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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어버이날이면 나를 울리는 28년 전 어머니 솜씨

by 광제 2010.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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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소중한 어머니의 28년 전 베개

어버이날이 따뜻한 봄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따스한 햇볕이 아파트 베란다로 스며들 때면 가끔 한번씩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베개에 햇볕을 쬐는 일입니다. 메밀로 만든 오래된 베개라서 세월이 흐를수록 먼지도 많이 생기고 그러네요. 그럴수록 자주 햇볕을 쬐어야 하는데 그게 맘대로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겨울철 동안 베개 겉은 갈아 끼웠어도 한번도 햇볕을 쬔 적이 없는 메밀베개, 몇 일전 따스한 봄 햇볕을 쬐었습니다.

2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정말 엊그제 같은데 지금 세어 보니 28년이네요.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입니다.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2시간을 이동한 후 다시 걸어서 20여분을 이동해야 학교에 갈 수 있었으니 집에서 통학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고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취방을 얻은 후 자취에 필요한 세간을 들여 놓던 날, 어머니는 오랜만에 아들의 자취를 위해 돈을 쓰셨습니다. 비키니옷장, 스폰지로 된 요, 그리고 꽃무늬 이불, 솜이 들어간 푹신한 베게, 석유곤로와 냄비, 그리고 그릇 몇 가지. 당시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저에게는 대단한 세간 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빠트린 것은 없는지 살피던 어머니, 일주일에 한번은 꼭 집에 다녀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고, 난생 처음 집을 떠나 객지에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자취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며칠을 지내고 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아픈 겁니다. 어떤 날은  아예 목을 틀지도 못할 정도로 아픈 적도 있었지요.

처음 다가온 토요일 오후, 집에 다니러 가야 하는 날입니다. 반갑게 맞아 주시던 어머니에게 저는 자고나면 목이 아프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이내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어머니.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메밀겨를 넣으시고는 베개하나를 뚝딱 만들어 내셨습니다. 일요일 오후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저의 손에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메밀베개 하나가 보따리에 쌓인 채 들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기한 일도 다 있을까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베개를 베고 난후에는 목의 통증이 말끔하게 사라졌으니 말입니다. 그 후로는 메밀베개가 아니면 목이 아파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습관이 되어 버렸는데요, 당시에는 메밀베개와 솜 베개가 왜 이렇게 틀린가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었습니다. 단지 어머니의 신기한 요술이 통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어릴 적부터 배가 아파도 어머니께서 한번 슬쩍 쓰다듬어 주시면 이내 낫곤 했었기에 모든 것은 어머니의 명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아내가 해온 이부자리와 베개를 베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여전히 다른 베개는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고 다시 예전에 쓰던 그 베개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나의 곁을 떠난 적이 없는 낡은 메밀베개. 베개 겉을 벗겨보니 푸석푸석 먼지가 일어납니다. 어머니의 투박한 바느질도 엉성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쬐는 따스한 햇살이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언제까지나 나의 분신처럼 곁에 있어야 할 메밀베개, 이 메밀베개는 나의 분신이기 이전에 어머니의 분신이었습니다. 언제나 늘 나의 곁에서 나를 지켜 주셨으니까요. 2004년 1월에 돌아가셨으니 이제 자식 곁을 떠나신지도 6년이 지났습니다.

한밤중에도 슬금슬금 들어오셔서 이마를 짚어 보시고 이불을 덮어 주시던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들어오셨다가 가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스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어머니의 손길이 묻어 있는 메밀베개를 만지작거리며 너무나도 그리워지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어버이날이라 더욱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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