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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농민이 기지를 발휘하여 도둑놈 잡은 사연

by 광제 2009.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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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기지를 발휘하여 도둑놈 잡은 사연

요즘 제주 정말 바쁩니다. 민가에는 사람을 찾아 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아주 바쁜데, 이유는 감귤 시즌이기 때문입니다. 감귤은 따야할 시기를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 제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도 처가에서 조금의 귤 농사를 하기에 시간이 날 때면 부지런히 서귀포로 달려가야 할 처지입니다. 비단 저 뿐만이 아니고, 제주의 많은 직장인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상황인 듯 합니다.

그런데 감귤거래 가격이 시원치 않다고 장인어른의 걱정이 말이 아닙니다. 이러다간 농약 값도 건지지 못하겠다고 푸념을 하시는데 정말 걱정입니다. 다른 이웃은 아예 귤 따는 걸 잠시 뒤로 미뤘다고 하는데, 아마도 시세를 지켜볼 요량인 것 같습니다. 4만원 상당의 귤 따는 일손을 빌리기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귤을 나르는 남자의 일당은 8만원이기 때문에 사위인 제가 도운다면 그나마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부지런히 서귀포를 오가고 있습니다.

감귤은 적기에 판매되는 가격에 비해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하는 품목이기도 합니다. 나무가 심어진 토양의 성질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비료를 줘야 하며, 각종 병해나 해충에 노출되기 때문에 그에 다른 농약도 제때에 해줘야 좋은 품질의 감귤을 생산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해 귤 농장에 소모되는 농약만 해도 상당량이 들어가는데, 값 비싼 농약을 보관해 두었다가 누군가가 훔쳐가 버린다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됩니다.

오늘은 엊그제는 귤 작업을 하면서 장인어른과 농약에 대한 얘기를 나눴었는데, 재밌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귀포에서는 이미 유명한 실화가 되어 버린 사건이라고 합니다. 불과 몇 년 전, 어느 감귤 밭 창고에 감귤나무의 병해충을 예방하는데 쓰려고 농약병을 보관했었다고 합니다.

한번 농약을 치기 시작하면 며칠에 걸쳐 하기도 하는데, 다음날 아침 농약을 치려고 창고 문을 열어보니 사다둔 농약병이 감쪽같이 전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도둑이 든 것입니다. 상심하는 농심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방제를 포기하면 안 되었습니다. 재차 농약병을 사들고 와서는 방제를 하고 나머지 농약병을 다시 창고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한번 도둑맞았는데, 또 맞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말입니다.

아침에 방제를 하려고 창고 문을 열어 본 순간 다시 한번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마 했던 농약병이 또다시 사라진 것입니다. 이정도면 한번 해보자는 얘깁니다. 깊은 생각을 하고난 농장주인아저씨, 도둑놈이 두 번씩이나 이곳을 찾았다는 것은 이 창고에 대해 잘하는 주변의 인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병해충에 썼던 빈 농약병에 제초제를 넣어둬 

주인아저씨는 다시 한번 방제약을 사러 농약방에 다녀와야 했는데, 이번에는 방제약 외에 다른 약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바로 '제초제'였던 것입니다. 저녁 무렵, 방제를 마친 아저씨는 쓰다 남은 빈병에 제초제를 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간밤에 보관했던 방법그대로 그 자리에 방제용 농약병을 두고는 농장을 나선 것입니다. 예상대로라면, 아니 바램이었죠. 제발 다시 한번 도둑놈이 찾아와 주기를요.

다음날 아침, 창고 문을 열어본 아저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방제약으로 위장한 제초제가 사라진 것입니다. 아저씨의 작전이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제초제는 잡풀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농약으로 맹독성의 약품입니다. 식물에 뿌렸을 경우 수 시간 내에 색이 노래지면서 말라 죽어버리며, 생존력이 질긴 나무라 할지라도 하루정도면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사람은 조금만 마셔도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히 다뤄야 하는 약품이 바로 제초제입니다.

이제는 도둑놈을 잡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며칠에 걸쳐 인근의 감귤 밭을 샅샅이 뒤진 아저씨는 나뭇잎이 노랗게 매 말라 버린 한 감귤 밭을 발견한 것입니다. 멀지 않은 곳, 그것도 이웃의 감귤 밭이었던 것입니다. 농약 값이 부담이 된다고 하여 이웃의 농약을 훔쳐 뿌린 댓가 치고는 너무나도 혹독한 결과를 초래한 이웃집 아저씨, 그 후에는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두 농민간의 처지를 생각하면 어쩐지 씁쓸하기만 한 사연이었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파르르의 한라산과 제주]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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