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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여학생 꾸짖는 아저씨, 낯 뜨거웠던 이유

by 광제 2009.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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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꾸짖는 아저씨, 낯 뜨거웠던 이유

성탄절에 마음이 들떠있는 애들을 데리고 아이스링크장을 찾았습니다. 성탄절을 지나 연말로 치닫고 있는 시기, 마침 애들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도 하루 전날 겨울방학에 들어가 모처럼 가족이 하루종일 시간을 함께 할 수가 있었습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성탄절에 어울리는 눈 구경을 하고 싶다는 애들, 하지만 산으로 오르지 않는 한 애들에게 눈 구경을 시켜줄 여건이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하여 찾은 곳이 도내에 유일한 모 아이스링크장입니다. 독점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아이스링크장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을 지불하고는 링크장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아빠인 저는 한번도 스케이트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타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에 링크장에 입장하여 애들이 타는 모습을 사진이라고 찍어줄 심산이었습니다.

애들은 비록 능숙하지 못한 실력이지만 처음에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곧잘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애들이 흥겹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훌쩍 지나고 가만히 있다보니 추위까지 엄습해옵니다. 링크장의 조립식의 간이 구조물이 있었는데, 마침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추위를 피하거나 또는 링크장 측에서 판매하는 갖가지 음식들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구조물이 비닐로 되어 있기에 안에서도 어느 정도는 바깥을 관찰할 수 있기에 바람도 피할 겸 안에서 애들을 지켜보기로 하고 안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습니다. 구조물 안에는 링크장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휴일에다가 바깥공기가 쌀쌀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구조물 안에서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간 지 불과 5분이 안되어 눈길을 잡아끄는 광경이 벌어집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세 명이 구조물 안으로 재잘거리며 들어오더니 두 학생은 자리를 잡고 앉아있고 나머지 한 학생은 안에서 판매하는 어묵을 국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는 자리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학생들의 입가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을 보니 상당히 추운모양입니다. 추위도 얼어있는 몸도 추스릴 겸 어묵을 사 먹으려는 듯 보였고, 탁자에 놓인 어묵그릇을 보며 환호성을 터트리는 것을 보니 과연 여학생들의 활기차고 발랄한 모습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 눈길을 돌려 밖을 쳐다보고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괴성이 들립니다. 성인남자의 호통 치는 목소리에 놀라 여학생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여학생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서 뭣에 쓸거야!”

“죄송해요 아저씨..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다면 다야? 옷을 완전히 베려 놨잔아!”

“정말 죄송합니다. 어떡하죠?”

오가는 대화내용과 벌어진 상황을 보아하니 여학생들이 어묵을 허겁지겁 먹다가 그만 어묵 한 개가 꼬치에서 빠지면서 그만 남자의 종아리 근처의 바지에 어묵국물이 튕긴 것이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여학생은 상기된 얼굴을 하고는 잘못했다면서 어쩔 줄 몰라 굉장히 당황해 하는 눈치입니다. 잠시 후 고성은 잠잠해지고 때 아닌 돌발 상황에 난처해진 여학생들은 완전히 풀이 죽어버린 모습입니다. 때문에 조금 전 재잘거리던 모습은 어딜 갔는지 조용해졌습니다.

자신들이 덤벙거리다가 어른에게 피해를 끼쳐 미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한 여학생들, 이미 고개를 완전히 바닥을 향해 내리깔려 있었고, 어묵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의기소침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끝난 줄 알았던 남자의 꾸지람은 계속해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어린것들이 말야..놀러 다니면서 좀 차분히 놀 것이지 덤벙대기나 하고 말야~”
“요즘 학생들은 정말 문제야 우린 저러지 않았는데 말야..”

쉴 세 없이 이어지는 남자의 꾸지람에 이제 여학생들은 완전히 고양이 앞에 쭈그리고 있는 생쥐처럼 보였습니다. 남자의 꾸지람은 이제 어느덧 잔소리로 바뀐 것입니다. 안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조차 눈길은 그쪽으로 집중되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조차도 이제는 그 남자의 잔소리에 눈을 흘기는 모습들이 역력하였습니다.

흘깃 남자의 바지 쪽을 쳐다보니 그리 심해보이지도 않았고, 여전히 계속되는 남자의 잔소리에 안되겠다 싶어 가까이에 있던 제가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저씨 그만하시죠..가만 보니 학생들도 반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솔직히 학생들이 반성을 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과하다 싶을 정도의 잔소리, 이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의기양양하던 남자는 별 희안한 놈이 별 참견을 다 한다 싶었는지, 한번 흘깃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이제 안에서는 조금 전의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습니다.

어른이 어린사람에게 하는 말들을 보면 누가 뭐래도 인생경험이 많은 경험자의 말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진정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감격적인 말이 있는 반면에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가벼이 듣고 흘려버리는 경우의 말도 있습니다.

아마도 공감대의 차이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어느 선을 넘어서 슬슬 지겹지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언제 역효과가 벌어질지 모를 일입니다.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학생들에게 명쾌하고 간략한 꾸지람은 그들에게 도움이 줄 수 있지만, 그게 훈계를 넘어서 잔소리로 변질되게 되면 그들로부터 어떠한 역효과는 물론이요, 어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어른다워야 어른인 것입니다. 애들이 볼까 두려웠던, 같은 기성세대로서 낯 뜨거웠던 상황이었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파르르의 세상과만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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