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선보이는 ‘서귀포 건축문화기행’ 직접 돌아보니
“제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멋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여행”
늘 그래왔듯이 여행은 추세를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과거의 먹고 즐기는 여행에서 자신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도보여행, 이제는 지역의 문화와 생활풍습까지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여행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고 있습니다.
길은 있었지만 방법을 몰라 걷지 못했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제주올레입니다. 새롭게 길을 낸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길에 깃발만 세워 방향을 제시하고 구간을 정해 놓은 것뿐입니다. 소위 멍석을 깔아 놓으니 사람들은 안심하고 그 길을 걷기 시작했고 그 길에서 행복해 했고 환호를 했던 것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여행길 또한 고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매력적이지만, 이를 즐기는 여행자들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중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주고 그 길에서 재미를 찾고 삶과 문화에 스토리를 접목시키고 더 나아가 강한 인상을 줄 수 핫 포인트까지 가미가 된다면 사람들은 또 열광할 것입니다.
‘여행’이라는 단어보다 ‘기행’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멋스러워 보이지 않나요?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여행길에서 만나는 삶의 현장과 자연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지역의 다양한 문화자원들을 체험하면서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것, 바로 기행이 아닐까합니다.
-다크투어리즘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문화기행, 사진은 알뜨르 비행장에서 바라 본 풍경입니다.
제주도의 서귀포 관내에는 여행보다는 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곳들이 참 많습니다. 멀게는 일제강점기를 비롯한 4.3사건과 한국전쟁의 역사적이고 아픈 흔적들, 그리고 천혜의 자연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건축물들이 그것들인데, ‘서귀포건축문화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여행코스입니다.
서귀포의 자연, 삶과 멋, 곳곳에 숨어 있는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건축물을 돌아보고 이해하고, 제주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과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하고 배울 수 있는 문화기행형 상품이라 할 수 있는데요, 한국관광공사와 서귀포시에서 11개의 코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건축문화기행의 핵심적인 부분들을 살펴보면 이동과 해설, 체험까지 다 하더라도 부담 없는 시간에 돌아볼 수 있도록 도보 중심으로 구성, 새롭게 길을 트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길에 자원을 연결하는 구성, 여기에 가장 중요한 건축 속에 담긴 제주의 아픔과 문화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서귀포건축문화기행 11개의 코스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코스- ‘전쟁과 근대건축 코스’로서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국전쟁까지 전쟁시설물을 탐방하는 코스입니다.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구 대정면사무소, 강병대교회, 구 해병훈련시설 등이 포함됩니다.
2코스- ‘추사 따라 가는 길 코스’로서 추사관을 중심으로 추사 유배길을 탐방하는 코스입니다. 대정성지, 추사관, 대정향교 등이 포함됩니다.
3코스- ‘녹차 밭 기행 코스’로서 제주다원을 중심으로 한 건축 여행의 코스입니다. 오설록티뮤지엄, 티스톤,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설록차 연구소 등이 포함됩니다.
4코스- ‘이중섭 행복 길 코스’로서 화가 이중섭의 흔적과 문화예술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이중섭미술관, 이중섭거주지, 자구리해안 등이 포함됩니다.
5코스- ‘서귀포 예술 기행 코스’로서 서귀포시내의 미술관과 전시관을 중심으로 한 예술 탐방입니다. 기당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소암기념관, 왈종미술관 등이 포함됩니다.
6코스- ‘한국 건축 거장 코스’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구 제주대학농과대학,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구 소라의성 등이 포함됩니다.
7코스- ‘21세기 현대 건축 코스’로서 21세기 트렌디 건축물을 탐방하는 코스입니다. 제주월드컵경기장,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국제평화센터 등이 포함됩니다.
8코스- ‘서귀포 영화 촬영지 코스’로서 영화 속 배경이 되었던 건축과 전시장을 돌아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신영영화박물관, 서연의 집, 신천리 벽화마을 등이 포함됩니다.
9코스- ‘목축과 건축 코스’로서 제주의 목축문화와 관련된 지물을 둘러보는 코스입니다. 조랑말체험공원, 서재철 자연사랑 갤러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등이 포함됩니다.
10코스- ‘제주 민속 탐방 코스’로서 성읍민속마을을 비롯한 전통문화를 살펴보는 코스입니다. 성읍민속마을과 제주민속촌 등이 포함됩니다.
