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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맛집&카페

자장면 가격으로 먹어보는 고깃집, 서문뒷고기

by 광제 2010.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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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세월에 젊음을 불살랐던 7080세대나 그보다 더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께서는 주머니가 너무 가벼워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배는 고픈데도 불구하고 가진 돈이 없어 시장통을 기웃거리다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뒤돌아섰던 아픈 기억...

그나마 가장 싼 가격의 국밥 한 그릇으로 시름을 달래기도 했던, 그래서 지금도 아련하게 추억이 깃들어 있는 시장통 바닥을 지나갈 때면 어려웠던 그 시절이 유난히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국밥이나 설렁탕 한 그릇에도 그 순간만큼은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에 겨웠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요즘같이 장삿속에 찌들어 있지 않고 넉넉한 인심과 훈훈한 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때의 정겨운 풍경이 많이 사라져 버렸지만 아직도 제주시 동문시장의 과거 동양극장 뒤편에 가면 구수한 국밥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장통은 동문시장과 서문시장으로 양분하고 있었고, 동문시장은 현재까지도 재래시장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서문시장은 그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 서문통 인근의 골목을 지나다가 우연히 고깃집 한곳이 눈에 들어옵니다. '서문 뒷고기' 일단 간판에서부터 아주 오래전의 향수를 불러오게 합니다. ‘뒷고기’는 과거 돼지를 잡아먹던 시절, 고기를 손질하다가 맛있는 부위를 슬쩍 뒤로 빼돌려 먹거나, 깨끗하게 손질된 고기의 나머지 자투리 부분의 고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침 끼니때가 되어 지인들과 함께 들어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이 메뉴판입니다. 메뉴판에 적혀있는 가격들이 눈을 의심하게 한 것입니다. 구워 먹는 고기 가격이야 그렇다 치고 두루치기의 가격이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제주산 돼지고기를 사용한 두루치기인 것 같은데, 두루치기는 돼지고기를 썰어 후라이팬에서 어느 정도 익고 나면 콩나물 등 야채를 넣어 함께 볶다가 자작하게 국물이 우러나오기 시작하면 익힌 야채와 곁들여 먹는 요리로 매콤하면서도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가격이 일인분에 겨우 2천5백 원, 밥공기는 따로 팔고 있으니 3천5백 원인 셈입니다. 끼니를 때울 수는 있어야 하기에 양이 극히 적게 나오는 것은 아닐테고 야채가 덜 들어가는 것도 물론 아니고, 도대체 이걸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이렇게 착한 가격에 제공될 수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자장면 가격이 일반적으로 3천원부터인 것을 감안하면 자장면가격으로 고기를 먹는 셈입니다.

다른 음식점과 틀린 점을 억지로 찾는다면 밑반찬이 간결하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사실 고기를 파는 집에 밑반찬이 화려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적당하게 고기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반찬으로 알맞게 채워져 있습니다.




두루치기는 고기의 맛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야채의 질과 야채에 버무려지는 양념이 맛을 좌우하게 됩니다. 콩나물과 무채에서 나오는 시원한 맛이 고기의 느끼함을 없애주고 상큼함 맛을 느끼게 해주는데, 그런 맛을 느끼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곳의 두루치기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찾는 분들도 있지만 술안주로 많이 찾는 까닭에 부득이 밥공기를 따로 계산한다고 합니다.


장정 다섯 명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 먹은 가격이 겨우 17,500원입니다. 대낮이라 술을 먹기도 그렇고 아주 착하게 두루치기에 밥만 먹고 나온 가격입니다. 요즘에는 웬만한 국수집의 멸치국수 한 그릇 가격도 5천원을 웃도는데, 가만 보니 국수 값의 절반에 지나지 않습니다.

너무 착한 가격에 후식으로 커피까지 한잔씩 하고 나왔으니 배불리 잘 먹었다는 생각보다는 주인장께 괜히 미안해집니다. 나오면서 "이리 팔고 뭐가 남아요?" 여쭸더니, 빙그레 웃음으로 답을 하네요.

위치: 제주시 삼도2동 821-2 T.064-757-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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