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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맛집&카페

30년 전통의 멸치국수, 홀딱 반해버린 춘자싸롱

by 광제 2010.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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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평범해서 아주 특별했던 곳

보고 듣기만 했던 국수집. 무려 30년 동안 오직 한 가지 메뉴인 멸치국수만 파는 집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곳까지 무려(?)50여km, 단지 국수 한 그릇 먹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 보다는 아주 우연한 기회를 핑계 삼아 나그네의 기분으로 찾아가려 마음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일찍 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남들이 다녀온 바로는 양은냄비에 투박하게 국수를 담아내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보잘 것 없는 그런 국수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은냄비에 담아낸 국수, 어디선가 아주 많이 봐왔던 익숙한 광경입니다. 그러고 보니 학창시절이었군요..


학교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가 있었습니다. 그 향이 너무 진하다 보니 수업에 방해될 정도였는데, 바로 멸치국물을 우러내는 냄새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교실에까지 그 냄새가 전해져 왔던 것을 보니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국물을 우러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약속이나 한 듯이 앞 다퉈 구내식당으로 달려갑니다. 조금만 늦어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까닭입니다. 이미 구내식당 안에는 구수한 멸치향이 진동을 합니다. 마침내 받아든 양은냄비에 담긴 국수, 한창 먹어야 하는 나이라 비록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했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구수한 추억입니다.

제주도에서도 유난히 변두리로 알려져 있는 표선리에 자리잡고 있는 춘자멸치국수, 이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곳에 가면 왠지 학창시절에 느꼈었던 아주 구수한 멸치 우러내는 향을 맡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예감은 100% 적중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국물향이 얼마나 진했으면 주차를 하고 있는 길 건너까지에도 전해져 옵니다. 그런데 이미 식당 안은 사람들로 들어차 있습니다. 좁디좁은 홀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근 표선백사장을 잠시 산책하고 나서야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조금 전 보다는 많이 한가해 진 듯 보였으나 실내에는 여전히 진한 멸치향이 진동을 하고 있었고, 얼핏 보기에 60대 정도 되어 보이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주방에서 조금 전에 훑고 지나간 손님들의 뒤처리를 부산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의 주인인 춘자씨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정보를 입수(?)하고 오긴 했지만 습관적으로 메뉴판을 찾아 두리번거렸으나 내가 원하던 메뉴판은 찾을 수 없었고, 벽체의 한곳에 어눌한 글씨로 써 붙여진 종이짝 한 장, 유일한 메뉴판이었습니다. 하긴 메뉴라고 해봐야 멸치국수가 전부이니 이보다 화려한 메뉴판이라면 왠지 사치스러워 보일수도 있겠습니다.


보통이 2천5백 원, 곱빼기가 3천5백 원입니다. 여름한철인 6월부터 8월까지에 한해 콩국수를 추가 한다고 합니다. 보통으로 한 그릇 주문을 하고나서 실내 분위기를 넌지시 살펴봅니다. 주인인 춘자씨는 이곳에서 생활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실이 딸려있는 홀에는 6~8명이 앉을 수 있는 탁자가 달랑 두 개 놓여 져 있고, 주방에는 아주 작은 싱크대하나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작은 선반에는 양은냄비들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고, 멸치 국물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양동이가 미니가스렌지 위에 올려 져 있습니다.

미리 삶아 놓은 국수 적당량을 덜어내 몇 번 헹구어 양은냄비에 담아내고는 국물을 부어 그 위에  무엇인가 툭툭 털어내는데 내어오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2분 남짓, 상당히 빠른 손놀림이었습니다. 진행 과정을 보니 정말 듣던 대로 주방이 커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 집의 내력에 대해선 잠시 후에 듣기로 하고 젓가락을 집어 들었습니다.


