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만사

녹초 된 아내도 한 입 먹고 반해버린 겨울별미

by 광제 2012. 1. 18.
반응형






결혼기념일 외식도 포기하게 만든 기막힌 맛
 
지난 토요일 오후, 이상한 택배물건이 하나 도착하였답니다.
저희 집 정보는 맞는데, 보내는 분의 정보가 없는 것입니다.
알아보기조차 힘든 글씨, 하지만 전화번호만큼은 또렷하더군요.


영문도 모르는 물건을 받고 함부로 개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화를 걸었지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구룡포에 있는 수산물 취급점이라고 하더군요.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택배물건의 정체에 대해 물었습니다.
멀리 제주도로 보낸 물건이라 바로 알아차리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보낸 분의 성함을 알아내는 데엔 성공했지만 그분이 누구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 겁니다.

"그냥 드셔도 될낍니다..드시소~!"

받는 사람의 주소가 정확하니 설마 모른 분이 보냈겠냐고 그냥 드시라는 겁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식품종류인가 보더군요.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아저씨의 말을 듣고 보니 다른 곳으로 갈게 우리 집으로 온건 최소한 아닙니다. 용기를 갖고 열어 보았지요.

헉~! 과메기입니다.

가만 보니 과메기를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재료들이 모두 갖춰서 있는 세트 상품이었습니다. 대체 누가 보낸 걸까?

이건 또 뭣에 쓰는 물건일까요.
먹고 난 뒤 치우기 좋으라고 쓰레기봉투가 같이 들어있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회용 식탁보더군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아르바이트를 나갔던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과메기를 보고는 웬 거냐며 놀라는 눈치입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돌아왔으니 굉장히 시장했을 겁니다. 맛을 보자고 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먹으려고 보니, 사람의 도리가 이게 아닌 겁니다.

최소한 뱃속으로 들어갈 음식이기에 그렇더군요. 어떻게든 보낸 사람을 알아야 먹든지 말든지 할 것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요.

구룡포......포항.....;;

짐작 가는 데가 있긴 합니다.

얼마 전, 제주도엘 다녀가신 울릉갈매기님이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분이 지내시는 곳이 그쪽이란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습니다.

제주도에 일행 분들과 여행을 오시면서 카메라 충전기를 깜박하고 오신 거였습니다.
제주도에서 충전기 구입한다는 것 쉽지 않지요.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어찌할 줄 몰라 하시다가 박씨아재님을 통해 전화번호를 알고는 연락을 해온 것이지요.
마침, 제가 사용하는 카메라와 같은 회사의 제품이더군요. 딱한 사정을 듣고는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충전기를 빌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3일후, 충전기를 돌려주려고 저희 집에 찾아와서는 몇 호에 살고 있냐고 물어보고 가셨는데, 아마도 이 과메기의 정체가 바로 울릉갈매기님이 보내신 것이 아닐까. 하지만 추측만 갖고는 도저히 먹질 못 하겠더군요.

그런데 추측만 하고 연락을 했다가 본인이 보낸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생각해보니 입장이 참 난처하겠더군요. 이럴 땐 어떡해야 하나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먹지도 못한 채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때 생각난 분이 바로 박씨아재님....

"아재님~! 구룡포에서 물건이 하나가 왔는데요, 누가 보낸 건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할까요?"

"과메기인가요?"

헉 단번에 무슨 물건인지 알아맞힙니다. 귀신입니다.
 
아재님에게 사정을 털어놨더니, 조심스럽게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잠시 후 걸려온 전화는 바로 울릉갈매기님!

역시 예상대로 울릉갈매기님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제 마음 놓고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세트에 포함된 재료들은 고추장을 비롯하여 이렇게 김도 들어 있었구요.

굉장히 신선해 보이는 날미역.


그리고 과메기에는 없어서는 안 될 쪽파, 청양고추와 마늘, 배추 잎도 들어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귤은 뭘까요. 아마도 디저트인 듯한데,  이건 우리 집에 많은데....

그런데 이걸 어찌해야 할까요.   

바로 이날, 1월14일은 결혼 14주년이었습니다.
다니는 직장이 주말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하루 쉬겠다고 했지요.

아내는 결혼기념일인데도 불구하고 일을 가야만 했습니다.
제주특산물을 가공 포장하는 업체라 설날 대목 때문에 감히 쉬겠다는 얘기조차도 꺼내질 못했거든요. 집에 돌아오면 늘 녹초가 되곤 하던 아내, 하지만 날이 날인지라 근사하게 외식이라도 하고 들어오려고 했던 것이지요.

먹을 걸 앞에 두고 외식을 가야 한다는 것이 영 개운치가 않은 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 때 가더라도 맛은 보고가자고 했던 아내...


결국을 상을 펼 수밖에 없었지요. 조금 전 식탁보가 이리 유용하게 쓰입니다.


근사하게 차려진 과메기 한상.

이게 바로 겨
울철 별미라는 군요.
    

보통 제주도에서는 횟집에 가면 입가심으로 조금씩 맛만 보던 과메기였는데, 이렇게 갖출 것 다 갖추고 먹어보긴 또 처음입니다. 알고 보니 과메기는 딱 지금! 겨울철이 제철이더군요.

줄줄 흐르는 기름기 보세요. 기름을 받아 식용유로 써도 되겠습니다^^ 

이렇게 기름 흐르는 과메기는 처음 구경합니다. 원래 과메기에서 이리 기름이 많은 가요?


과메기 하나를 집어 재료와 함께 입에 넣어 봅니다.

솔직히 말해 딱 한 입 먹어보고 반해버린 과메기입니다.
웬만한 고기쌈보다도 맛있다는 느낌..


하나만 맛보고 나가자던 아내는 아예 엉덩이를 깔고 앉아버렸습니다.

"진짜 맛있네??"를 연발하는 아내,
결국에는 밥 한 수저도 먹지 않고 오로지 과메기로만 배를 채워 버린 것입니다.
이거 질리지도 않더군요. 배가 불러 못 먹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먹어도 양이 줄어들지 않는 과메기,
둘이서 마주앉아 실컷 먹고도 이 정도가 남았습니다.

애들이 먹어줬으면 좋았을 걸, 이상하게 애들은 좋아하질 않더군요.
결혼기념일 외식을 기대하던 애들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에고 미안해라..;;
울릉갈매기님~!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추천은 또 하나의 배려입니다^^

제주초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