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직원 눈치 보는 낯 뜨거운 불친절
-외국인들 많이 찾아, 망신살까 염려돼-
제주도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마음이 설렙니다.
태어나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이기에 너무 좋아하는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환호를 해줄 때면 기분이 좋아지고 치부를 들먹일 때면 개인적인 일이 아닌데도 자존심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주 이야기를 할 때는 늘 조심스럽습니다. 언제까지 내 식구 감 쌀 수만도 없습니다. 먼 훗날제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쓴 소리는 필요해 보입니다. 창피를 무릅 쓰고 씁니다.
며칠 전 부산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맛있는 음식점을 골라 예약을 해둬야 했기에 해물탕, 생선회, 고기요리 중 고르라고 했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오랜 고민 끝에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쇠고기 음식점을 골랐습니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음식점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소문이 자자한 맛집입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주차장은 차댈 곳이 없을 정도로 북적이고 내실, 홀 할 것 없이 사람들도 꽉 들어찹니다. 제주도민들도 많이 찾는 곳이지만 외국인, 특히 일본인과 요즘에는 중국바람이 불어서인지 중국인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예약을 했는데도 인원이 세 명인 까닭에 내실에 합석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기본 찬이 깔리고 양념이 잘되어 먹음직한 한우고기가 불판위에서 구워지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음식점과 다르지 않게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소주도 한잔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하얀병에 든 한라산소주도 한 병 시켰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하얀병 소주를 주문했는데, 초록색 소주가 온 것입니다. 바쁘다 보면 이럴 수도 있는 것이기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다시 갖다달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옆자리에 신혼부부로 보이는 관광객도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다보니 조금의 불편은 감수하려 했던 것이 처음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 붉히는 상황들이 연출됩니다. 알다시피 양념쇠고기는 굽다보면 손이 많이 갑니다. 석쇠도 자주 갈아줘야 하는 등 직원을 호출할 일이 잦아진 것인데, 직원들이 하나같이 들은 체를 안 한다는 것이지요. 옆자리에 있던 신혼부부에게서도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 부산에서 온 지인조차도 "제주도 음식점 직원들은 왜 항상 불친절하고 표정이 일그러졌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급기야 "눈치 보여서 더 이상 부르지도 못하겠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이야 워낙에 마주 보는 광경이라 이제 면역이 되어 그러려니 하겠지만 제주도가 낯 설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정도 되면 제주도 전체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상황입니다.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존심도 상하고 한편으론 속상하기도 합니다.
에둘러 변명이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지요.
<'이 음식점은 피크시간이 있어 시간제 아주머니들을 많이 쓴다. 따로 서비스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책임의식이 없기 때문에 친절이 몸에 베이지 않았다. 이렇게 바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또한 제주도 사람들은 낯가림이 강하여 여간해선 미소를 보이지 않는다. 풍습이니 이해해야한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음식점의 관계자라도 되는 구나 싶었을 겁니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호출버튼을 대여섯 차례는 눌렀을 겁니다. 그래도 오질 않습니다. 복도로 지나가는 직원을 불러 세워도 못 들은 체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불에 시커멓게 타버린 석쇠를 갈아보지도 못하고 고기를 구워먹고는 아주 어렵게 직원을 불러 된장찌개를 주문했습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된장찌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 일행은 서로 눈치 보기에 바쁩니다. 됐다 하고는 그냥 일어서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일어서는 것을 직원들이 봤어도 누구하나 시켜놓은 된장찌개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계산대에는 식사를 마친 손님들로 줄을 선 상태입니다. 부산지인은 계산마저도 줄을 서서 하는 곳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두릅니다. 또한 이렇게 서비스가 안 좋은 음식점에 손님이 많은 것을 보고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어찌됐건 식사는 마쳤고 제주를 찾은 지인은 하루를 지내고 나면 제주도를 떠나야 합니다. 하루에도 수천에서 수만의 관광객들이 찾는 제주도. 이렇게 좋지 않은 기억을 안고 제주도를 스쳐가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또한 이곳을 다녀간 외국인들도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겁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이 부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독특한 풍습인 냥 치부조차도 억지로 정당화 시키려는 우리들. 눈앞에서 벌어진 불친절을 보고도 제주도 사람들은 원래 이렇고, 식당이 바쁘다 보니 이럴 수 있다고 변명만을 늘어 놓았던 나 자신도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복죽으로 유명한 성산포의 해녀의집 종업원들은 모두가 해녀할머니들이니 조금 투박하더라도 제주도의 정서가 이러하니 이해해 달라고 하였던 적도 있습니다. 모두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지역적인 독특한 발음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찾아온 관광객들과 손님들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친절과 미소는 사전에 익혀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불친절(?)도 문화라고 그저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한 우리 제주도 사람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그래도 해마다 찾아오는 관광객은 기록을 경신한다.'고 축배 들기에 바쁩니다. 겉모습 멀쩡하다고 썩어가는 상처를 방치하면 더 큰 부분을 도려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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