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

한 직장, 한 우물 18년을 되돌아보니

by 광제 2009. 7. 18.
반응형




한 직장, 한 우물 18년을 되돌아보니


하나의 직장에서 또는 한가지 일만 하는 경우를 두고 한 우물을 판다고 합니다. 오늘 7월18일, 저에게는 참으로 의미 깊은 날입니다. 지금도 몸담고 있는 직장에 18년 전인 1991년 오늘, 입사를 한 날입니다. 입사당시에는 과연 몇 년이나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한두 해가 지나면서 이제 어느덧 열여덟 해를 넘겼습니다.


20대 중반의 청년의 몸으로 입사지원서 하나 들고 지금의 이 직장에 몸을 담근 지 18년 지금의 위치는 아내와 두 명의 자녀를 거느린 40대의 가장으로 변해 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구직난에 허덕이고 계약직이나 용역, 파견직 등 비정규 개념이 없던 때라 한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면 대부분이 정식채용이었습니다.


입사 당시에는 조금 다녀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지 했던 것이 어떻게, 무엇이 이토록 한곳에 머물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퇴직을 하여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당시의 채용 책임자였던 직장 상관은 입사지원서를 들고 면접을 보던 필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을 채용할테니 최소 5년은 이 회사에서 일을 해야합니다. 약속할 수 있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요즘의 세태와 비교하여 참으로 어이없는 요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같으면 필자가 오히려 '최소 3년만이라도 일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할 처지이나 그 때에는 회사에서 오래도록 회사에 몸담아 달라고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필자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바로 요구를 받아들인 건 아니었습니다. 무슨 생각, 어떤 배짱에서인지 모르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일단 이 회사에서 일을 해보고 비젼이 보인다면 5년이 아니라 10년도 일할 수 있지만 비젼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그만 두겠습니다.' 라고 건방진(?) 답변을 하였으니 당시 채용책임자의 어이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필자를 비롯하여 입사지원서를 제출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고 하였는데,


입사를 지원한 여러 명이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을 하는데, 왜 당신 혼자 못하겠다고 하나?


이틀 후에 회사로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첫 출근을 한 날이 바로 1991년 7월18일, '내 입맛에 따라 다녀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나가겠다고 했는데, 어쩐 일로 출근하라고 하지?' 생각하며 출근한 첫날, 채용책임자는 '내가 당신을 선택한 이유는 배짱이 맘에 들어서다. 지원서를 제출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당신 혼자 나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 배짱대로 한번 같이 일해보자.'


이렇게 겁 없는 20대의 마음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이 이제는 회사의 비젼을 놓고 그만둘 배짱조차도 부릴 수 없이 깊게, 한 우물에 파묻힌 채 18년이란 세월이 지나버렸습니다. 사업 자금이나 벌어 당차게 개인사업을 해보자 했던, 겁 없던 20대의 용기는 어딜 갔는지,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고 이제는 몸담고 있을 직장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해 하여야 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변에선  잘나가던 개인사업들이 줄 도산을 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아우성을 치고, 비정규직이 쏟아내는 뜨거운 눈물을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노숙자'라는 신종 용어가 사회 깊숙이 자리 잡혀 있는 요즘, 그나마 내가 원해 들어간 직장,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어서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 아빠를 향해 '다녀오세요' 라고 자녀들의 인사를 받는 필자는 행복한 놈인지 모릅니다.


요즘 정말로 먹고 살기 힘들어 진 것을 실감합니다. 직장을 때려 치고 혹은 애초부터 개인사업(?)을 하던 지인들은 누구라도 한목소리입니다. 얼마나 각박하고 힘든 세상인지, 딴생각  하지 말고 직장에 오래도록 다니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정치권의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은 잊혀진지 오래입니다. 날이 갈수록 서민들의 눈빛은 초점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하루 벌이를 위해 현관을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생활이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입니다.


물가 걱정 없는 생활, 생활비 걱정 없는 생활, 가파르게 오르는 기름값에 가슴이 철렁거리는 생활, 굶어 죽으면서도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따돌림 받는 생활, 해마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돌아 다녀야 하는 비정규직의 서글픈 생활, 필자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20여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서민들의 생활상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아질 줄은 모르고 점점 악화되는 것만 같습니다. 모두가 잘사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만큼이라도 갖고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