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영등신이 있는 복덕대 포구, 그리고 이색 거북등대
영등할망의 복덕대 포구
그리고 이색적인 거북등대
전통포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한림읍 귀덕리 해안을 찾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손을 댄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제주 현무암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튼튼하게 만들어진 포구의 형태는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이곳 귀덕리 포구를 ‘모살개’라고 부릅니다. 모살개는 안캐와 중캐, 그리고 밖캐의 3단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곳뿐만이 아니고, 제주도 해안에 남아 있는 전통 포구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와 같은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안쪽의 안캐 포구는 태풍 때 어선을 피신시켜 놓거나 수리할 때 사용했던 곳이고, 중캐는 밀물이 되면 바다로 나갈 배가 정박해 놓는 곳으로 그리고 밖캐는 수시로 드나드는 배들이 정박해 있던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축조방식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데, 거친 파도에 맞서 어로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가야했던 제주인들의 지혜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귀덕리 모살개 포구와 멀지 않은 곳에는 원시적 형태의 복덕개 포구도 만날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어선 한두 개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바닷길이 꼬불꼬불 돌담으로 바다를 향해 이어져 있습니다. 역시 제주현무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원시적 포구의 안쪽에 조그마한 어선 한척의 모습이 매우 이채롭습니다.
이곳 복덕개 포구는 제주의 신앙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만 팔천 신들의 섬이라고 하는 제주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영등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람의 신이면서 풍어와 풍작을 가져다주는 풍농신이 바로 영등할망인데, 음력 이월 초하루가 되면 영등할망은 온갖 씨앗과 꽃씨를 함께 담아 복덕개 포구로 들어옵니다.
영등할망은 제주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선물을 듬뿍 주고 떠나는 내방신(來訪神)이라 할수 있는데, 이곳 복덕개 포구를 통해 섬에 들어온 영등할망은 가장 먼저 한라산에 올라가 오백 장군께 문안을 드리고 난 뒤, 땅위에는 씨앗을 뿌리고, 바다에는 우뭇가사리, 소라, 전복등 해산물의 씨앗을 풍부하게 뿌려 놓고는 보름 후에 우도의 진질깍 해안을 거쳐 돌아갑니다.
이렇게 풍요의 신이기도 한 영등할망을 위한 제례는 예로부터 이어져 왔는데, 이 제례가 바로 국가무형문화재 제71호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입니다. 바다와 밀접한 생활을 이어왔던 제주인들 그리고 한국의 해신 신앙을 대표하는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0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모살개포구와 복덕개포구 사이에는 영등할망신화공원을 조성해 놓고 있으며, 영등할망이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날 해마다 이곳에서는 마을 잔치가 열립니다. 이곳에서 영등할망 맞이 굿판이 벌어지는 것인데요, 영등할망이 몰고 오는 바람의 성격에 따라 바다와 땅의 일 년 풍흉을 점쳐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관심을 가지고 지켜봅니다.
신화공원에는 영등할망상을 비롯하여 영등하르방상과 영등대왕상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신화에서는 영등하르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제주에 풍요의 영등이 들려면 영등하르방이 영등할망에게 바람의 씨를 만들어 내어주어야만 합니다. 영등대왕은 영등할망이 제주의 새봄을 준비하는 동안 북쪽 끝 추운 영등나라를 지키는 외로운 신으로 등장합니다.
또한 영등할망이 제주에 들면서 딸을 데리고 오면 예쁜 꽃도 피고 날씨도 좋을 뿐 아니라, 새봄도 일찍 든다고 하였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거친 파도와 모진 바람에 사나운 날씨를 보이는데, 누구를 데리고 왔는지는 날씨를 보면 짐작이 간다고 하였습니다. 신화공원 한쪽에는 영등할망의 딸과 며느리상도 볼 수 있으며 비 날씨를 관장하는 영등우장을 비롯하여 영등별감, 영등좌수, 영등호장, 영등우장 등 식솔들을 거느리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신화의 마을답게 포구 건너 바다위에는 아주 이색적인 등대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거북이 등에 하얀색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 모습, 자세히 보면 진짜 거북이가 등에 등대를 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거북등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꼭 이 자리에 이렇게 독특한 형태의 등대가 세워져 있을까요? 거북등대가 세워져 있는 곳은 거북이도(거북섬)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예로부터 거북이 형태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풍파를 막으려고 설치가 방파제로 인해 섬의 모습이 상당부분 감춰진 상태입니다. 멀리서 보면 섬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복덕개 포구에는 제주의 옛등대라 할 수 있는 도대불도 서 있는데요, 도대불과 거북등대, 그리고 현대식 등대가 하나의 앵글에 잡혔습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로활동을 위한 많은 선박들이 오가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북등대로 접근하려면 배를 타야만 합니다. 거북섬의 양쪽으로 길게 설치된 방파제 때문에 시각적으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드론을 띠워 하늘에서 보면 이곳이 섬이란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섬의 한복판에는 어로활동을 하다 잠시 쉬었던 의자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걸어서 가장 가까이에 접근하는 방법은 방파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도보로 산책하기도 좋지만 저녁 무렵 포구방향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모습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또한 이곳은 영화 ‘천년학’ 촬영지로도 알려진 곳입니다. 잘 기억해두셨다가 지나는 길에 한번 들르셔서 제주의 문화와 함께 이색적인 거북등대의 모습도 구경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