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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가족♡] 자린고비 아버지가 미웠던 이유

by 광제 201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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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린고비 아버지가 미웠던 이유

쳇바퀴 돌 듯 하루 일을 마치고 꼬질한 땀 냄새를 풍기는 속옷을 세탁 바구니에 던져 놓으면 아내는 깨끗하게 세탁하여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는 속옷 바구니에 차곡차곡 넣어둡니다.  열 켤레가 넘는 양말을 포함하여 여러 개의 속옷들, 충분한 수량으로 갈아입는데도 가끔은 빨아놓은 속옷이나 양말이 없어 곤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미처 세탁하지 못한 경우인데 이럴 때는 하찮은 일이지만 아내와 작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오늘은 문득 속옷바구니에 가지런히 놓인 양말을 보니 수십 년 전 아버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25년이 흘렀습니다. 손으로 이것저것 만지는 걸 참으로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동네에서 소문난 재주꾼이셨습니다. 동네사람들이 고장 난 물건이 있으면 담배 한 갑 사들고는 죄다 우리집으로 갖고 오곤 하였는데, 뚝딱뚝딱 만지기만 하면 감쪽같이 수리가 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손재주 좋은 아버지가 계셔서 좋은 점이라곤 당시에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어린 마음이라 그랬겠지만 검정고무신을 신고 학교를 다니던 초등학교시절, 비록 고무신이긴 하나 새 신발 한번 신어보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이유는 바로 손재주 좋은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고무신이 가장 먼저 닳는 부분은 뒷 굽인데, 빵꾸가 나자마자 아버지가 고무를 덧대어 감쪽같이 수선을 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고무신만이 아니었고 들고 다니던 가방에서부터 시작하여 심지어는 양말까지 손수 꿰매주시곤 하셨습니다. 오죽했으면 바느질 솜씨도 어머니보다 더 좋았으니 할 말 다한 겁니다. 꿰맨 양말에 빵꾸 때운 검정고무신, 이게 초등학교 시절 저의 모습이었는데,  가난했던 당시의 집안 사정에는 아랑곳 않고 당시에는 늘 불만이었습니다. 아껴야 잘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이후에도 어디까지나 그건 희망사항으로 그쳤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는 양말을 꿰매주시며 절약을 강조하시던 아버지에게는 정작 양말이 한 켤레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켤레의 양말을 두고 갈아 신는 것이 보통이지만 당시에 아버지에게는 언제는 양말은 달랑 한 켤레였습니다. 어떻게 한 켤레의 양말로 생활이 가능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양말이 두 켤레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만의 방식이 있었는데, 잠들기 전, 손발을 씻으면서 하루 종일 신었던 양말을 손수 빨아서 널어두는 것입니다. 물기를 꽉 짜서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밑에 널어두면 밤새 말라 다음날 아침에 신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 그다지 달가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고나서야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마당을 청소하게 끔 하였던 아버지는 평소에도 게으름 피우는 것을 가장 싫어하였습니다. 한 켤레의 양말만 있어도 충분하다며 몸소 그 방법에 대해서도 실천으로 보여주셨던 아버지, 깊게 패인 주름보다 더 깊었던 그 뜻이 이제 자식을 둔 아버지가 되고서야 더욱 진하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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