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약속 못 지킨 야속한 아빠 때문에
애들에게는 너무 기대가 되는 날이지요. 어린이날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둘째치고라도 말입니다. 대부분 그 기대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시작되는데, 아마도 엄마 아빠에게 대 놓고 손을 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 중에 하나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물며 아빠가 공개적으로 선물을 약속해 놓고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여파는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5년 전의 어린이날을 앞둔 시점이니까 2006년 4월말이었습니다. IMF경제위기도 당당히 견뎌내고 노사분쟁으로 파업의 여파도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넘겼던 회사가 2006년에 와서야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견디기 힘들다고 판단한 회사는 결국, 5월15일을 기점으로 문을 닫는다고 발표를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만하더라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날벼락이었습니다.
급기야 직원들을 중심으로 비상위원회가 꾸려지고 대부분의 간부들과 몇몇 직원들은 회사의 업무가 종료되는 시간에 맞춰 밤을 세워가면서 대책마련에 머리를 싸매기 시작하였습니다. 미약한 힘이나마 회사 살리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함이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일주일 이상 귀가도 하지 못한 채 계속되었습니다.
이정도 되면 집안에서도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습니다. 애들이야 사태의 심각성으로 모르겠지만 지켜보는 아내의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이 바로 아들 녀석과의 약속이었습니다.
당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로서 다가오는 어린이날에는 마트에 근사한 선물을 사러 같이 가기로 굳게 약속을 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아들 녀석은 이 약속을 철썩 같이 믿고 어서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라는 사람은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솔직히 당시로서는 어린이날이라는 사실조차도 잊고 있었습니다.
선물을 사러 같이 갈 것이라 약속한 아빠는 하루 종일 기다려도 오지 않고, 아내는 아들 녀석의 계속하여 보채는 바람에 진이 빠질 데로 빠졌지만 며칠째 밤새워 머릴 싸매고 있는 남편에게 감히 연락조차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힘들어 하는 남편 몰래 선물을 사러가고 싶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조금 기다리다 아빠가 잊어버린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하면 좋으련만 해가 질 때까지 아빠가 오질 않자 그만 울음을 터트린 것입니다. 아내가 애써 달랜다고 하고는 겨우 잠을 재운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들 녀석의 눈이 퉁퉁 부어 있더란 것입니다. 늦은 밤까지 또는 밤새 울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그 후로도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 알아차린 것입니다. 아내가 끝내 마음 고생하는 남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 하루가 지나고 나니 아들 녀석이 좀 잠잠해졌지만 애들이 어린이날 선물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녀석이 더욱 기가 찬 것은 아빠에게 선물을 받은 걸로 친구들한테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는 겁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까맣게 잊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니 모른 척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행여 이번 어린이날에 맞춰 자녀분들과 했던 약속이 있다면 꼼꼼히 챙겨 보시기바랍니다. 자칫 깊은 상처를 받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 저는 그해 5월은 선물 없이 넘긴 유일한 해였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위기에 빠졌던 회사도 빠르게 정상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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