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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현금지급기 앞 꼴불견

by 광제 2009.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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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지급기 앞 꼴불견, 너무 씁쓸

요즘 길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현금지급기입니다. 과거에는 공공기관이나 대규모건물 또는 은행 옆에서만 볼 수 있었던 현금지급기가 이제는 웬만한 곳에서도 너무 쉽게 눈에 띱니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온 것을 볼 수 있는데요, 현금지급기의 기능도 과거의 그것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요즘에는 ATM기라 하여 입출금이나 타행송금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과금까지도 자유롭게 납부할 수가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고 지루하게 기다리면서 처리해야 했던 업무를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편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자동화기기인 ATM기이용보다 더욱 편리한 것은 가정에서 폰뱅킹이나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은 이에 익숙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은행이나 자동화기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현금을 필요로 한다면 은행이든 자동화기기든 찾아가야 합니다.

며칠 전 마침 현금이 급하게 필요하여 단지에 있는 현금지급기를 찾아갔을 때의 일입니다. 날씨조차도 맹추위기 기승을 부리던 날, 지급기안에서는 아주머니 한분이 일을 보고 있었고 밖에는 또 다른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좀 기다려야 되겠구나’ 싶어 아주머니 뒤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날씨가 장난이 아닙니다. 가만히 서 있으려니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습니다. 차에 타서 기다리고 싶었지만 순서 때문에 자리를 뜨지도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곳에 갈까 망설이는 찰나, 밖에서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무슨 일을 저렇게 오래 보는 거야 도대체~!
추워 죽겠는데,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좀 해야지..”

너무 추워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추위에 떠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주머니..오래 기다렸나요?”

“말도 마세요..한 10분은 되는 거 같아요..

수십 개의 통장을 죄다 꺼내놓고 저거 뭐하는 짓이랍니까? 전세 낸 것도 아니고..”

얘기를 들으면서 안에서의 상황을 살펴보니 아주머니 말 그대로 입니다. 핸드백에서 통장을 하나씩 꺼내면서 조회를 하는 건지, 통장정리를 하는 건지 모르지만 아주 부지런히 은행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어 보입니다. 혹시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려니 생각하여 맘 편하게 저러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제가 문을 조금 열고는 한참 일으로 보고 있는 아주머니께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시간이 오래 걸릴 거면 다른 사람이 먼저 하면 안 될까요?”

힐끗 뒤를 돌아본 아주머니, 딴 데 가서 알아보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은근히 열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기다리던 아주머니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진 상태입니다. 가뜩이나 날씨도 추운데, 이거 뭐하는 짓인지, 완전 동태되기 일보직전입니다. 일을 보던 아주머니가 나온 시간은 그로부터 2~3분이 지난 뒤였습니다.

“일도 맘대로 못 보겠네..에잇!”

문을 열고 나오면서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아주머니가 내 뱉은 한마디였습니다. 좀 황당하다 싶었는데,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이 소리를 듣고 가만있을 리가 없습니다.

“허~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하면 덧나나?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생각도 해야지 여기 아주머니가 전세 냈어요?”

“아니 일보러 들어갔는데...일을 봐야 나오던지 할 것 아녜요..”

“추운데 밖에서 떨면서 기다리는 사람들 안보여요?”

아주머니 두 분이 오가는 대화내용을 보니 가만뒀다가는 머리채 잡게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알지도 못하는 남정네가 싸움을 말릴 수도 없는 상황, 싸울 사람은 싸우라고 일단 놔두고 먼저 일을 보려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화들짝 놀래며, “내가 먼저 왔잔아욧~!” “아~!네 먼저 들어가세요....;;”

어쨌거나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아 다행이었지만 다음으로 들어간 아주머니 또한 그리 빨리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기다리는 사람이 조급하게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이 아주머니 또한 두세 번에 걸쳐 통장을 넣었다 뺐다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순간, 사람들이 참 간사(?)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기의 딱한 처지에 대해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막상 자기 자신은 남들의 딱한 처지를 생각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불과 잠깐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가 바뀌었다 하여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니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가뜩이나 추운데, 마음도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파르르의 세상과만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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