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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초등 1학년 때문에 피서지에서 죄인 된 사연

by 광제 2011.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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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이 갖다준 수박 한조각에 바보된 사연

유난히 더운 올여름이지요. 제9호 태풍 무이파 때문에 잠시 주춤하긴 하였지만 엊그제까지 지속된 살인 무더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여 올여름은 어느 때보다 피서지가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한철장사 하는 사람들은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애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그저 죽을(?)맛이랍니다.

주말만 되면 애들의 성화 때문에 피서지를 찾아 떠나야 하기 때문이지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피서지가 지천에 널린 제주도에 산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행복한 고민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때로는 한시도 쉴 틈이 없는 피서지 근처의 부모들은 언제나 피곤하답니다.

때로는 가기 싫은 피서를 가야할 때도 있는 것이지요. 마음이 편하지 못하면 만사가 귀찮은 법인데, 그렇다고 애들 앞에서 내 뜻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짜증만 부릴 일도 못됩니다. 좋은 아빠 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애들 앞에서는 억지스럽게도 자상한척 했던 아빠. 불편하게 출발했던 하루는 결국 해수욕장에서 터져버렸답니다.

애들과 함께 물가로 나간 뒤, 애들에게 놀고 있으라 하고는 그늘막 텐트에서 쉬려고 돌아올 때였지요. 거의 다 왔다 싶었을 때, 무엇인가가 내 얼굴을 강타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조그마한 꼬마 애들 둘이서 가지고 놀던 튜브공이 날라 와 내 얼굴 정면을 때린 것이었습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지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더군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딴데 가서 놀라며 애들을 윽박지르기에 이른 것이지요.

가까운 텐트에서 쉬고 있던 아내가 이 모습을 보고는 한소리를 합니다.

"이긍..승질머리하고는.....애들이 던진 공 얼마나 아프다고...아이들에게 승질부릴 건 머야? 그냥 웃고 말 것이지...."

"너도 한번 맞아봐라 얼마나 기분 나쁜지...그리고 나 지금 기분 별루니까 제발 건들지 좀 마라."



결론도 없는 대화를 마치고는 텐트 안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였지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저씨!"하고 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켜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니 어떤 꼬마 하나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아까는 죄송했어요...;; 수박 먹다가 아저씨 생각나서 가지고 왔어요."

그러면서 수박 한 조각을 얼굴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내 얼굴에 공을 맞춰 꾸짖었던 바로 그 꼬마였습니다. 순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지요.

"울 동생이요..자꾸 공놀이를 하자고 해서 그만...다음부터는 사람들 없는 곳에서 놀께요. 죄송해요 아저씨"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그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 아무리 둘러봐도 쥐구멍은 없고 모래구멍밖에는 안보이더군요. 아마도 조금 더 있었으면 모래사장에 머리를 박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을 눈치 챈 아내가 거들고 나섰습니다.

"너 몇 살이니?"

"여덟 살요." 똑 부러지게 대답도 잘하더군요.

"아까 같이 놀던 여동생은?"

"여섯 살이에요."

"너....이렇게 수박 갖고 온 거 엄마아빠가 알고 있니?"

"네...아파하는 아저씨 갖다드린다고 해서 허락받고 갖고 왔는데요..."

아내와 여덟 살짜리 꼬마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어보니, 스토리가 그려집니다. 가족끼리 수박을 까먹던 중에 자기들이 실수했다고 판단한 나머지 엄마아빠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수박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며 꼬마를 돌려보냅니다. 꼬마 앞에서 고개를 못 들고 있는 나를 배려한 것이지요.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쳐다보는 아내의 눈빛이 의미심장합니다. 더욱 나를 괴롭게 하더군요.

꼬마의 부모들은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차라리 수박 한 조각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걸, 순간의 분을 참지 못하여 어리석은 행동을 한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또한 일순간에 이렇게 초라해 질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네요. 인내해야 하는 이유 또한 이제 초등학교 1학년에게서 배웠답니다. 몸집만 크다고 어른은 아니라는 사실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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