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만사

우연히 본 길냥이의 가엾은 모성애

by 광제 2010. 6. 6.
반응형



소박한 항구를 끼고 있는 마을, 제주도 애월의 '곤밥 보리밥'이라는 맛집을 찾았습니다.
 바닷바람이 세차기로 유명한 제주도 해안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트막한 슬레이트 지붕에
걸음마 아가의 키 높이나 됨직한 돌담으로
올레길을 터놓은 들머리,

간판마저 없었다면 용빼는 재주가 있다한들
감히 누가 이곳이 음식점이라고 짐작이나 할까.

아주 오랜만에 시골집을 찾아온 듯한 느낌,
어디선가 어머니가 맨발로 뛰쳐나올 것 같은
아늑한 분위기에 이끌려 발길을 옮기다가
텃밭 언저리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가만 보니 텃밭뿐만이 아니고
돌담 위와 여기저기 곳곳에 고양이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웬 고양이들이 이리 많을까.
이곳의 주인으로 보이는 분께 여쭸습니다.
모두가 길냥이들인데,
한 두 번 끼니를 챙겨주다 보니 이제는 거의 살다시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 돌담 위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고양이 무리가 시선을 끕니다.
자세히 보니 어미고양이와
새끼로 보이는 아기고양이 세 마리가
좁다란 돌담위에 서로 뒤엉켜 있습니다.
 


발길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아기 고양이들이 엄마의 젖을 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저토록 좁다란 돌담 위라야 했을까요.
돌담 아래 평편한 곳도 많은데,
아기냥이들이 곡예를 하듯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 아찔하기만 합니다.
행여 돌담 아래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 합니다.

아기냥이들에게는 위험한 곳인 줄 알면서도
돌담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어미냥,
그러고 보니 어미냥이 일부러 험한 곳을 찾아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아기냥이들의 크기로 보아
이제 젖을 뗄 때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젖을 물려고 달려들자 궁여지책으로 위로 올라간 듯한데,
어렵게 돌담 위까지 올라온 새끼들마저는 외면할 수 없었던지 가만히 젖을 허락합니다.
 

아기냥이들에게 오랫동안 젖을 먹이며 시달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영양섭취를 못해서 그런 건지,
엄마냥이의 모습이 초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축 늘어진 젖가슴에 깡마른 얼굴,
 



귀찮게 달려드는 아기냥 때문에 돌담위로 피했건만
그 위에까지 따라 올라온 녀석들에겐
차마 어쩌질 못하나 봅니다.
바둥바둥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녀석들을 보살피려 여간 신경을 쓰는 게 아닙니다.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도
수차례에 걸쳐 아기냥이들이
돌담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때마다 엄마냥이와
 다른 아기냥들의 시선을 그곳으로 집중됩니다.
굴러 떨어진 아기냥은
다시금 안간힘을 내어 돌담 위를 기어오릅니다.
돌담위에서 가만히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냥은 힘들게 올라온 아기냥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보듬어 줍니다.







그러다가 잠시 엄마냥이 자리를 뜨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기냥들은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합니다.
엄마를 찾아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녀석,
둘담 위에서 갈팡질팡하는 녀석,

오랫동안 자신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느라
 참아왔던 갈증을 해소하려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도 모를 일인데 말입니다.

잠시 뒤,
엄마냥이는 또 어디에선가 아기냥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을 테지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