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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스런 제주

초록섬, 국토의 남단 가파도의 봄

by 광제 2010.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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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섬, 국토의 남단 가파도의 봄


우리나라 국토의 남단, 가파도를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3월에 이어 두번째 입니다. 이웃의 마라도가 최남단에 있다는 메리트로 각광을 받으며 마라도를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그저 스쳐지나가는 섬으로만 알려졌던 가파도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청보리 물결로 초록의 섬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가파도에 제주올레 10-1코스까지 가세를 하면서 많은 발길들이 섬을 찾고 있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모슬포항에서 어선으로 사용을 해도 불만일 정도로 조그마한 배를 타고 남쪽으로 약5.5km 해상. 공교롭게도 모슬포항에서 최남단 마라도까지의 거리가 약11km이니 정확히 절반의 위치에 가파도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마라도와 같은 무인도였다가 1824년에서야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가파도. 0.85평방킬로미터의 조그마한 섬에 농사와 더불어 해산물 채취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섬이며, 정겨운 마을의 풍경과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인정이 남아 있어 이곳을 가리켜 작은 제주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외로운 섬, 버려진 섬으로 남겨 두지 않으려는 가파도 사람들의 노력도 지난해부터 활발하게 펼쳐졌습니다. 마을의 산책로를 정비하고 가파도의 자랑인 청보리를 테마로 한 가파도 청보리 축제도 올해로 2회째를 열었습니다. 가파도 청보리는 다 자라면 어린아이의 키를 훌쩍 넘어서 바람에 물결치는 모습이 장관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주인이 떠나 버린 폐가가 유난히 많은 가파도, 모진 바닷바람에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가파사람들의 삶의 흔적들은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습니다. 넓은 들판에는 흑염소들이 뛰어 놀고 있고 손을 내밀면 잡힐 것 같은 제주본섬의 한라산과 산방산 그리고 송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난해 12명이었던 어린이가 이제는 7명으로 줄어버린 가파초등학교











현재 134세대에 292명의 주민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가파도. 이곳에 처음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 1824년 보다 74년전인 조선영조26년, 1750년입니다. 목사 '정언유'가 이곳에 흑우장을 만들고 흑우 50두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흑우를 방목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탓에 흑우의 약탈이 빈번하여 이를 막기 위하여 주민의 입도를 허가 하는데, 그때가 바로 1824년이며, 모슬포에 살고 있던 주민 40여가구가 이주를 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오랜 세월 많은 주민들이 도회지로 떠나 빈집들이 즐비하지만 아직까지 풋풋한 사람 냄새가 풍기는 곳이 가파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파도의 특이한 점은 주민자율 결의에 의하여 술판매를 금지 했던 마을이기도 하며, 자가발전시설로 자체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마을입니다. 주민들이 입주당시에는
"더우섬", "개파도"로 부르다가 후에 "가파도(加波島)"라 부르게 되었는데, 더욱 역사적인 사실은 우리나라가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곳이 바로 가파도라는 사실입니다. 1653년 네덜란드인 핸드릭 하멜이 '하란선 제주도 난판기'와 '조선국기' 저술할 때 정확히 소개됐던 곳이 가파도입니다. 하멜의 기록에는 '케파트(Quepart)'라는 지명으로 가파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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