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30만 명을 다 죽이겠다고 한 박진경의 추도비


『묘비 비문에 새겨진 ‘제주도민의 이름으로’ 아이러니』

제주4.3 당시 제주도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인권을 말살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박진경입니다. 이 인물이 누구이며, 지금 제주도민들에게는 어떠한 존재로 남아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4.3이 발발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태수습을 위해 애쓴 인물은 당시 제주주둔 9연대의 연대장 김익렬 중령이었습니다. 온건파인 김익렬은 평화적 해결을 위해 무장대 사령관인 김달삼과의 단독 협상에서 72시간 내에 전투를 중지함과 동시에 점진적으로 무장을 해제하고, 김달삼을 비롯한 무장대의 신변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이끌어 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지 3일 만에 협상을 깨트리기 위한 미군정의 방해공작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라리 방화사건입니다. 무장대로 가장한 청년들이 지금의 제주시 오라동 연미마을에 몰려가 불을 지르고 난동을 피운 것이지요.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불을 지른 이들은 무장대의 소행이 아니고 평화협상을 깨기 위한 미군정의 공작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 이후, 5월15일 미군정은 김익렬을 바로 경질 조치하였습니다. 선무(민심을 안정시키는 일)작전을 우선하고 강경진압에 반대했던 연대장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그 자리를 대신한 인물이 바로 박진경 중령입니다. 당시 미군정장관이었던 윌리엄 딘 소장이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박진경은 일본군 소위 출신이기도합니다.

1920년생으로 당시 29세에 불과했던 박진경은 일본 오사카 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제주에서 일본군 소위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제에 해방은 되었지만, 친일파를 비롯한 일제의 관리들이 그대로 등용되었던 미군정의 정책은 얼마 전 KBS를 통해 방영된 ‘설민석의 역사특강’에서도 그 이유가 잘 언급이 되었습니다.

박진경은 부임하지마자 제주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공언하면서 남긴 말이 아직도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라는 극언으로 강경진압을 예고했습니다.

이렇게 초토화 작전에 나선 박진경은 제주도민 5천명을 체포하는 거두는 상과를 거두고, 취임 한 달 만에 대령으로 승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승진의 기쁨도 잠시,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 잠을 자고 있을 때인 6월 18일 새벽 3시 15분경, 초토화 작전에 반기를 든 부하장병들의 손에 암살을 당하게 되면서 제주는 더 큰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렇게 제주도민 30만 명을 죽여서라도 진압하겠다고 공언했던 박진경, 그의 자취를 찾다보니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추모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곳을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이곳은 한라산 기슭 천왕사 근처에 있는 제주시 충혼묘지, 입구에는 이처럼 베트남 참전위령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100미터 안으로 들어가면 우뚝 솟은 충혼탑 뒤로 무수히 많은 묘비들이 안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장교와 사병묘역을 비롯하여 순국선열 및 공무원 그리고 경찰묘역까지 2018년 4월 현재로 1083기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박진경 대령의 묘비가 있다면 당연히 장교묘역에 있을 거라고 판단, 충혼탑에 간단히 묵념을 하고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겨봤습니다.

이곳 묘역에 안치된 대부분의 묘비에는 이름과 계급, 전사한 전투명과 전사한 날짜가 간단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교묘역에는 위관의 계급을 비롯하여 영관 계급의 장교까지, 사병에 숫자에 비해서는 눈에 띠게 적은 숫자의 묘비가 안치되어 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대령계급이었던 박진경의 묘비는 눈에 띠지 않았습니다.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발걸음을 돌려 내려오던 중, 예상치 않은 곳에 안치된 묘비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한눈에 봐도 처음에 갔던 묘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귀하게 모셔진 듯 보입니다. 나무숲 사이에 안치된 묘비 앞으로는 잔디밭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누가 봐도 관리가 잘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묘비 앞으로 다가가봅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박진경의 묘비가 맞습니다. 묘비 전면에는 ‘고 육군대령 밀양박공진경 추도비’라고 쓰여 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죽은 이를 그리며 생각하기 위해 세운다는 뜻의 追慕(추모)를 사용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 한다는 뜻이 담기 追悼(추도)를 사용했습니다. 과연 박진경의 죽음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추모보다는 그 뜻을 더 기렸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옆면에는 뭐라고 쓰여 있는지 보겠습니다.

