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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아빠가 없으면 안 되는 이유, 아들에게 물었더니

by 광제 2010.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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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없으면 안 되는 이유, 아들에게 물었더니

지난 금요일의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포스트 송고를 마치고 지인 블로그를 살펴볼 때에 발생한 일입니다. 갑자기 건물이 기우뚱하더니 순간적으로 몸이 오른쪽으로 쓰러져 방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진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컴퓨터 책상을 잡았으나 속수무책, 쓰러진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워놓고 보니 지진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찰나에 찾아온 어지럼증, 난생처음 겪어 보는 몸의 이상증상이라 당황하였습니다. 왜 이럴까? 겨우 몸을 가다듬고 의자에 앉으니 잠시 후 정신을 차릴 수는 있었지만, 약 1시간 후에 또다시 찾아온 어지럼증, 이번에는 좀 전보다 더욱 심하게 어지럽습니다. 구역질에 속까지 메스껍고 견딜 수 없는 어지럼증은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몸뚱어리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못 견디게 하였습니다.

거실에서 머리를 감싸고 나뒹구는 아빠와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아내와 애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가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몸의 이상증상에 손을 쓸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우선 냉수를 한잔 억지로 들이키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메스꺼운 속을 해결하고 나니 한결 편해지긴 하였습니다.

왜 이럴까? 이제 40대 중반의 나이,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갑니다. 우리나라의 남자들이 가장 위험할 때가 40대라는데, 나한테도 그런 위험이 찾아오는 걸까? 실제로 나한테 그런 일이 찾아온다면 우리 가족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머리를 쥐어 감싸고 있을 때에조차도 갑자기 찾아온 고통보다는 아내와 애들에 대한 걱정이 잠재된 의식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한결 안정을 찾은 후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아내는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일단 동네에 있는 내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자고 합니다. 애들을 집에 두고 아내와 단둘이서 찾아간 내과, 내과에서는 여러 가지의 경우가 있고 위장 내에서의 출혈은 아닌 듯하니 신경과에 가서 다시 한 번 진찰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신경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나니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좌우 귓속에는 달팽이관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기관들이 있는데, 좌우 평형을 잡아주는 안테나처럼 생긴 평형기관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귀 안에 있는 평형기관에 이상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약물치료가 가능하고 며칠간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하여 물리치료와 약물치료까지 받고 나니 오후 2시가 넘어 버렸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 애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는 현관으로 뛰쳐나오는데 상당히 놀란 듯합니다. 예기치 않는 부산함으로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상황이므로 아내는 부랴부랴 늦은 밥상을 차립니다. 밥상을 둘러앉은 아내와 애들을 보니 긴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옴을 느꼈지만 애써 감추고는 이제 초등생 4학년인 아들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극단적인 질문은 하면 안 되겠다 싶어 약간은 부드럽게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아들~! 아빠가 말이야...아주 오랫동안 말이야..아파서 만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아빠가 있는 것이 좋지만...만약에 곁에 없을 때 안 좋은 점이 무엇이 있는지 얘기 좀 해봐 봐~! "

한참을 망설이면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나보다는 엄마가 더 불편할 것 같은데..."

"왜에?"

"엄마가 힘들일 있을 때 아빠 찾잖아..없으면 불편할 것 같은데.."

"그러네...그럼 네가 생각하는 거는 뭐 없어?"

갑자기 던져진 질문에 조금은 당황이 되었던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아빠~! 아빠가 없으면 누가 돈 벌어 와? 우리 집 완전히 가난해 지겠네..."


"......;;"

아들 녀석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할 말을 잃어 버렸습니다. 비록 어린 동심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해지더군요.. '아빠가 없으면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라는 대답을 은근히 바랬지만 결국 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극한 상황, 나에게도 당장 무슨 일이 일어 날수도 있을 것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내와 애들의 얼굴들이 무수히 스쳐 지나갔지만, 가장의 자리라는 곳에서 바라보는 가족들의 모습과 그 가장을 바라보는 아내와 애들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런데 오늘 문득 유난히 지쳐 있는 아내의 모습을 확인하였습니다. 다급했던 상황을 곁에서 지켜본 아내의 얼굴이 갑자기 수척해진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했지만 짧은 시간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설거지를 끝낸 아내, 오늘따라 유난히 어깨가 저려 온다는군요. 쓰던 글을 멈추고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어 보니 부드러워야 할 아내의 어깨가 나무토막처럼 뻑뻑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듣기 좋은 대답 한마디를 기대하는 나 자신의 욕심에 오히려 얼굴이 붉어짐을 느낍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파르르의 세상과만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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