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

해고되어 수박장사를 하는 후배를 만나보니

by 광제 2009. 7. 29.
반응형




사람 사는 맛은 비정규직보다 수박장사가 낫다는 후배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해고되어 수박장사를 시작한 후배를 만나고 왔습니다. 한 회사의 계약직으로 입사를 하여 일하던 중 계약연장 불가를 통보받고 해고가 되어 지긋지긋한 비정규직의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껴 다시는 비참한 꼴 당하지 않겠다며 수박장사에 뛰어든 후배,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 어느 곳에서 수박을 팔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을 내어 다녀  왔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후배가 수박 한 통을 놓고 간 사연을 얼마 전에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관련 글 읽기>


트럭을 이동하면서 팔고 있었기에 단번에 찾을 수 는 없었지만, 밀집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니 수박이 많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시간이 이른 탓인지, 아니면 원래 수박이 잘 팔리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필자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 놀래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웃음 띤 얼굴로 맞아줍니다.


얌마~ 그렇게 수박 한 덩어리 달랑 놓고 가버리면 다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갔어야지 짜샤~


형님 오셨네요..어떻게 찾았어요? 잘 찾았네?


야야 이 좁은 바닥에서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니가 가면 어딜 가냐? 어때? 장사는 할만하냐?


장사를 할만하냐는 질문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긴 한숨을 토해냅니다.

아마도 그간의 고충이 말이 아니었나 봅니다.

할만하지 않으면 어쩌겠어요..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언제 해고될지 몰라 속만 앓는 계약직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며칠간은 몸이 부셔지는 것처럼 죽겠더니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면서 하루의 일과를 슬슬 늘어놓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도 어김없이 폭우가 쏟아지던 며칠만 빼고는 거의 매일 장사를 거른 날이 없었습니다. 생활패턴도 완전히 바뀌어 이제는 규칙적인 생활도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상 시간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새벽5시, 계란 후라이에 우유한잔으로 대충 속을 채워 넣고는 산지로 나가는데, 처음에는 시내 인근에 있는 도매시장으로 물건을 받으러 갔었는데, 아무래도 시장 보다는 산지로 나가는 것이 마진율에서 조금이나마 이득을 남길 수 있기에 수박밭이 밀집되어 있는 모처로 나가봐야 합니다. 거의 팔리지 않는 경우를 빼고는 트럭을 끌고 나가봐야 하는데, 이렇게 트럭의 운전대에서부터 시작된 하루, 물건을 트럭에 채워 넣고는 10시~11경 집에 들러 부랴부랴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고는 길거리로 나섭니다.

 


날씨에 따라 매상이 차이가 많다는 후배. 비가 내리는 날은 거의 공치는 경우가 많고, 무덥고 맑은 날에는 그나마 밥벌이라도 한다는데, 박한 마진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깎아 달라고 조르는 아주머니들과의 실랑이가 가장 힘들다 합니다. 마진만 줄어드는 한도 내에서는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순 있지만, 아예 도매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에는 말도 안나온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더운 날, 한마디 해주고 싶어도 좁은 지역사회에서 장사를 하면서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날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남는 것 없이 그냥 넘겨 준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올해는 비피해로 인해 수박 작황이 좋지 않아 육지에서 오는 물량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주에서의 시장 분위기는 활기를 띌 만도 한데, 올해는 유독 장마기간이 길어서 예년에 비해 많이 찾지도 않고, 시세도 별로라는 것이 시장분위기였습니다. 그나마 열대야가 이어지는 요즘에는 밤에도 제법 팔리기 때문에, 무더위에 지치고 실랑이에 지친 하루지만 조금이라도 더 팔기위해 귀가가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귀가가 늦어지면 '아빠 언제 오냐' 고 애들이 전화를 걸어오지만,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질 않습니다. 남아 있는 양에 따라서 혹은 날씨에 따라서 귀가시간도 제각각, 어떤 때는 초저녁에 귀가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밤11시가 되어서야 귀가할 때도 있습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귀가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아진다는 후배. 장사가 잘되고 안 됨을 떠나서 아빠를 기다리는 가족들 때문에 가장 이시간이 기다려진답니다. 직장생활 할 때는 출퇴근시간이 일정하지가 않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장사를 시작한 후로는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현관에서 아빠를 맞아 줍니다. 그래서 이시간이 하루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시간입니다.


찌든 땀을 씻어내고 늦은 저녁을 먹고 나면 이제는 하루의 일과처럼 되어버린 애들의 안마 이어집니다. 장사를 시작하고 하루도 안 빠지고 이어온 안마, 두 녀석 모두 자기가 어깨를 주무른다고 다투기도 합니다. 번갈아 가며 한 녀석은 어깨를, 한 녀석은 발을 주물러 주는데, 많이 피곤했었는지, 안마를 받는 도중에 그냥 잠이 들어 버린 적도 여러 번, '아빠~졸리면 그냥 자도 돼~' 안마를 시작하면서 매일같이 애들이 하는 말입니다.


피곤하기만 했던 하루는 이렇게 또 끝나갑니다. 자기에게의 희망은 오로지 자식새끼들이라며, 수박철이 끝나면 다른 야채를 싣고 이 장사를 계속할거라며 애써 쓴웃음을 지어보입니다. 안받겠다는 돈을 어렵게 건네고는 수박 두통을 양손에 들고 돌아오면서도 애써 지어 보였던 후배의 쓴웃음이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쓴웃음 속에서도 희망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 관련 글 : 해고된 후배가 놓고 간 수박 한통의 사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