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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있는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린 시간은 정확히 새벽 2시였습니다. 열대야로 시달리다보니 깊게 잠이 들지 않았던 때라 벨소리를 처음부터 감지할 수 있었고 한밤중이라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잠을 설치고 있는 상태, 설상가상입니다. 약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인터폰을 받아보니 경비실입니다.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경비실입니다."

"경비실에서 무슨 일인가요?"

한밤중에 곤히 잠들어 있을 시간인걸 알면서도 깨울 수밖에 없었던 급한 사정이 있었나 봅니다. 그 급한 사정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다름 아닌 에어컨 때문이었습니다. 아래층에 살고 있는 세대에서 에어컨의 소음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면서 경비실로 항의전화를 한 것입니다. 아래층에는 올해 초 새롭게 이사를 와, 인사도 제대로 못했고 눈인사만 몇 번 주고받은 아직은 가깝고도 먼 이웃입니다.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문을 닫고 있어서 그랬는지 밖에 있는 실외기의 소음을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문을 열고 잠을 청하는 아래층에서는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었나 봅니다. 나 좋자고 남에게 피해는 줄 수 없어 바로 에어컨 가동을 중단하였습니다. 수십 년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한밤중에 에어컨을 가동했던 것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었고 이번 또한 그중에 한번으로 에어컨은 틀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처남부부가 일을 다니는 바람에 우리 집에서 어린 조카를 돌봐주는데, 마침 처남부부가 동료들과 회식이 있어 조카를 데리고 갈 시간이 늦어지겠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날이 밝으면 데리고 올 건데 그냥 우리 집에서 재우는 것으로 의견일치를 본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는 밤입니다.


문제는 어린조카가 더위에 아주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도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는데, 땀띠가 생기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긁기 때문에 어떤 때는 피부가 벗겨지기도 합니다. 이를 보다 못해 하는 수 없이 약하게라도 에어컨을 가동한 것입니다.

비록 어린 조카를 위한다고는 했지만 이웃의 잠을 설치게 했다는 것의 은근히 맘에 걸립니다. 나중에 찾아가던가 아니면 승강기에서라도 만나면 죄송하다는 말이라도 건넬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시간이 바로 다음날 아침에 와버렸습니다. 아내가 조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려고 승강기를 탔는데 공교롭게도 아래층 주인과 얼굴을 마주친 것입니다.

아내는 바로 어젯밤에는 죄송했다며, 여차저차해서 그리되었다고 에어컨을 가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얘기를 들은 아래층 아주머니가 정색을 하면서 조카를 부둥켜안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애가 병원에 간다고 하니 자신들이 항의 때문에 애가 더 아프게 되어 병원에 가는 것으로 오해 아닌 오해를 했었던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생각이 부족한 것은 분명 우리 쪽인데도 불구하고 괜한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아래층 아주머니는 조카에게 주라며 과자를 한 꾸러미 사들고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볼일을 보려고 승강기를 이용해 내려가는데 바로 아래층에서 아주 연세 드신 할머니가 승강기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할머니입니다. 인사를 드리면서 몇 호에 사시냐고 여쭈어보니, 바로 아래층에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이사를 온지 꽤 되었는데 할머니는 처음 봅니다. 어디를 가시냐고 재차 여쭸습니다. 잠도 못자고 온몸이 쑤셔 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승강기에서 있었던 할머니 얘기를 했더니, 아내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래층에 모시고 사시는 할머니는 아주머니의 어머니시랍니다. 병환에 시달리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그날 밤도 시끄러운 에어컨 소음 때문에 시간이 깊어감에도 잠을 못 이루시는 어머니를 보다 못해 경비실로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아내에게 이 말을 전해 듣고 나서야 요 며칠간의 일들이 스쳐갑니다. 서울에서 노모의 병환 치유를 위해 공기 좋은 제주도로 왔다는 아주머니의 너무나도 따뜻한 마음에 잔잔한 충격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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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훈훈한 글 잘보고 갑니다 ^^

    아랫집 할머님과 어린 조카분이 얼른 건강해졌으면 좋겠네요 ~ ^^

    2010.07.23 09:10
  3. 철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동네에는 맘씨 아름다운 분들만 사시는 동네인가 봅니다.
    날씨가 더워서 짜증내고 싸우는 사람들도 많이있는데 말이죠
    부러우면 지는건데
    오늘은 졌네요..

    2010.07.23 09:10
  4. Favicon of https://donghun.kr BlogIcon 멀티라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정말 좋은 이웃을 두셨군요!! ㅎㅎ
    진정 마음이 따뜻한 이웃이 있어 사는 재미가 날거 같습니다.

    2010.07.23 09:34 신고
  5.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ㅋ
    두분다이해가 됩니다

    2010.07.23 09:34
  6.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불어 사는 세상...^^
    마음씨 따뜻한 이웃을 두셨네요~

    한번 날을 잡으셔서 집으로 초대하셔서 차라도 한잔 하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어 보시는것도 좋을듯 해요~ㅎㅎ

    시원할 하루 보내세요!

    2010.07.23 09:47
  7.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저도소음때문이였는데...
    괜히파르르님글보니미안해지네요.
    비슷한글이있어트랙백하나걸고갑니다.
    저도해결이됐는지어제는좀조용해졌습니다.

