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이 노점상을 고발하는 황당한 세태
퇴근길. 빈손으로 들어가면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을 받는 계절이 왔습니다. 해가 일찍 지고, 부쩍 밤이 길어진 요즘. 여기에 밤 기온마저 싸늘해지면서 먹을거리를 찾아 기웃거리게 됩니다. 군고구마나 붕어빵 등 길거리 음식이 제철을 맞은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하나씩 영업을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여러 군데 포장마차가 눈에 띱니다. 자연스럽게 붕어빵 포장마차 앞에 자동차가 멈춰섭니다. 붕어빵을 사기 위함입니다. 퇴근길에 붕어빵을 사들고 들어가는 이유는 단지 입이 출출해서만은 아닙니다.
매일 이시간이면 애들이 책상에 앉아 있을 시간입니다. 애들이 책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핑계거리라도 만들어 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의 퇴근길에 손에 무언가 들려 있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입니다.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 비록 잠깐이긴 하나 붕어빵의 맛만큼이나 달콤하고 오붓한 시간입니다.
가족들이 좋아하면 가장은 그 일이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는 또다시 포장마차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1주일 동안 세 번째입니다. 한 결 같이 그 자리에 있어 반가운 포장마차. 5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그새에 눈에 좀 익었다고 스스럼없이 아는 체합니다.
"여기 붕어빵 참 맛있더군요. 장사 잘 되지요?"
"........;;"(대답은 없고 미소만...)
"이렇게 하룻밤 장사하시면 한 10만원 떨어지나요?"
"어이쿠 뭔 소리에요, 10만원이 뉘 집 강아지 이름 입니까?"
너무 노골적이었나요, 민감한 돈 얘기를 들고 나오니 쉽게 말문이 트입니다. 지난해에는 다른 곳에서 장사를 했는데, 시원치 않아 어렵게 마음먹고 이 자리로 옮겨 왔다는 아주머니는 오뎅이라도 같이 팔고 있어서 그런지,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하루에 5~6만원 벌이는 된다고 합니다. 사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생각보다 마진이 얼마 안 되더군요. 아마도 예전에 비해 부쩍 오른 물가 때문이라고 보여 집니다.
"큰돈 벌려고 하면 이 장사 못하지요."
나이 들어 어디 써주는데도 없고, 먹고살려다 보니 이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아주머니는 포장마차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 보다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장사를 해봤으면 하는 게 조그마한 바램이라고 하더군요.
무슨 소리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오늘은 오질 않았지만 이틀 전에도 왔다 갔다고 합니다. 시청에서 나온 단속반이라는 사람들이 올 때면 행여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봐 늘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인들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인도를 피해 장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엄연히 불법 영업인 까닭에서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에는 공무원들도 야박하게 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민원이 발생하지 않게 요령껏 알아서 하라는 정도만 일러두곤 돌아가는 공무원들. 하지만 누군가는 민원을 넣었기에 단속을 나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늘 신경이 쓰이고 속이 상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속상한 것은 주민들이나 주변 상인들이 민원을 넣는 것이 아니라, 근처에 있는 다른 포장마차에서 주민인척 교묘한 수법을 동원하여 장사를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변 상인들의 민원인 줄만 알았었는데,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의 주인과도 친하게 지내는 게 좋다는 공무원의 귀 띰을 듣고서야 전후사정을 눈치 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기심의 극치, 안타까워
듣고 보니 정말 의외였답니다. 심심하면 뉴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노점상 단속. 가장 큰 이유는 미관상 보기 안 좋다는 것. 여기에 불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어 용역을 고용하면서 까지 강제 철거하는 장면을 보아 왔고 이런 것에나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같은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이 고발을 한다니 조금은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이유는 물어볼 필요조차도 없을 것 같더군요. 근처에 경쟁상대 없이 더 많은 이익을 내기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말입니다. 힘든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헐뜯고 시기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태가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3개에 천원, 2천원어치를 사니 한 개를 더 얹어 주는 아주머니, 올겨울 내내 그 자리에서 서민먹거리를 지켜주시길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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