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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약속을 지키지 못한 딸애의 뜨끔한 문자메시지

by 광제 201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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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갔었던 최남단 마라도, 오랜만에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오후에 마라도에서 나와 제주시로 달려오는 중 한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하였습니다. 집에서 온 것은 확실한데, 운전 중에 얼핏 보고는 상당히 심각한 메시지라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뛰는 심장을 잠시 억누르며 생각해 보니 딸애가 보낸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오늘이 중간고사의 성적발표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지를 보낸 딸애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인 아들도 같은 날에 시험을 치렀지만 아들의 성적발표는 제때에 이뤄졌지만 딸애의 반에서는 불가피하게 하루가 늦춰졌기 때문입니다.

자메시지만 놓고 본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운전 중이긴 했지만, 즉시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예상대로 딸애가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미안하다는 소리를 먼저 합니다. 기운이 없는 축 처진 목소리입니다.


자신이 예상했던 만큼 중간고사 성적이 나오질 않은 것이었습니다. 딱 보아하니 어떻게든 위로를 해줘야 할 상황, 점수는 집에 가서 물어보기로 하고 우선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딸, 점수는 안 나왔지만 최선은 다한 거잖아!"

"웅~아빠!"

"그럼 된 거야~ 잘했어! 금방 집에 도착하니까 잠시 후에 보자."

일단 마음을 달래놓고는 집으로 이동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갑니다. 얼마나 성적이 안 나왔기에 저럴까 보다는, 과연 시험을 못 본 것이 아빠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일인지가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입니다. 속도 모르는 다른 사람이 본다면 정말 아빠가 학교성적으로 애들을 잡는다고 오해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이번에 애들이 학교에서 본 중간고사는 국,수,사,과의 네 과목으로 애들 스스로가 절치부심, 올백에 도전하겠다며 아빠엄마에게 큰소리를 뻥뻥 치면서 준비했던 시험이었습니다. 비록 둘 다 원했던 올백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들 녀석은 그나마 현상유지는 했고, 딸애도 시험이 끝난 직후만 하더라도 올백에 가까운 성적이 나올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보다 하루 늦게 발표된 자신의 성적을 보고는 너무 실망한 것이었습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보니, 딸애의 표정이 말이 아닙니다.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져버릴 것 같은 기세입니다. 꼭 껴안고는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니 조금은 안정이 되는 듯합니다.

잠시 후, 성적을 물어봤습니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얘기를 들어보니 크게 실망할 성적도 아니더군요. 다만 수학에서 5개를 틀렸다는 것이 스스로가 용납이 안 되는 눈치입니다. 워낙에 승부욕이 강한 애라 이럴 때면 가끔 눈물을 쏟아낸 적도 여러 번 있어 왔기에 바짝 긴장이 됩니다.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큰일 났네.."

그런데 딸애가 걱정하는 건, 다른데 있었습니다. 바로 엄마입니다. 문자메시지에 적어 놓은 그대로입니다. 엄마에게 야단을 맞는 건 둘째 치고, 불과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올백을 맞아 올 테니 두고 보라며 큰소리를 뻥뻥 쳤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고 보니 엄마의 반응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어쩔 수 없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행여 딸에게 시험 못 봤다고 눈치는 주지 말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한참 위로를 하고 나니 조금 전 보다 표정이 한층 밝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딸애에게 한가지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다음부터는 시험을 보지 못하더라도 스스로가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면 아빠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이제 2011년 수학능력시험도 하루 앞으로 다가왔네요. 수험생 모두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는 수능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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