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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한라산

53인의 목숨 잃은 곳 살펴보니

by 광제 2008.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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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되었던 혼이 머무는 계곡, 첫 개방

1982년이니 26년이 지났습니다. 군사정부 시절 철저한 함구와 은폐속에 꼭꼭 숨겨져 있었던 울분의 계곡, 군사정부 종식 후, 지금까지도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되어 오던 원점비가 길을 텃습니다. 원점비, ‘검은베레의 혼이 머무는 곳’ 이라 부릅니다.

한라산 관음사 코스 등반로 입구에서 4.1Km, 해발1,120M지점, 1982년2월5일 특전사 대원 47명과 공군6명등 53명을 태운 C123수송기가 기상악화로 위 지점에 추락하여 전원 사망했습니다. 이들은 제주지방 연두순시와 제주공항 준공식에 참석하는 전두환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하여 미리 제주도로 투입되는 대원들이었습니다.

일명 ‘봉황새 작전’이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해외토픽으로 전세계에 보도될 만한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정부에 의해 작전명까지 바꾸면서 철저하게 위장,은폐된, 중앙언론에서 조차도 ‘공군비행기 훈련중 추락’등으로 단신처리된 사건입니다. 정부당국의 한마디 사과도 없이, 사고로 인한 법정 보상금 약 2500만원 정도씩 지급하고 종결되어진 마음아픈 사건.

유족들은 이후 오랜기간 동안 군당국의 엉터리 조사와 사후처리에 항의하고, 정권이 바뀌면서 국회 및 청와대에 탄원서도 제출, 당시 대통령과 국방장관, 특전사령관, 공군참모총장등을 살인협의로 검찰에 고소하기도 하며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진실규명은 커녕 많은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무성한 조릿대와 검은베레의 혼령이라고 여기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만 슬피 울려 퍼지는 죽음의 계곡을 직접 가봤습니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철저하게 봉쇄되어 무성한 조릿대만이 계곡 입구를 지키고 있더니 얼마전 부터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페인트가 벗겨져 흉한 모습을 하고 있던 원점비 현판도 말끔하게 도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가을날씨만큼이나 진입로에 떨어진 낙엽이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현장의 슬픈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는듯 합니다. 조릿대가 앙상하여 길을 찾을 수 없을때는, '혼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식과 음산한 분위기 탓에 들이 밀어도 혼자서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사고기(C123기 수송기)의 동체가 쳐 박혔던 바위지대의 계곡에는 추모비의 위치를 알려주는 나무로 만든 이정표가 썩어 부서져 이끼만 무성한채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아래사진은 당시 위 계곡에 추락한 동체의 모습과 동체 주변을 수색하는 대원들의 모습과 이곳에서 수거한 당시수송기의 잔해들입니다.  

출처:오마이뉴스



오랜세월 일반인들의 발길을 차단하였던 추모비 입구 비탈진 언덕은 추적추적 내린 비로 인해 나뭇가지를 잡고 올라야 언덕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바람없기로 소문난 이곳, 누군가가 최근에 새로이 갈아 걸어 놓은듯한 깨끗한 태극기가 색바랜 깃대에 힘없이 걸려 있고, 바위위에 조그맣게 세워져 있는 추모비의 모습을 보니 늦가을 쌀쌀한 날씨에 구슬피게 내리는 가을비 만큼이나 쓸쓸해 보입니다.




추모비의 전면에는 '여기가 검은 베레 용사들이 조국위해 생명을 바친 곳'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고, 뒤에는 '1982년 2월5일 오후3시경 대침투작전 훈련중 이상기류로 군수송기가 추락, 장병53명 전원이 순직하였다. 공주사대 등산부 학생들의 신고에 감사하며 관음사에서 1km 떨어진 등산로 입구에 충혼비를 건립하여 자세한 내용을 적고 영령을 추모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언제면 이들이 잃은 아까운 젊은 생명들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고, 아직도 이 계곡에서 떠나지 못해 울부짖고 있을 검은 베레의 혼령들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날이 올런지 누구도 알지를 못합니다. 색이 바랠대로 바래고 먼지만 잔뜩 뒤집어 쓰고 있는 장미조화가 수십년간 이곳을 쓸쓸하게 지키고 있었던 듯 나무에 기대어 걸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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