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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흑돼지, 제주도에선 혼사 준비물 제1호인 까닭

by 광제 2010.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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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돼지의 조상은 제주 똥돼지

지금은 전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풍습이 오래전에 제주에 있었습니다.

근래에는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집안에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곤 분가했을 경우의 새로운 보금자리, 그리고 혼수품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돈만 있으면 웬만한 건 거의 해결이 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오래전 제주에서는 자식이 혼사일이 잡히면 가장먼저 하는 일이 바로 새끼돼지를 사 들이는 일입니다.
 

비록 혼사일이 잡히지 않더라도 혼사얘기가 오고가기 시작하면 사전에 새끼돼지를 장만하는데, 잔칫날에 손님들에게 음식으로 대접할 고기로 쓰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 집집마다에는 최소 한 마리의 돼지는 무조건 키우고 있던 때라 따로 새끼돼지를 사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혼사일에 맞춰 적당히 살을 찌운 돼지라야 고기 맛이 좋을 수밖에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크게 자라고 많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 수퇘지를 길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잔인해 보일 수 도 있지만 어린 수퇘지를 사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동네 수의사를 불러다가 고환을 잘라 냅니다. 그 이유는 수퇘지 특유의 포악한 근성을 없애고 무엇보다 식용이다 보니 냄새를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퇘지는 고기용이 아니라면 기를 이유가 없습니다. 새끼를 쳐서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집에서 기르는 돼지는 암퇘지였다고 보면 맞습니다. 반대로 수퇘지가 있는 집에는 머지않은 장래에 큰 대소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결혼식이 하루에 모든 행사를 마쳐 버리지만 오래전 제주의 혼사 잔칫날은 3일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가장 먼저 돼지 잡는 날을 시작으로 가문잔치, 그리고 마지막이 결혼식 날입니다.  혼사용으로 길러진 돼지를 결혼식 이틀 전에 잡으면서 잔치집의 들뜬 분위기는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동네의 어르신들과 남자들이 모여들어 금방 잡고 삶아 낸 돼지고기와 그 국물에 톳을 넣어 푹 끓여서 만들어낸 몸국(제주전통음식)으로 잔치 음식은 시작됩니다.

다음날이 본격적으로 하객을 접대하기 위한 날입니다. 전날 잡아낸 돼지고기로 하루 종일 하객을 접대하고, 돌아가는 하객들에겐 돼지고기를 조금씩 싸서 손에 쥐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제주도의 대소사에 반드시 필요로 했던 돼지고기, 그렇다면 예로부터 제주도의 집집마다에는 모두 돼지우리가 있었을까요? 이제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과거에 제주도 가정에서 돼지우리는 필수였습니다. 지금은 민속촌이 아니면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돗통시'가 바로 그것입니다. '돼지를 놓아기르는 화장실'을 말함인데, 돼지우리와 화장실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정에서는 없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돼지우리의 한쪽에 성인 허리 높이만큼의 돌담을 쌓아 올려 외부로 부터의 시선을 차단하고 디딜팡을 만들어 발을 딛고 앉아 용변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돗통시입니다. 지붕이 없어 비가 오는 날이면 난감하기도 했었지만, 맑은 공기와 하늘을 보며 용변을 볼 수 있는 천혜의 화장실이었습니다.


이쯤에서 등장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제주 똥돼지입니다. 글자 그대로 똥을 먹고 자라는 돼지를 말하는 것인데, 제주의 전통 흑돼지가 똥을 먹고 자란다 하여 똥돼지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런 똥돼지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제주 흑돼지의 조상들은 똥을 먹고 자라는 똥돼지였습니다.


사람이 용변을 보는 디딜팡의 밑 부분이 뚫려있는 구조로 되어있어 돼지들이 쉽게 드나들며 똥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돼지들의 먹이조차도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주인의 인기척을 느끼면 손살 같이 달려 나와 먹이(?)를 기다리는데, 여기서 자칫 주인이 방심하여 돼지의 머리에 볼일을 봤을 때는 엄청난 화(?)를 면치 못하게 됩니다.

돼지가 머리를 사정없이 흔들어 버리면 끔찍한 파편들이 날라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디딜팡 옆에는 항상 나무막대기를 준비해 놓고 있다가 용변이 떨어질 때는 돼지를 때려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돗통시의 이런 기능 때문에 모든 가정에서는 필수시설이었으며, 기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선 반드시 돼지를 함께 기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돼지는 먹을 것이 많이 모자랐던 척박한 시절 제주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은 전통음식의 재료였고 돗통시에서 만들어진 거름은 농사를 짓는 밭에 너무나도 유용하게 사용되었기에 돗통시와 제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각별한 관계였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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