11코스- ‘안도&이타미 코스’로서 제주를 사랑한 세계적인 건축가인 이타미준과 안도다다오의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본태박물관, 방주교회, 포도호텔, 지니어스로사이, 글라스하우스 등이 포함됩니다.
제주올레, 관광지 등 기존의 뻔한 여행지에서 트렌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문화기행은 참신한 시도라고 보여 지는데요, 며칠 전에는 11개의 코스 중에 몇 곳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어떠한 곳들이 있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일본군 진지 동굴입니다. 1945년 일제가 중국침략을 위해 송악산 일대에 구축한 동굴형태의 군사기지입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았던 역사를 보여주고, 동굴 구축 과정에서 제주 사람들이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던 당시의 아픔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섯알오름 학살터입니다. 4.3유적지 중 한곳인데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제주지구 계엄당국에서 820명의 주민을 검속했는데, 당시 집단 총살로 212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후 1956년 발굴을 통해 149구의 시신을 수습한 곳으로 이곳에는 위령제단과 추모의 길 등 관련 추모시설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곳은 알뜨르 비행장에 있는 격납고 시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대륙의 침략을 위해 제주도민들의 재산과 노동력을 착취하여 지은 공군비행장이 알뜨르 비행장이며, 그곳에 현재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시설물 중 하나가 격납고이며, 부근에는 대공포진지와 정비고, 탄약고와 관제탑 시설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강병대교회입니다. 지금의 논산훈련소에 연무대라는 휘호가 붙었듯이 과거 모슬포에 주둔했던 육군 제1훈련소를 강병대라고 불렀습니다. ‘강한 병사를 길러내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데, 당시 장도영 육군 소장의 지시로 훈련병들의 종교생활을 위해 건립된 교회입니다. 현무암과 목조 트러스위에 함석지붕을 씌운 형태로 건축 기술자 없이 오로지 공병대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입니다.
구 대정면사무소입니다. 1951년 모슬포에 육군훈련소가 설치되면서 고등군법회의 건물로도 쓰였던 곳입니다. 당시 면사무소 건물들은 도청 형태의 축소판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1980년에 읍 청사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보건지소, 서부보건소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근대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행정 건축물로서 제주석으로 축조 되었고, 세련된 디자인의 창호가 돋보이는 건축물입니다.
추사관입니다. 4.3사건 때 불에 타 집터만 남아 경작지로 이용되다가 1984년 ‘세한도’에 나오는 집을 모티브로 하여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단순한 형태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극도의 절제미를 추구했던 추사 선생의 뜻을 심었으며, 미끄럼틀 같은 지그재그의 계단은 유배 은거의 고단함을 상징한다고 할 것입니다.
기당 미술관은 재일동포 사업가인 기당 강구범 선생께서 시민들을 위해 기증한 미술관으로 이 건물은 순회방식, 채광방식, 전시기법 등 3가지의 특징을 볼 수 있는 건물입니다. 외형 또한 제주의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난 후 부산물을 쌓아 놓는 ‘눌’의 형태를 하고 있어 농촌의 풍요로움과 여유의 이미지가 건축적 언어로 표현되었고, 주변의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지어진 건물입니다.
구 제주대학농과대학 건물입니다. 지금은 서귀중앙여중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한국근대건축의 거장인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것으로 김중업은 스위스 건축가인 르 꼬르뷔제의 제자이기도 하여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때문에 이 건축물에서도 르 꼬르뷔제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돌출된 창과 피로티 등의 요소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과거 ‘소라의 성’이라는 음식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입니다. 지반 붕괴의 위험성 때문에 행정에서 매입을 하여 현재는 서귀포시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 단순하면서도 곡선이 갖는 아름다운 미적 요소가 돋보이는 건축물입니다. 외부에서도 보는 각도에 따라 각각 다른 표정을 갖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로서 주변 자연풍경과도 잘 어우러지게 축조된 건물이라 할 것입니다. 이 건물 또한 김중업의 작품이라는 증거들이 요소요소에 발견이 되어 보존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왈종미술관 건물입니다. 이왈종은 본인이 사용하던 컵을 모티브로 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백자로 건물의 형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건축가 한만원과 스위스 건축가인 다비드 마큘로를 만나 2년 동안 다듬고 수정하여 완성된 설계에 의해 지어진 건물입니다.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여 외관을 완성했으며 천장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채광에 의해 작품이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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