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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1박2일 여행 온 불륜커플, 직접 만나보니

by 광제 2009.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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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여행 온 불륜커플, 직접 만나보니

가을이 깊어가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단풍이 적기를 맞아 붉게 물든 가을 산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등반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었는데요, 한라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역주민들은 물론이요, 육지에서 많은 등반객들이 한라산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얀 눈꽃이 온 산을 덮었지만,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붉게 물든 단풍이 깊어가는 가을 의 멋을 한껏 북돋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 가을 단풍을 보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가을의 시원한 바람은 불어준다지만 한낮의 강한 햇볕은 거북스럽기에 태양이 머리위로 솟아오르기 전에 산행을 마칠 심산이었기 때문입니다.

30여분 걸어 올랐을까. 멀찌감치 위쪽에서 먼저 오르는 한 쌍의 등반객이 보입니다. 부부처럼 다정한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습니다. 뒤쪽에 사람이 따라오는 줄도 모르고 아주 정답게 얘기를 하면서 오르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던지 혼자 온 저를 머쓱하게 만들어 버리더군요.

조금 있으려니 정겹게 오고가던 둘의 말수가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뒤에 따라오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괜히 미안해집니다. 도둑질하다 들킨 쪽은 저쪽인데, 괜히 제가 들킨 것 같은 마음입니다. 빠른 속도로 걸어올라 추월해주는 것이 둘을 위해서 낫겠다 싶어 스쳐 지나치려는데, 남자가 먼저 인사를 걸어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산에서 형식처럼 오고가는 인사치레를 주고받고는 지나치려는데, 남자가 또다시 말을 걸어옵니다.

"혼자 오셨어요?"
 
"네. 늘 혼자 다니는걸요."

"아~네에. 혼자 오신걸 보니 제주도 분이신가보네요."
 
"네. 그렇습니다."

"단풍이 정말 장관이네요."

이처럼 몇 마디 얘기가 오고가는 상황으로 바뀌어버렸는데, 차마 이를 무시하고 치고 올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는데, 여자는 이런 상황이 조금 어색했는지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두 분이서 오셨군요. 참 보기 좋습니다. 이렇게 여행 다니는 부부를 볼 때마다 늘 부럽습니다."

"우리가 부부로 보이세요?"

"윽! 아닌가요?"

당연히 부부이겠거니 하고 말을 건넸는데, 정작 당사자는 부부가 아님을 떳떳하게 밝힙니다. 남들이 부부라고 알아주면 그만인 것을 구태여 아니라고 밝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얘기가 이정도 되고 보니 괜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남자는 스스럼없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사는 곳은 어디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며, 같이 온 여자는 같은 지역에 살고 있으며 산에서 만난이야기며, 더욱이 혼자 살고 있는 여자라며 너무도 자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습니다.

약간은 거만한 듯 하면서 과시욕에 불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달리 생각하면 자신감처럼 보이기도 하는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쟁터에서의 무용담을 들려주는 듯 하였습니다. "요즘은 불륜도 자랑거리가 되나?"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조금은 역겨운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계속하여 들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하루 전에 이곳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고 단풍구경을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간다는 이들은 약 1년 전에 산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들의 눈에 띠면 안되기에 주로 원정 산행을 많이 다닌다고하는데, 지난여름에는 동남아 여행까지도 같이 다녀온 사이라고 하였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산이 데이트하기에는 그만이라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도 들려줍니다. 장비를 갖추고 모자를 눌러쓰고 선그라스를 끼고 나면 어지간히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지 알아 볼 수가 없답니다. 몰래 데이트를 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실제로 아는 사람과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알아보질 못했다고 합니다.

조금은 황당한 무용담(?)을 듣다보니 어느새 도착지점까지 이르고, 여자는 애써 눈길을 피합니다. 괜히 좋은 시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좋은 산행 되세요." 라는 말을 건네고는 헤어졌지만, 얼마 전까지 정겹게 보였던 그들의 모습은 둘의 관계를 알고 난 뒤에는 정겹기는커녕 역겨워 보입니다.
 

더욱이 조금의 죄의식도 없이 자랑하듯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을 보니 어떤 사고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초면이라 이래라 저래라 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행여 이글을 보게 된다면 지금 어떤 우를 범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고,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 또한 최소한 남에게 떳떳하게 얘기할 자랑거리는 아니라는 사실만은 알아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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