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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집에서 때 밀고 목욕탕 갔던 사연

by 광제 2009.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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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가 본 목욕탕, 때 밀고 가서 도망 나왔던 사연  


바깥채에 딸려 있는 부엌에는 커다란 가마솥에 물이 한가득 들어있고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장작들이 가마솥 밑 아궁이에서 불을 피워대고 있습니다.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면 곁에 두었던 큰 다라이(당시에는 '다라이' 라고 불렀는데 본문에서는 '대야'라고 씁니다.)에 차가운 물을 반쯤 채워 놓고는 가시 뜨거운 물을 부어 적당하게 수온을 맞추고는 어린 자식들을 한 녀석씩 차례차례 안아다가 찌든 때를 벗겨내고는 다시 안채 마루로 안아다 놓습니다. 자식들의 형제가 너무 많아 한 참의 시간동안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식들 목욕을 다 시키고 나면 어머니께서는 이내 녹초가 되어 버립니다.


이 장면은 '40여 년 전 필자의 집에서 목욕하는 날 풍경' 입니다. 여름철이면 바닷가에 나가 멱을 감으면 놀았기 때문에 따로 목욕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됐지만, 한 겨울이면 공중목욕탕이 없었던 필자의 동네에서는 부엌의 가마솥에 물을 데피고 목욕을 하였습니다. 어렵게 목욕을 하다보니 한 겨울을 나는데, 보통 두세 번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몰론 수km밖에 있는 큰 동네에 가면 목욕탕이 있었지만 당시 어린나이에는 공중목욕탕의 존재를 모르고 지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공중목욕탕의 존재를 알고 처음 접하게 된 시기는 지금기억으로 당시 국민학교 6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필자의 집에 놀러 왔던 친구 한 녀석이 고무 대야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는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니네 집은 이렇게 목욕하는구나! 나는 목욕탕에 가서 하는데..'

'목욕탕?..;;'


당시 그 친구는 동네에서 소문난 잘사는 집의 자녀였고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아버지가 농협의 조합장이었으니 당시로서는 필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사는 집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녀석의 눈에 비친 고무 대야 목욕이 신기하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 모릅니다.
 



공중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이 따로 있고, 모두가 옷을 홀딱 벗고 있으며, 정신없을 정도로 뜨거운 물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있는 초대형(?) 탕이 있다는 사실을 장황하게 설명을 하던 친구 녀석은 설명 보다는 실제로 보여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필자에게 같이 한번 가자고 합니다. 친구 덕에 생전 처음 목욕탕을 구경하게 됐는데, 쾌재 보다는 오히려 처음 접하는 목욕탕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러 내일이면 '친구 따라 목욕탕에 가는 날' 나 참,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는 말은 들어 봤어도 '목욕탕' 을 갔었다고 생각을 하니 웃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친구 녀석의 설명에 의하면 목욕탕 안에서는 옷을 홀딱 벗는다고 했는데, 그게 걱정입니다. 알몸을 보여줘서 창피한 것은 둘째 치고, 몸에 붙어 있는 때가 문제입니다.


고민을 한 끝에 생각해낸, 당시로서는 굳 아이디어, 때를 밀고 가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어머니께 졸라 몸이 간지러워 죽겠는데, 목욕물 좀 데펴 달라고 하는데, 난 데 없이 목욕물이라니, 생전 스스로 먼저 목욕 하겠다는 말을 꺼내본 적이 없는 아들에게서 목욕물 준비해달라는 말을 들은 어머니, 의아하기도 했지만 한편 기특하다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바로 목욕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부엌의 가마솥 앞에 대야를 놓고는 그 안에서 혼자 때를 미는데, 이제 내일이면 태어나 처음 목욕탕에 목욕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때를 미는 손에 힘이 팍팍 느껴집니다. 아니 기대에 찬 힘이라기보다는 몸에 찌들어 있는 때를 남한테 보여주기 싫은 나머지 하나도 남김없이 밀어 내려고 힘이 그렇게 들어 갔나봅니다. 이미 몸의 구석구석은 벌겋게 달아올라 일부분은 따끔거리기까지 합니다.


날이 밝아 바야흐로 태어나 처음으로 목욕탕 가는 날, 간밤에 따끔거리던 부위는 이제 사라진 것 같고 친구 따라 들어선 목욕탕안, 신발을 벗고 들어설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소지품을 보관하는 사물함에서부터 고추(?)를 내 놓고 돌아다니는 아저씨들, 완전 별천지가 따로 없었습니다. 멍하니 서있는 필자에게 친구는
 
'얌마 뭐해 벗어!'

'어? 어! 알았어!'

머뭇거리며 옷을 벗는데,

'얌마! 몸에 상처가 다 뭐냐?'

'어? 아! 어젯밤 때 밀면서 너무 세게 밀어서 그런가봐'

'뭐? 목욕탕 오는 놈이 때를 밀었다고?'

친구는 내가 때를 밀었다는 소리에 배꼽을 잡고 디 집어 집니다. 목욕탕에 오면서 때를 밀고 왔다고 생각하니 너무 웃겼나 봅니다.


한참을 웃고 나서 친구 녀석의 손에 이끌려, 그리고 한손은 고추(?)를 완전히 안보이게 감싼 채 들어간 목욕탕은 기대 이상으로 별천지였습니다. 자욱하게 쌓여 있는 연기, 창피한 줄도 모르고 죄다 벗고 있는 모습의 아저씨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은 불과 몇 초 후  참기 힘들 정도로 호흡기로 들어오는 덥고 습한 공기, 이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얌마! 나 죽을 것 같애! 숨이 막혀!'

'인마! 조금 있으면 괜찮아져 참아!'


친구 녀석은 괜찮다고 하고 참아보라고 하지만 정작 내 자신은 숨이 막히고 곧 죽을 것만 같은데, 뭘 어떻게 참으라는 건지, 급기야 처음 접해보는 덥고 습한 공기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오고야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필자는 밖에서 기다리고 친구 녀석만 목욕을 마쳤는데, 생전 처음 경험해 보려고 친구 따라 찾아 간 목욕탕, 결국에는 전날 저녁에 때를 밀며 고생하고 정작 목욕탕에서는 몸을 담가 보기는커녕 구경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뛰쳐나오고 말았던 첫 목욕탕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혹시 요즘도 옛날처럼 때를 묵혀두시는 분 안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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