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제주 동문시장의 풍경
저의 아내도 쇼핑을 참 좋아합니다. 굳이 살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쇼핑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지요. 반면 남자들은 정 반대입니다. 요모조모 시시콜콜 따져보며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고자 하는 물건이 눈에 띠어 이거다 생각되면 바로 구입합니다. 쇼핑에 대해서 다른 관념을 갖고 있기에 아내가 쇼핑을 가자고 하면 은근 망설여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독 두말 않고 따라나서는 시장이 있습니다. 바로 재래시장인데요, 제가 사는 제주시내에는 아주 오랜 전통을 간직한 재래시장인 동문 재래시장이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은근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이곳에 가면 세상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 좋습니다.
손목을 잡아끄는 할머니들의 사람 냄새가 좋습니다. 시장 특유의 비릿한 냄새도 오히려 생동감으로 다가옵니다. 끈적끈적한 땀 냄새와 제주특유의 구수한 인심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그래서 전 재래시장이라면 잔말 않고 따라 나섭니다.
대형마트의 홍수 속에 시내곳곳에서 운영 중이던 재래시장들이 속속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추세지만, 제주시 동문 재래시장만큼은 그에 아랑곳없이 활기가 넘쳐흐릅니다. 물론 왕년에 도내의 상권을 주름잡았던 황금기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말입니다.
제주시 동문시장은 과거 제주시민들에게는 깊은 활력소를 불어 넣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볼 것 없고 먹을 것 없던 시절이었지만 이곳만큼은 참으로 남달랐었지요. 과거 동양극장이 제주 극장가를 대표하던 시절, 동문시장의 연탄불에서 구운 쥐포를 들고 들어가 극장 안에서 뜯는 쥐포의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지요. 영화 관람을 마치고도 그냥 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커다란 들통에 펄펄 끓는 육수, 국밥을 툭툭 말아 넣어 내장과 순대를 손으로 듬성듬성 얹어 내어오는 구수한 돼지국밥은 제주동문시장 최고의 별미였습니다. 수십 년 전의 그 영화는 찾아볼 수 없지만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또한 이곳입니다. 걷는 내내 질퍽한 갯 내음도 여전하고 구수한 보리빵 향기도 여전합니다. 전 같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발길로 여전합니다.
언제나 활기로 넘쳐흐르는 이곳, 동문재래시장에는 가을에 가면 유난히 풍성함이 있습니다. 잔뜩 물이 오른 제철 바다생선들이 싱싱한 모습으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주가 정통적으로 강한 자리돔이며, 방어, 한치, 갈치, 전복 등이 사장을 찾은 사람들의 발길을 곧잘 붙들어 맵니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과 어울리게 과일 코너에도 활기가 넘칩니다. 제주특산물인 감귤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근래에 들어 새롭게 개발된 품종들까지 합세를 하여 이제는 제주감귤의 종류도 정말 다양해졌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다 외울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사지 않고 구경을 하는 데만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걸었던 길을 두 번씩이나 돌았습니다. 한 푼이라고 깎아보려고 흥정을 하는 모습들도 참 재밌습니다. 모든 게 구경거리입니다. 활기와 생동감이 넘치고 정말 사람 냄새가 풀풀 풍겨나는 제주동문재래시장의 풍경을 사진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동문재래시장은 제주상설시장의 시초이기도 합니다. 원래 이 시장은 1945년 국방경비대 제9연대 창설로 인해, 제주읍 일도리 1146번지(현 동문로터리 일대) 남수각 하천 하류 주변에 각종 일용품 및 채소·식료품 등을 판매하는 노점이 하나 둘 생기면서 형성되었습니다.
그 후 동문상설시장은 1954년 3월 13일 화재로 시장건물 11채가 불에 타,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1억 7,900만 환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54년 10월 28일에 상인의 담뱃불 부주의로 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남은 건물 23채(133점포)를 모두 태워버리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