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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된 후배가 놓고 간 수박 한통의 사연

정말 아끼는 후배 녀석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필자가 3학년 때 처음 인연을 맺은 2년 후배입니다. 우리는 공업고등학교 전기과의 선,후배로서 제가 1학년 실습시간 때면 담당교사의 지시를 받고 지도를 하러 몇 번 실습실에 들렀던 것이 후배와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후배는 왜소한 체격에 늘 말이 없었고 실습시간만 되면 동료들 보다 늘 뒤쳐져 곤욕을 치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손놀림이 투박했던 후배는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 실습이간이었을 정도니까요. 과제를 풀어가면서 손놀림 때문에 힘들어하는 후배를 조금씩 거들어 주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우리 둘의 인연은 각별하여 사회에 나와서도 인연은 계속 되었고,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직원모집을 하는 모 회사에 시설담당으로 후배를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후배는 당시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게 되어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있었는데, 마침 직원모집을 하는 회사가 있어 지인을 통하여 소개를 하게 된 것입니다.

모 회사에서도 직원을 필요로 했던 터라 이력서를 훑어보고는 채용을 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었습니다. 필자의 회사에서도 정규직와 비정규직이 구분되어 그 실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면 후배를 정규직으로 입사를 시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의 규정상 절대로 정규직으로 채용은 불가하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어떻게든 직장을 구해야만 했던 후배는 계약직으로 그 회사의 시설담당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2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 몇 일전 필자의 아파트에 수박 한통과 조그마한 쪽지를 하나 들고는 후배가 찾아 온 것입니다. 애들이 집을 보고 있던 터라 만나지는 못했는데, “아빠! oo삼촌이 수박 사주고 갔어~ 편지도 주고 갔는데, 아빠한테 전해 주래~” <이 녀석이 뜬금없이 왠 수박이야, 쪽지는 또 뭐지?> 생각을 하면서 쪽지를 펼쳐봤습니다.

<<형님, oo이 왔다갑니다. 저 회사 그만뒀습니다. 아니 짤렸습니다.
보름정도 지났는데 형님께 말씀드리려다가 상심하실까봐 그때는 말씀 못 드리고 이제야 드립니다.
처음 들어갈 때 계약한 2년이 다되어 새로운 계약을 하지 않겠답니다.
어쩝니까... 나와야죠.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직장생활 하지 않으려구요.

솔직히 더러워서 못해먹겠습니다.

형님께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하지만, 앞으로는 직장에 연연하지 않고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해보려고 그럽니다.
아무리 한들 처자식 밥 굶기기야 하겠습니까. 그간 저에게 신경 써주신 형님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수박장사라도 해보려고 중고트럭을 장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첫 장사하는 날입니다. 형님! 저 처음 해보는 장사입니다.

하지만 악착같이 할 겁니다. 수박을 차에 싣고 가장 먼저 형님댁으로 왔습니다.
제가 비록 수박을 파는 별 볼일 없는 놈으로 전락했지만 제가 새롭게 시작하는 첫 장사의 첫 물건은 형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장사 잘 되면 더 많이 드리겠습니다.
인생,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살겠습니다.

어디에서 장사할건지는 말씀 안 드립니다.
형님 성격에 또 부리나케 달려오실 것 같아서요.
나중에 뵙겠습니다. 수박 맛있어 보이는 걸로 골랐으니 맛있게 드십시요.>>

갑자기 쇠망치로 후려 맞은 듯 뒤통수가 띵합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까지 쏟아지려고 그럽니다. 20여년의 사회생활을 성실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 온 녀석입니다. 뭐가 모자라 젊은 나이에 그것도 처자식이 딸린 가장이 직장에서 내쳐져야 되는 겁니까.

당시 이력서를 받았던 지인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회사의 방침이 정해져 있어서 자기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입사당시 같이 입사했던 직원 두 명도 같이 이번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하니, 미약한 힘으로는 후배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습니다.

뒤통수 후려친 후배에게 연락을 해봤습니다. 지금 수박을 팔고 있다고 합니다. 어디냐고 물어봐도 알려주질 않습니다. ‘장사하는 곳 알아서 뭐하실려구요? 됐습니다..형님!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선배랍시고 내가 후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있다면 오직 하나 장사 잘 되라고 빌어 주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 부터도 늘 곁에서 지켜보고, 결혼하고 자식새끼들 볼 때에도 잊지 않고 알려주던 후배, 어느덧 이제는 나이40을 훌쩍 넘겨 버렸고 자신에게 또 다시 찾아 온 위기를 앞에 두고 이번에는 선배인 나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번만큼은 혼자의 판단으로 결정하고 일을 시작하면서야 찾아왔습니다.

