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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불교신자인 나, 교회에 다녔던 기억

by 광제 2009.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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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눈에 비친 여고생 누나의 울부짖는 기도


명절 때만 되면 불거져 나오는 종교갈등. 올해도 어김없는데요, 제삿상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내는 대명절이고, 조상숭배를 기본으로 하다보니 이와 뜻을 달리하는 신앙을 갖고 있는 가족과 친지들로 인하여 즐거워야 할 명절이 자칫 불화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 된 나라에 살면서 어느쪽을 딱 꼬집어 탓할 수 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은 절에 충실한 불교신자지만 어린시절 한 때는 교회에 다닌적이 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 때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하고 있으니 어느덧 30년 이상이 흘러 버린 옛날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린시절에 살았던 동네에는 조그마한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교회의 종소리가 온 동네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동화 속 같은 동네였습니다. 교회 건물 또한 온통 하얀색을 하고 있어서 언제나 신비로움이 가득했던 것으로 추억하고 있습니다. 저의  같은 반 친구들 중에는 이 멋드러진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반 친구들의 눈에는 교회에 다니는 친구도 신비의 대상으로 비춰지기도 했던 때입니다.


매일아침이면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신비로움 가득한 교회는 과연 어떤 곳일까? 그 궁금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해 겨울, 성경책을 손에 들고 있는 교회의 전도사(당시는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도 몰랐음)와 함께 교회에 다니는 같은 반 친구가 집으로 찾아 온 것입니다. 집으로 찾아 온 목적은 아주 신선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가 찾아오는데, 크리스마스 행사에 맞춰 주일학교를 운영할 것이고 그 주일학교의 학생을 모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푸짐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달콤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탐방에 나섰던 어느 섬마을에서 만난 한 교회<글 내용과는 무관>

그렇게 친구와 전도사의 손에 이끌려 모여든 여러 친구들은 교회에서 짜 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연극준비도 하고, 찬송가를 외우기도 하며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때는 겨울방학기간이라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었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에 따라 준비해야할 것이 많아짐에 따라 밤늦게 까지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 하지만 밤중에 동네의 집집을 돌면서 찬송가를 부르는 일도 있었는데, 성탄전야의 치를 행사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교회의 모든 행사는 이미 교회에 다니고 있던 누나들이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여고생 정도의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여고생 누나들은 교회의 모든 일을 도맡다 시피 했었고 교회에서 말하는 주예수를 받드는 열성 또한 대단했었습니다. 이 여고생 누나들은 초등생인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는 소위 '믿고 따르는 존재' 였는데, 그녀들은 자기들끼리 돌아가면서 교회의 불침번(?)까지 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학생들 잘 보살펴주고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해대는 만능꾼 누나들은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학생들에게는 교회에 나가는 이유로 자리 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슈퍼우먼과도 같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누나들의 존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불과 몇 일 앞둔 어느 날, 한 누나가 당직(?)을 서고 있었고, 밤늦도록 연극연습을 하였던 몇몇의 친구들과 교회에서 밤을 새고 있을 때입니다. 연습에 피곤했던지 모든 친구들이 곯아떨어진 시간, 물론 저도 이미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는데, 어디선가 '죽여!', '죽여!' 라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겁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깬 나는 도저히 다시금 눈을 붙일 수 없어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움직여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니, 잠결에 들었던 '죽여!' 의 소리는 다름 아닌 '주여!' 라고 하는 소리였습니다.


당직을 서던 누나가 잠도 자지 않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어린 저의 눈에 비쳐진 그 모습은 상상하기 조차 싫은 모습이었는데, '주여!' 를 외치고 있는데, 눈물까지 흘리면서 울부짖듯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몸은 완전히 바닥에 엎드린 채 손은 앞으로 내밀고 눈물을 흘리면서 십자가를 향하여 울부짖는 모습이 당시 저의 눈에 비춰진 모습은 완전 경악 수준이었고 지금까지 슈퍼우먼으로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던 누나에 대한 환상은 완전히 깨져 버렸습니다.


이미 주일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주'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었고, 흥겹게 찬송가를 따라 부르고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기에 밤새 통곡을 하며 '주'를 외치고 있는 누나의 모습은 순수한 종교의 의미를 넘어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비춰졌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눈물까지 흘리며 울부짖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충격적이 모습에 잠은 잘 수 없었고 뜬눈으로 밤을 새고는 날이 밝자마자 곧장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에 다닌 지 한달도 채 못 되어 집으로 가게 된, 교회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인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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