“이 비는 당초에 세운 비의 비명마모로 내용식별이 어려워 서기(西紀) 1985년 6월  일 다시 세웠으며 원비는 비 앞에 묻었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1983년 이전에는 충혼묘지가 제주시 사라봉 기슭에 있었는데, 다시 세운 날짜를 보니 사라봉에 있을 때에도 박진경의 추도비는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뒤쪽에 보겠습니다.

그런데 후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대체 무슨 내용이 새겨져 있기에 그럴까요? 한번 보겠습니다.  

“공은 밀양박씨 밀성대군의 후예로서 생지는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36번지에서 단기 4253년 1월 22일 출생하셨다. 부인은 남해군수를 역임한 진양정공 임환씨의 따님이다. 공이 순직하신 후 양자로서 그 백형인 진용씨의 아들 익성군을 입양하였다. 공은 진주고보를 졸업하고 이어 일본 오사카 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한 후 우리나라 광복과 더불어 국군 창설의 주역으로 일익을 담당하여 헌신하고 국방예비대 총사령부 인사국장을 역임한 후 11연대장으로 취임과 동시에 육군대령으로 승진하여 제주도 공비소탕에 불철주야 수도위민의 충정으로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불행히도 단기 4281년 6월18일 장렬하게 산화하시다. 이에 우리 삼십만 도민과 군경원호회가 합동하여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단갈을 세우고 추모의 뜻을 천추에 길이 전 한다. 단기 4285년 11월 7일 제주도민 급 군경원호회 일동”

이와 같은 비문을 보면 ‘선두에서 지휘하다 장렬하게 산화하셨다’는 내용도 그렇지만, 저를 경악하게 만든 건 바로 ‘30만 제주도민의 이름으로 공적을 기린다’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이런 비문이 박진경의 비에 새겨질 수 있는 것일까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박진경은 제주도민 30만 명을 죽여서라도 진압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제주도의 인구가 30만이었으니 제주도민을 전부 죽이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자가 무자비한 학살과 토벌에 반대한 부하장병의 손에 죽었으니, 어쩌면 그 뜻이 제주도민들의 뜻이었을지도 모를 터, 그의 강경진압을 시작으로 무고하게 스러져간 제주양민들의 생명이 3만인데, 제주도민의 이름을 어떻게 비문에 새길 수 있단 말입니까.

강경진압으로 제주의 양민학살을 주도한 주범의 추도비가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 세워져 있는 것도 아이러니이고, 이를 행정에서 혈세를 들여가며 관리를 해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제주4.3 70주년을 맞아 화해와 상생 그리고 못다 한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주의 관문인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에는 억울하게 죽어 간 주검들이 유골조차도 수습을 마치지 못한 상태입니다.

4.3유족을 비롯하여 제주도민들에게 있어 박진경이라는 인물은 죽어서도 용서할 수 없는 원한이 맺힌 인물입니다. 이 땅, 이 섬에 그의 묘비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밉니다.

당장 철거를 희망하며, 그러지 못할 경우, 백번 양보한다고 쳐도 30만 제주도민의 이름으로 그를 추모한다는 비문의 내용만은 절대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억울하게 죽어간 3만의 4.3영령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며, 60만 제주도민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철거를 할 수 없다면 비문의 내용만이라도 당장 고쳐 쓸 것을 요구합니다.

통상 이런 비문 앞에서면 사람이 엄숙해지기 마련인데, 이 묘비  에서는 울분만이 가득 차오릅니다. 내 이 자리에 서서 추모의 꽃다발은 도저히 올려놓을 수 없고, 4.3영령들의 통곡소리나 들어보라고 동백꽃 배지 하나는 올려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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