만 하는 곳입니다. 때문에 예로부터 나들이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이기도 합니다.


속세와 단절된 생명이 신비스럽게 공존하는 곳, 제1경 보광천에서 상류로 2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천 서쪽으로 높이가 10m 넘는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있어 절경을 뽐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바위 위에 옛 사찰인 서천암이 있었다는 표지석을 세우기도 했으며, 김영호 선생은 ‘맷돌이 동을 향해 달을 맞으니 / 저녁 때 풍경이 눈앞에 환해지누나’라 노래했습니다.


많이 거칠어진 숲길을 헤치고 제3경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해봅니다.


중간 중간 시선을 뗄 수 없는 비경들이 펼쳐집니다.


정면으로 움푹 패여 있는 거대한 암벽, 바로 이곳이 무수천 8경중 제3경에 해당하는 ‘용안굴(龍眼窟)’입니다. 얼핏 봐도 많이 닮았는데, 일명 ‘용눈이굴’ 또는 ‘일전용안(日田龍眼)’이라고도 한답니다. 석벽으로 자연동굴을 이룬 형체라 형상이 수려하고 장엄하다 할 것입니다.


무수천 다라에서 북쪽으로 500여 미터쯤에 위치해 있는데, 실제로 굴의 깊이가 채 10미터도 되지 않지만, 울창한 난대림과 어우러진 까닭에 실제 동굴 같은 느낌을 줍니다. 상류 200미터 지점 ‘일왓’이라 불리는 곳에 샘이 있어 사시사철 물이 흐른다고 하며, 김영호 선생은 ‘일왓누운 용이 두 눈을 부릅뜨니 필시 저안에는 재사가 많으리라’라 노래했습니다.


용안굴을 뒤로하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니, 무아지경의 경치가 눈앞을 가로 막습니다. 계곡 양쪽으로 나뭇가지가 서로 맞닿아 터널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힙니다.



이렇게 빼어난 무수천과 관련하여 과거 이원진 목사는 탐라지에서 다음과 같은 ‘무수천가찬시(無愁川佳讚詩)’란 시 한 수를 남겼다고 합니다.

등고남악거심상(登高南嶽擧深觴) 남악(南嶽)에 높이 올라 대폿술 마시고 
천상귀래흥경장(川上歸來興更長) 냇길 따라 내려오니 흥이 절로 새로워라 
만안황화여작일(滿眼黃花如昨日) 들국화는 만발하여 예와 같으니 
일준잉작양중양(一樽仍作兩重陽) 한동이 술이 두 중양(重陽)을 이루네.

여기서 중양(重陽)은 9월 9일, 즉 중양절을 말하는 것으로 가을을 더 깊게 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어쨌거나 당시로서 목사(牧使)의 행사란 대단한 행사였고 그 목사가 붙이는 시제(詩題)로 무수천찬가를 택했으니 그 의미는 대단하다고 할 것입니다. 일단 찾아들면 모든 근심 걱정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운치와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무수천에 어울리는 시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 무수천 다리로 유명한 광령교에 이르렀습니다. 걸어가다 보면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깊은 수심의 ‘소’가 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여기까지 딱 절반의 탐방을 마쳤습니다. 이곳이 무수천 8경중 제4경에 속하는 ‘영구연(瀛邱淵)’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험하기 때문에 다리 위에서 보는 걸로 만족하겠습니다. 영구연은 일명 ‘들렁귀소’라 불리는 곳으로 이 소에는 예로부터 사람을 제물로 바치게 해서 받아먹는다는 의미의 ‘서먹는다’는 전설이 있는데 최근까지도 여러 명이 몸을 던진 곳입니다.

물이 매우 깊어 쇠앗배 12장을 감추고 3년 가뭄에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지는 곳이지만 지금은 움푹 파이기만 했을 뿐 가뭄에는 바닥을 드러냅니다. 특히 비가 내려 하천의 물이 넘칠 때 폭포가 장관을 이루는데 이를 영구비폭(瀛邱飛瀑)이라 합니다.


5경을 향하여 길을 재촉하는 계곡의 어느 지점, 무수천은 큰 비가 내린 다음에는 항상 커다란 생채기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태풍피해의 대표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크게 훼손된 계곡의 바닥을 정리를 해주는 일이 잦습니다.


제1경에서부터 제4경까지는 계곡이 워낙 깊어서 계곡을 따라 이동하지 못하고, 내리고 오르고, 또 내리고 오르고를 반복해야 하지만 제5경부터는 계곡의 거친 암벽지대를 따라 이동을 해야 합니다. 그만큼 위험하고 안전을 염두에 둬야 하는 곳입니다.


계곡을 따라 걷다보니 유난히 눈에 많이 띠었던 분홍빛 고운자태의 제비꽃입니다.