    2010.07.23 10:58
  8. Favicon of https://sunjinsu.tistory.com BlogIcon 멋쪄   수정/삭제  댓글쓰기

    윗집에서 나는 소음때문에,,,
    얼굴 붉히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끼리 말을 하지 않아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데...
    짠하네요. ㅎ_ㅎ

    2010.07.23 11:56 신고
  9.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이웃이랑 함께 살고 계시네요~
    좋은 이웃을 만났다는 것은 파르르님과 파르르님의 아내되시는 분이 좋은 성품을 가지신 분이라 그렇겠지요..^^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상대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나 또한 마음을 열지 않는게.. 우리들이니까요 ㅠ.ㅠ

    2010.07.23 12:24
  10. Favicon of http://blog.daum.net/powerhorse BlogIcon 적토마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파르르님 글에는 사람 냄새가 진하게 베어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ㅎㅎ^^

    2010.07.23 12:29
  11.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보면 서로 기분 상할 수도 있었던 일인데.. 아랫집 분들도 그렇고 파르르님도 그렇고
    서로 잘 해결된 거네요 ~~~ 너무 따뜻해 보이는 이웃입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 물론 조카와 아랫집 할머니는 별로 안 좋으시겠지만요..
    잘 보고 갑니다 ~~ 기분이 좋아지는 글이네요 ~

    2010.07.23 12:52
  12. Favicon of https://shlim1219.tistory.com BlogIcon ★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정말 훈훈한 글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서로를 조금만 배려하고, 조금만 미안한 마음을 가져도 세상이 이리 아름다워지는 것을...
    정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10.07.23 14:41 신고
  13. Favicon of http://juisy.tistory.com BlogIcon 강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답네요. 대단하세요. 윗님말씀대로 훈훈한 글이였습니다. 추천드립니다. ^^
    그리고 시간 괜찮으시다면 제 블로그에도 한번 들려주세요.
    저번에 이어 이번에는 블로그로 보험홍보시 어느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지 공개하였으니 확인하시고 마음에 들면 추천 해 주셔도 되고 마음에 안들면 안하셔도 되니 심심풀이로 들러주세요~ ^^;

    2010.07.23 14:50
  14. Favicon of http://egoggan.com/story BlogIcon 이곳간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훈훈한 얘기여요^^ 마음이 따뜻해져서 갑니당~~

    2010.07.23 15:02
  15. 깡미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간 너무 찡해졌어요 ㅠ
    작은 소음도 너무 귀찮고해서... 짜증부리기 쉬운데...
    에어컨 이야기나오자 에어컨 열기가 그대로 방치되게 둔 건물이 생각났었는데;; 전혀 다른 이야기;;
    좋은 이웃들이 서로 만났네요.. ^^

    2010.07.23 16:46
  16. Favicon of http://blog.daum.net/2losaria BlogIcon 굄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싸울 일도 없지요.
    좋은 이웃이 되겠군요.
    축하드립니다.

    2010.07.23 16:58
  17. Favicon of http://ch76.co.kr BlogIcon 키다리아저씨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의 배려가 넘 아름다운 얘기로 들려요~~
    저도 저희 윗집 아래집과 친하지 못한데 인사라도 드려야 겠단 생각이 들어요~~

    2010.07.23 17:35
  18. Favicon of http://blog.daum.net/cola1018 BlogIcon 바람될래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저런분이 있었네요..^^
    그래도 세상을 아직 살만하다고 파르르님 글을 읽고
    또다시 느껴봅니다..

    2010.07.23 18:27
  19. 두아들엄마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혹시 아래층 시끄러울까봐 늘 조심시켜 어떨때는 너무 뭐라하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저희 윗층에도 저희 작은애보다 더 작은 유치원생정도의 아이가 있는데 밤마다 뛰어다닙니다....물론 어른들이 뭐라하겠지만 어린 아이들이야 돌아서면 금방 까먹으니...얼마전 큰 아들이 윗층 할머니와 같이 엘리베이터탔는데, 손자뻘되는 우리 큰 애한테 아이가 뛰어다녀 정말 미안하다고 하셨다고하네요...밤늦게도 쿵쾅거릴때가 있어 뭐라할까하다 참았는데, 그 할머니도 손자 뛰어다니는거 아마 말려도 잘 안돼 저희 아들 본 김에 사과까지 하신 것 같습니다...요즘은 밤에 그냥 TV소리 한 볼륨 더 높여둡니다....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뭐 TV보면서 약간 울려도 괜찮더군요...조금만 마음을 비우고 양보하면 자기자신이 제일 편한 것 같습니다.

    2010.07.23 19:18
  20. Favicon of https://boskim.tistory.com BlogIcon 털보작가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어콘 소음은 생각못해 봤는데, 예상외로 크게 들렸나봐요.

    2010.07.23 20:48 신고
  21. 살만한 세상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같으면 내집에서 에어컨도 못틀고 살아야되나 해서 기분나쁘고 밑에 집이 꼴도 보기싫을텐데. . .
    이해심이 많으시군요. 밑에집 아주머니도 얼마나 미안했으면 아이를 안아주며 과자까지 사주셨을까요
    읽으면서 흐뭇해지고 이런 이웃들만 있다면 살만한 세상 같은데 요즘 너무 배려없이 살아 안타까울때가
    있어요

    2010.07.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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