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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늘 하던 습관대로 아침에 눈을 떠 하늘을 보니, 아직 여명의 잔재가 채 가시지 않은 붉은 빛깔이 감도는 파란하늘입니다. 더욱 가슴을 들뜨게 한건, 다름 아닌 뭉게구름. 파란 가을하늘 아래와 솜이불을 풀어 놓은 듯한 뭉게구름이 아파트의 단지를 가득 덮고 있는 모습입니다. 바람한 점 없다 보니, 말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듯한 아침입니다.
한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것을 보니 정말 오랜만에 시원함이 느껴지는 가시거리입니다. 도저히 가만있지 못할 날씨. 카메라를 둘러메고 아무 곳이나 훌쩍 다녀와야겠습니다. 차를 몰고 집을 나섰습니다.
집을 나선지 불과 10여분, 한때 놀이시설이 있는 유원지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인공호수인 수산저수지. 둑 위에 올라 보니 물빛에 비친 가을하늘이 유난히 눈이 부십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가며오며 눈에 익혀두었던 익숙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물메골'입니다.
소문으로는 사찰음식을 만들어 파는 음식점이라고 익히 들어왔던 터입니다. 처음 이곳의 간판을 봤을 때는 무엇을 하는 집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양옥집에 대문. 외형상으로 보면 일반 가정집을 보는 것 같지만, 대문 옆에 붙어 잇는 '茶와 음식' 이라는 글귀가 어떤 집인지 대충 짐작을 하게 합니다.
오늘은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에 있는 물메골이란 아주 독특한 사찰음식점을 소개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물메골'이 무슨 뜻일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그 궁금증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수산리'의 한자를 풀어 순 우리말로 나타낸 말이란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활짝 젖혀진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니 정말 살림을 사는 이웃집에 온 듯한 기분입니다. 감나무에는 이제 갓 노란빛이 감돌기 시작하는 풋감이 가을로 접어들었음을 알리고 있고, 조그마한 텃밭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채소(?)들과 가을꽃들이 눈길을 잡아끕니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음식점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기에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고개를 쭈뼛 내밀어 현관을 보니 대여섯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거실에 놓인 탁자에서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흡사 여느 가정집의 모습을 보는듯합니다. 잘못 왔나 싶어 머뭇거리는데, 어디선가 '어서오세요'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긴장감이 가라앉는 순간입니다.
음식점에 왔다 라기 보다는 이웃집에 놀러 온 듯한 느낌입니다. 일반음식점에서의 코를 찌르는 특유의 냄새 따윈 찾아볼 수도 없어 더욱 그렇습니다. 대신 무슨 향인지 조차 알아볼 수 없는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간질입니다. 너댓 탁자가 놓여있는 거실에 두 개의 내실. 손님이 앉을 수 있는 곳은 이게 전부입니다. 주인장의 추천을 받아 연잎정식을 주문하고 난 후 거실과 내실을 조심스럽게 둘러봅니다.
비교적 빛이 없는 어두운 실내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합니다. 너무 소중히 다뤄 온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조용한 분위기에 말없이 식사를 하는 다른 일행이 있어, 카메라의 셔터소리 조차도 부담이 되어 찍는 것은 이미 포기를 한 상태입니다.
선 채로 기웃거리고 있으려니, 주인장께서 자리에 앉으라며 음식들을 내어오기 시작합니다. 자리에 앉아 밥상위에 내려놓는 찬들을 보니 정말 사찰음식을 실감하게 합니다. 내려놓는 동안 물 컵에 따라 놓았던 물을 한 모금 들이키는데, 아주 독특한 향입니다. 나중에 여쭤보려 했는데,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밑반찬의 가지 수를 세어보니, 종류가 아홉 가지입니다. 사진을 찍고 나니, 주인장께서 빠트린 것이 있다며 한 가지를 더 내어 왔으니 정확한 밑반찬 수는 열 가지입니다. 일반적인 식단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자연 속에서 찾아낸 정말 소박한 찬들입니다. 여기서 어떤 찬들인지 한가지 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릴 때 많이 먹었던 고추 이파리 무침입니다.
줄기 따라 고운선이 그려진 것을 보면 아실 분 많을 겁니다. 바로 호박잎 무침입니다.
콩자반인데요, 여기에 연근을 첨가하여 독특한 맛을 냅니다.
톡 쏘는 향으로 미각을 돋우는 양하나물, 다들 아시죠. 제주도에선 오래전부터 먹었던 반찬입니다.
호박무침
새송이 버섯을 잘게 갈아 만든 전입니다. 아주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적당히 익어 식욕을 돋우는 배추김치
야채샐러드
주인장이 빠뜨렸던 반찬, 처음에는 단무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이로 만든 장아찌랍니다. 아삭하고 쌉싸름하니 맛이 좋았습니다.
무엇인지 몰라 헤맸던 반찬. 바로 콩고기입니다. 메주콩에 여러 가지의 양념을 넣어 갈아 만든 채식가들이 즐겨 먹는 고기반찬(?)입니다. 처음에는 쇠고기 장조림인줄알고 오해 했다는...;;
밑반찬이 깔린 후, 바로 나왔던 죽(스프)입니다. 온통 검은색을 띠고 있어서 이색 적이었는데요, 검은깨, 검은콩 등을 갈아 만든 것이라 그렇습니다. 이 또한 처음 먹어보는 맛, 그런데도 고소하여 입안에 촥촥 감깁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연잎밥입니다. 그런데 연잎밥이 밥상위에 놓여지는 순간, 아주 강한 향이 풍겨져 나옵니다. 아! 이게 바로 연잎향인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현관을 들어설 때 궁금해 했던 바로 그 향입니다. 강하지만 싫지는 않습니다.
연잎밥을 조심스럽게 뒤집어서 밥을 감싸고 있는 연잎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잘 익은 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밥 위에는 은행과 잣이 앙증맞게 박혀 있습니다. 연잎으로 감싼 후 쪄내서 그런지 밥 안에 연잎향이 그득합니다. 밥맛이 정말 꼬돌꼬돌하고 입안에 넣으면 독특한 연잎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처음 접하는 맛이지만 남김없이 먹을 수 있는 맛입니다.
연잎밥과 함께 딸려 나온 국은 토란국입니다. 미역을 첨가하여 맛이 상당히 부드럽습니다.
자극적인 향을 싫어하는 분들을 위한 배려인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에는 구수한 된장찌개가 마무리를 해줍니다.
후식으로 나왔던 차와 다과입니다.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던 냉차는 유자차로 보였고, 다과는 제주전통한과로 유명한 과즐이었습니다. 이 과즐 맛이 너무 달지도 않고 참 부드럽습니다.
茶와 음식이 있는 멋을 부리지 않은 소박한 사찰 음식점인 물메골, 이곳에서 만드는 음식들의 재료는 모두가 자연에서 얻은 것들로만 만들어집니다. 어떨 때는 강한 향 때문에 처음에는 거북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다녀가고부터는 단골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주 독특한 점 하나. 물메골에서는 화학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오채(오채)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오채란 불가에서 꺼려하는 다섯 가지의 나물로서 파, 마늘, 달래, 양파, 부추라고 합니다. 지정한 사찰음식을 이곳에서 맛보는 것이지요. 급하고 걸쭉한 맛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추천 드리고 싶지 않네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다면 천고마비의 계절에 꼭 한번 다녀가시길...
물메골 정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795-1(T.064-713-5486)
영업시간 : 11:00- 20:00(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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