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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고등학생들 앞에서 느꼈던 공포의 순간

by 광제 201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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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내의 모 관광지 사무실에 볼일이 있어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곳 화장실에서의 일이다. 가뜩이나 비좁은 화장실인데도 불구하고 안에는 학생들이 가득 차 있다. 수학여행단이 몰려드는 계절이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겠지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아는 이곳 화장실의 구조는 달랑 소변기 하나에 양변기가 하나이다. 최소한 많은 학생들이 안쪽에 몰려 있을 이유가 없다.


안으로 들어서니 학생들이 흠칫 놀래는 기색을 한다. 손에는 제각각 담배가 들려져 있었고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재빨리 숨겨 보지만 이미 볼 건 다 본 상태였고 좁은 화장실 안은 자욱하게 담배연기로 가득 들어차 있다. 학생들이 인솔교사의 눈을 피해 화장실로 몰려들어 흡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체로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들, 어림잡아 열 명은 되어 보였는데 왜 그렇게 덩치들은 하나같이 큰지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바짝 경계를 하는 눈빛들이 일제히 나를 쏘아보고 있는 가운데 학생들이 소변기 주변을 에워싸고 있어 도무지 비집고 들어 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용변이 급해 달려왔으나 그것도 잠시 잊은 채 뒷걸음질로 빠져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일단 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흡연을 목격하였기에 어른 된 입장에서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한소리 해야 할 듯싶다.


요즘 하는 말로, 고3보다 무서운 애들이 중3이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다.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얘네들은 그 무서운 중3이 아니고 고3으로 보인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다시 들어갔다. 여전히 재잘거리며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담배를 숨기지도 않는다. 쏘아보는 눈빛들도 한결 여유로워졌음이 느껴진다. 아니 여유롭기 보다는 째려보는 듯하다. 이미 각오한바 아닌가. 남자가 칼을 뽑았으니 호박이라도 찔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밀고 들어갔다.


"학생~! 좀 비켜줄래? 소변 좀 보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리 더운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등에는 흥건하게 땀으로 젖어 있음이 느껴진다. 한마디 했다가는 녀석들이 웬 참견이냐며 우르르 달려들 것만 같다. 어린 학생들에게서 공포감을 느껴본 것 또한 처음이다. 이제는 대 놓고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오히려 제재하기는커녕 방관자가 되어 버린 듯한 자괴감마저 든다.


용변을 마치고는 공포의 순간을 빠져 나오는데, 흡연을 마친 학생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다함께 우르르 몰려나온다. 뒤통수가 간지럽고 머리가 쭈뼛하게 선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관리실로 들어서면서 관리인이 들으라는 뜻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뭔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그리 담배를 피워대는지 원...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또 학생들이 담배를 펴요?"


재차 물어오는 뉘앙스를 보니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듯하다. 잽싸게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 가보지만 이미 학생들은 다 빠져나간 뒤다. 관리인이 재빠르게 달려갔던 이유는 바로 화재를 염려해서였다. 학생들이 몰려들어 흡연을 하고난 뒤 채 불이 꺼지지 않은 꽁초를 휴지통에 버리는 바람에 화재가 불이 붙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위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 청소년들의 비행을 눈앞에서 목격을 하고도 내가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가지 한 게 있다면 뒤 돌아서서 혀를 찼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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