여기저기서 비정규직들이 해고되는 소식들을 접하고 자신도 그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알기에 또 다른 직장을 구한들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봤는지도 모릅니다. 쪽지에 담겨진 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후배의 새로운 시도에는 다부진 각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형님! 남자는요 의리가 있어야 합니다’ 늘 습관처럼 얘기하던 후배, 그 후배가 남기 고 간 수박 한통, 저 수박을 도저히 먹을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글을 써 내려가는데도 눈물이 나는데, 수박을 쪼개면 그 위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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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수박...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정말 맛있게 보이네요...

    수박농사 지었던 사람인데....정말 수박중에 제일 상품을 놓고 갔군요...

    후배의 선배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으시겠어요..정말...^^

    2009.07.06 14:17
  3. 인생사 새옹지마~!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2009.07.06 14:25
  4. rrtrtwewtewt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분이 성공하시길 바랍니다....하아, 경제가 너무 침체됐어요 ㅠㅠ

    2009.07.06 14:31
  5. Favicon of http://blog.daum.net/jjy85 BlogIcon JJY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흑..
    남자는 의리가 있어야 합니다..
    파르르님 좋은 후배 두셨어요 ㅠㅠㅠ

    2009.07.06 15:18
  6. Favicon of http://ssanglee.tistory.com BlogIcon 쌍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분에 관계가 너무 부럽네요.
    저에게도 그냥 맨날 만나서 노는게 아니라
    의리라는걸 지켜야한다는걸 생각하게 해주네요.

    후배분 수박장사 잘되실꺼 같아요~

    2009.07.06 15:56
  7. 유수연  수정/삭제  댓글쓰기

    응원합니다 두분다요..^-^
    저도 열심히 살랍니다

    2009.07.06 17:36
  8.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9.07.06 21:29
  9. Favicon of https://aritoon.tistory.com BlogIcon 엘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아프네요`~후배분 꿋꿋하게 다시서길바랍니다
    모두와 더블어 행복해질수있으면 좋겠네요~~

    2009.07.07 01:41 신고
  10. Favicon of http://exciting.okcashbag.com/event_coupon_issue.aspx?pid=blog BlogIcon thezle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
    좋은 정보 공유하고 싶어 왔어요 ㅎㅎ

    ok캐쉬백에서 무료 쿠폰 줘서 해봤는데
    다른사람과의 관계 알려주기도 하고,
    재밌네요! ㅎㅎ

    한번 해보세요~ ㅋ

    2009.07.07 09:35
  11. eee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치인들의 이권다툼에..국민들만 죽어 나갑니다. 한심한 대한민국

    2009.07.07 10:00
  12. Favicon of https://backpackdiary.tistory.com BlogIcon 뾲덩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 후배분이 잘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의지가 굳으면 못할게 없으니까요..

    2009.07.07 10:41 신고
  13. Favicon of https://lovehm.tistory.com BlogIcon 미싱엠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ㅠㅠ

    2009.07.07 10:57 신고
  14.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깝기도 하면서 두 분의 우정에
    가슴이 훈훈해지네요^^

    2009.07.07 12:38
  15.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이 짠 하네요. 모든 일이든 잘 되길 기원합니다.

    2009.07.07 13:11
  16.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산데 눈물 참느라 힘드네요...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009.07.07 14:13
  17. Favicon of https://peperokakag.tistory.com BlogIcon G.Kong  수정/삭제  댓글쓰기

    먹먹하네요....
    후배분의 장사. 꼭 잘되기를 바랍니다.

    2009.07.07 14:50 신고
  18.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이 착찹해지는 글이네요.

    2009.07.08 20:27 신고
  19. 연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층계급에서 천민계급으로 전락햇군요
    안타깝지만 어쩔수없습니다 시대가 그런걸..
    이제는 계급이 고착화되도록 시급히 관련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2009.07.13 16:35
  20.  수정/삭제  댓글쓰기

    엉...이글..수박이야기..지난번에읽엇습니다..가슴찡~햇는데..이글.주인공이.파르르님인가요??

    2009.09.01 18:20
  21. BlogIcon  수정/삭제  댓글쓰기

    ㄴ연아씨? 그러면 그쪽은 불가촉천민이겠군요. 천민다운 말투.

    2018.03.2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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