드디어 무수천 8경중 제5경에 속하는 청와옥 앞에 섰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바로 청와옥 풍경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큰 암벽이 쪼개진 모습으로만 우리에게 보여 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제주을 관통하고 남부지방에 큰 피해를 남겼던 ‘태풍 차바’의 거센 물살을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쪼개진 것입니다.


태풍 피해를 입기 전 원래 청와옥(靑瓦屋)의 모습입니다. 개구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요,  청와옥은 속칭 ‘청제집’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청와정이라 명명했으나 청와옥으로 바로 잡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타고 오르기에는 조금 가파르지만 한여름에 올라가 누우면 그 시원함이 이를 데 없고, 돌로 바위를 두들기면 바위 울림이 신비로웠다고 합니다. 김영호 선생은 ‘청제집 석고에 사람이 있어 / 두들기니 / 궁각 두 음이 서로 이어지는구나’라 노래했습니다.


사람이 올라 바위의 규모를 비교해 보니 실로 엄청난 크기입니다. 쪼개지며 무너져 내린 바위를 보니, 자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또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쪼개진 바위틈에서는 어느새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자연의 힘에 의해서 또 다른 자연의 탄생, 이게 바로 세상만물의 이치인가 봅니다.


얼마를 올랐을까, 여기가 6경이라고 누가 얘기를 해주지 않아도 한눈에 봐도 짐작할 수 있는 기이한 형태의 바위가 눈앞을 가로 막습니다. 무수천 8경중 제6경에 속하는 우선문(遇仙門)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양쪽의 암벽이 서로 맞닿아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선문은 속칭 ‘창꼼돌래’라 합니다. 계곡 동쪽으로 금방이라도 신선이 구름을 타고 내려 올 것만 같은 20여 미터의 기암괴석이 대문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주위에는 노송과 버들참빗 군락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으며, 제주시 오등동 한천변의 방선문(訪仙門)과 대조를 이룬다 할 것입니다. 김영호 선생은 ‘우선문 위에 서 있는 외로운 / 소나무야 일찍이 비방을 배웠는지 늙을수록 더 푸르구나’라고 노래했습니다.


왜 무수천 8경에 이곳을 넣지 않았을까 할 정도의 빼어난 풍경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에 비록 작은 규모의 소를 이루고 있지만, 수려함과 단아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혼을 빼놓고 마주할 수밖에 없는 풍경입니다.


아름다운 소를 끼고 언덕으로 올라 제7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여기가 바로 무수천 8경중 제7경에 속하는 ‘장소도(長沼道)’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장소도는 전후좌우가 모두 돌로 이루어진 물홈 모양의 70미터 가량 되는 소입니다. 속칭 ‘진수도’라 합니다.


수심이 상류로 가면 조금 깊지만 하류로 가면 허리를 감출만큼 얕아 옛날 여름이 되면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겼다고 합니다. 측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린 형태의 용암선단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김영호 선생은 ‘긴 구시가 돌로 되어 하늘이 / 만들었으니 / 영세에 무리들이 목욕하고 / 빨래하고’라 노래했습니다.


무수천 8경중 제8경에 속하는 ‘천조암(泉照岩)’앞에 서 있습니다. 기이한 형태의 바위로 이루어진 절벽입니다. 속칭 ‘쇠미쪼암’이라고도 하는데, 방언으로 소를 밑지게 한다는 곳으로 워낙 낭떠러지라 주변에서 방목하던 소들이 여러 마리 떨어져 죽었다고 전해 내려옵니다.


하천 바닥은 깊은 소를 이루고 있으며 풍치가 무척이나 빼어납니다. 이곳에 솟는 샘은 대단하여 옛날에는 식수로도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김영호 선생은 ‘쇠미쪼암에 호랑이가 / 크게 입을 벌렸으니 / 물이 넘칠 때는 더러운 티끌을 / 모두 씻어낸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제주에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한 ‘영주십경’이 있습니다. 무수천팔경은 그 영주십경에 빗댄 표현으로 그 만큼 빼어난 풍광을 지닌 곳이라 할 수 있으며, 무수천팔경 또는 광령팔경이라고 합니다.


제8경까지 계곡 탐방을 마치고 위로 올라서면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여유를 갖고 유유자적 걸어보기에 참 좋습니다. 하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곳은 출입에 조심해야 합니다.


탐방로 변에 곱게 피어 있는 둥글레


무수천8경을 다 돌아본 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아쉬운 마음에 상류에 있는 또 다른 명소를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도착한 곳은 ‘진달래소’라는 곳입니다. 계곡 전체를 가로막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소’입니다.


위압감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규모가 대단하고, 밑으로는 내려갈 수도 없을 정도의 큰 소입니다. 지금은 비가 온지 오래되어서 소의 깊이가 얕아 보이지만, 비가 온 뒤에는 정말 볼만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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