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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축구공 사달라는 아들, 끝내 안사줬더니

by 광제 2010.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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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에는 동네 어디를 가더라도 애들이 뛰어 놀 곳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금은 개발의 홍수 속에 푸른 잔디밭들과 넓은 공터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말입니다. 사실 갖고 놀 것이 없어서 못 놀았지, 장소가 없어서 놀지 못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만 해도 그렇습니다. 애들이 뛰어 놀만한 공간이라고는 아주 좁은 어린이 놀이터와 테니스장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공간이 전부입니다.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린이들조차도 맘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은 아니지요.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 유난히 사달라고 졸랐던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축구공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어릴 때만 하더라도 없어서 갖고 놀지 못했던 것이 축구공인데, 요즘은 웬만한 문방구에만 가도 축구공을 쉽게 구입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이용은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걸 쉽게 사줄 수가 없었습니다. 공을 마음 놓고 찰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조그마한 공간에서 공을 차다가 자칫 남의 집 유리창을 훼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만에 하나 차도에서 공을 갖고 놀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서입니다. 그저 애들은 애들답게 맘껏 뛰어 놀라고 마음 놓고 풀어 놓지 못하는 속 좁은 아빠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크면 사주마' 하며 미루기만 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일요일 오후에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아파트의 현관에 전에 안 보던 축구공이 하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들 친구의 것인가 했습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웬 축구공이야 처음 보는 건데?"

"말도 하기 싫어! 저 녀석이 글쎄 쓰레기장에서 주워 왔데.."

쓰레기장에서 축구공을 주워 왔다는 말을 듣고는 축구공으로 시선이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겉으로는 그리 낡아 보이지 않는데, 누가 말짱한 것을 버렸을까, 근데 웬걸, 발로 살짝 밟아 보니 바람이 푹 빠져 버립니다. 그랬습니다. 누군가가 터진 축구공을 버린 것입니다. 가만 보니 이런 상태로는 제대로 찰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 차지도 못하는 축구공 왜 주워왔어?"

"아냐..아빠 바람이 빠져도 찰 수 있던데"

"아무리 찰 수 있어도 그렇지 남이 버린 걸 왜 주워 오니?"

이 물음에는 한참동안이나 대답을 망설이더니, 재차 물어보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엽니다.

"내가 축구공 사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안 사줬잖아!"

이거 웬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란 말입니까. 아빠인 저는 쓰레기 주워 온 것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었는데, 아들 녀석이 가슴 속에는 축구공을 사주지 않은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날까봐 사주지 못했던 축구공. 이제 훌쩍 커버린 아들 녀석에게는 조그마한 바램으로 응어리져 있었나 봅니다. 아빠인 제가 미처 그것을 살피지 못했던 것이지요. 남들 얘기에는 과보호가 문제라고 말을 해왔는데, 알고 보니 나 자신도 참 문제가 많았었네요. 이번 기회에 반성도 해보게 됩니다. 다가오는 휴일엔 새 축구공을 들고 아들과 공이나 차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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