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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300원 들어 있는 아내의 지갑을 보고나니

by 광제 2010.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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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원 들어 있는 아내의 지갑을 보고나니

아주 가끔은 아내의 지갑도 열어봐야 할까 봅니다. 아내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준다는 이유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내의 지갑 속을 들여다 볼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는 이 때문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애에게 혼쭐이 났습니다.

학교에서 돌아 온 딸이 갑자기 아빠의 지갑을 좀 구경해도 되냐고 물어옵니다. 뭔 일인가 궁금한 마음에 지갑을 내어줬더니, 지갑의 칸칸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와~아빠의 지갑 속에는 6만원이 들어있네..."

".......;;"

"근데 엄마지갑에는 왜 매일같이 돈이 없는 건데?"

"그래?"

알고 보니 문방구에 사야할 것이 있어 돈이 필요하다는 딸애를 자기에게는 돈이 없으니 아빠에게 달라 하라며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다는 엄마의 말이 믿기지 않았는지 엄마의 지갑을 열어보고는 정말로 돈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아빠인 저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딱히 정해진 금액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의 지갑 속에 현금이 없으면 계좌에서 인출하여 항상 5~10만원은 채워놓는 아내입니다. 그런 후 간혹 소액이 필요하면 남편의 지갑에서 꺼내 쓰는데, 아내의 이런 행동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가정을 꾸려가면서 현금은 매일같이 쓰여 질게 분명한데 자신의 지갑 속에는 변변한 현금조차도 넣어두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헤프게 쓰여 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무분별한 지출을 방지하고 절제를 하기 위한 아내만의 방법이었습니다.

많은 불편이 따를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내의 뜻이 그러하니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패턴,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고 딸애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대체 지갑 속에 돈이 얼마나 있는 것일까. 마침 궁금하기도 하여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에 열어봤습니다.


조그마한 핸드백 속에 들어있는 지갑을 열어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눈을 씻고 아무리 찾아봐도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탈탈 털어야 나온 건 단돈 300원입니다. 신용카드와 현금카드 한 장씩 그리고 마트의 포인트 카드 한 장이 전부입니다. 털썩 주저앉아 한참동안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런 모습이 아내에게 들키기라도 할까봐 주섬주섬 집어넣었습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수년 동안을 별다른 불편 없이 살아 왔고, 그게 아내의 뜻이긴 했어도 막상 지폐 한 장 없는 아내의 지갑 속을 보니 여간 마음이 아리는 게 아닙니다. 아니 한편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더군다나 이제 초등학생인 딸애의 눈에도 텅 비어 있는 엄마의 지갑 속이 너무 초라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변변치 못하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남편의 지갑 속이 비어 있으면 많은 금액은 아니어도 곧잘 채워 넣으면서도 자신의 지갑 속에는 천 원짜리 한 장도 넣어 두질 않고 지내 왔었네요.

아무리 절제도 중요하지만 이제 커가는 애들에겐 용돈을 꺼내주는 엄마의 모습도 필요해 보입니다. 갖고 있는 6만원의 절반을 뚝 떼어 아내의 지갑 속에 넣어뒀습니다. 아내는 한참동안을 돈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겠지만, 행여 딸애가 텅 비어 있는 엄마의 지갑을 또 한 번 보게 된다면 어떠한 후환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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