양은냄비 가득히 충분하게 들어있는 국수발, 면발이 상당히 굵어 보였는데 이정도면 중면인가 봅니다. 숭숭 썰어 넣은 쪽파와 참깨를 섞은 시뻘건 고춧가루가 전부입니다. 고명이라고 해서 따로 얹어놓은 것은 없습니다. 밑반찬도 달랑 한 개 아주 알맞게 익은 깍두기가 전부입니다.



단지 쪽파와 고춧가루뿐인데도 불구하고 맛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미리 삶아 놓은 면발이라 우습게 볼게 아닙니다. 면발이 굵어서 그런지 몰라도 씹히는 맛도 그만입니다. 더욱이 진하게 우러난 멸치국물이 압권인데,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서 그런지 얼큰하기까지 합니다. 간밤에 약주를 거하게 하신 분들이라면 해장용으로 딱 어울릴 것 같은 맛입니다.


맨입에도 자꾸만 젓가락이 가는 깍두기의 시원하면서도 상큼한 맛, 혀에 술술 감기며 넘어가는 면발, 이미 배가 불러 국물은 남겨두려 했는데 한번 들이키기 시작하고는 한 모금만 더, 한 모금만 더하다가 기어코 냄비의 바닥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하! 하고 한숨을 토해내는데, 갑자기 학창시절에 앞 다퉈 먹었던 국수 맛이 떠오릅니다.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국수 한 그릇인데 도대체 어디서 이런 맛이 나오는 걸까, 비밀은 분명 국물에 있는 듯한데, 단지 멸치만 오랫동안 우러낸다고 해서 이런 맛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고, 알고 보니 제주에서만 나온다는 어떠한 생선의 새끼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주 토박이인 내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게 어떤 생선인지 도통 감이 오질 않습니다. 이런 부분은 더 캐려고 하면 실례입니다.

얼마나 되셨냐고 여쭸습니다. 1981년부터 장사를 시작했으니 무려 29년의 전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오로지 한 가지 메뉴, 멸치국수만을 고집해 왔다는 것입니다. 순간,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올까 하고 의문을 품었던 조금 전의 일이 부끄럽다는 생각이든 것입니다. 30년 동안 한 가지 음식만 만들어 왔다면 거기에 쏟아온 열정과 노하우, 장인정신 하나만으로도 남들이 흉내 낼 수 없을 비법(?)이 담겨있을 테니 말입니다.

1981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영업을 했던 과거의 춘자싸롱

지금은 버젓이 상호를 내걸고 전화번호까지 대 놓고 영업을 하고 있지만, 과거 수십 년 동안은 상호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이 국수집을 해왔다고 합니다. 현재는 춘자멸치국수로 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춘자싸롱'으로 불렸습니다. 주인인 강춘자(66)씨의 이름에서 딴것인데, 동네의 아저씨들이 해장을 위해 많이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붙여준 이름이 바로 춘자싸롱이라고 합니다. 물론 지금도 춘자싸롱으로 더욱 알려져 있습니다.

표선면사무소 근처에 있다가 가게가 너무 낡아 지금의 도로변으로 이전을 한 것이 지난해 5월17일, 그렇다고 해서 화려하게 확장이전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촐한 주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고, 단지 틀려진 것이 있다면 손님용 탁자만 한 개에서 두 개로 늘었다는 것 뿐, 그러고 보면 규모가 두 배로 늘었으니 확장이전이 맞긴 한건가요?

현재의 춘자싸롱

80년대 초, 개업당시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양의 국수가격은 당시에 700원, 이후에 물가가 오르면서 천5백 원으로 오르고,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에 2천 원으로 인상한 후 최근까지도 그 가격을 고수해오다 근래에 물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2천5백 원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인근으로 제주올레 코스가 생기면서 소문을 듣고 올레꾼들이 많이 찾아와줘 매상도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독특한 맛에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언제까지나 누구라도 편한 마음으로 들러주고 먹고 갔으면 좋겠다는 춘자씨, 건강이 허락 할 때까지 춘자싸롱의 문은 열려있을 것이라 합니다.
영업시간은 오전 7시30분부터 저녁7시30분까지입니다. 연락처: 064-787-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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