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생명을 건진 고양이 사연
집에 돌아와 블랙박스에 담긴 동영상을 보는 순간 간담이 서늘하더군요. 자동차의 커다란 바퀴가 털끝을 스쳐지나가도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아스팔트 도로위에 웅크리고 있어야 했던 고양이 한 마리, 대체 이 고양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어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애들과 함께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모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때였지요. 거문오름 탐방안내소 앞을 지나려는 찰나, 도로위에 무언가 이상한 물체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아주 천천히 다가가 가까이에서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물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고양이었던 것입니다. 순간, 자동차를 움직이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서더군요. 그대로 비상깜빡이를 켜 놓고는 뛰어 내렸습니다. 지나가는 차량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확대한 사진을 자세히 보시지요.
꼼짝 못하는 고양이 옆으로 자동차의 바퀴자국이 선명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는 것 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집에 돌아와 재생을 해본 것입니다. 앞서가던 승합차가 고양이를 가까스로 스쳐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운전자가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여지없이 깔고 지나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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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본 고양이.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고양이가 깡통을 뒤집어쓴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 도로위에 방치된 듯 보였지만 몸은 하나도 다친 곳 없이 성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왜 깡통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일까.
깡통의 정체를 보니 생선통조림이 들어있던 깡통이었습니다. 아마도 먹이를 찾던 중 깡통 속에 먹을 것을 발견하고는 먹으려고 머리를 들이 밀었다가 끼어 버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고양이 스스로 깡통을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이미 힘이 다 빠져 버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깡통을 빼 주려고 살짝 손을 대 보니 꼼짝도 않더군요. 잘못하다가는 고양이가 목을 다칠까 염려되는 상황입니다.
많은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씨, 이대로 방치해두고 떠난다면 지나가는 차량에 치이거나, 도로를 피한다고 해도 앞을 못 보니 움직이지도 못해 얼어 죽거나, 배가고파 죽을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못 봤다면 모를까, 이 광경을 봤다면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겁니다.
우선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는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니 가만히 있더군요. 무엇보다도 앞을 못 보는 상황이다 보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리곤 한손으론 몸집을 잡고 다른 한손으론 깡통을 잡아 살짝 힘을 줘 봤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가만히 있질 않더군요. 발버둥을 치는 고양이를 간신히 피했지만 앞발이 손가락부분을 할퀴고 지나간 뒤입니다.
그래놓고도 멀리 도망가지도 못합니다.
여전히 도로위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119에 전화를 하여 상황설명을 하니, 제주시청에 동물보호관련 부서가 있으니 그곳으로 문의를 하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주더군요.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토요일 늦은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전화를 받더군요. 도울 수 있는 길을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다시 전화가 온 곳은 가장 근처에 있는 관할관광서인 조천읍 사무소, 휴일인데도 아주 빠르게 연락이 취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사람을 보낸다고 하더군요. 도착할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릴 테니 서둘러 달라고 하였습니다.
잠시 후, 도로위에서 비상 깜빡이를 켜놓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본 것일까요. 거문오름 탐방안내소 직원 한분이 다가오시더니, 뭔 일이냐고 물어봅니다. 아무리 길고양이라고는 하지만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올 거라며 상황 설명을 했지요.
잠시 머뭇거리던 직원 분,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조그마한 종이박스하나를 들고 나옵니다. 도로에 이대로 둘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 데려다 놓고 기다리자는 얘기였지요. 읍사무소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출발한 상태, 부디 고양이를 잘 살려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탐방소를 빠져 나왔습니다.
집으로 향하던 중 읍사무소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고양이를 구출팀이 도착하기도 전에 선흘리의 이장님이 탐방소에 오셨다가 직접 깡통을 빼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춰 돌아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한 고양이를 살리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연락을 취하며 고양이 살리는데 도움을 주신 119 상황실과 제주시청, 그리고 조천읍사무소, 무엇보다도 직접 보살펴 주신 거문오름 탐방안내소 직원 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제주도에도 동물 전문 구조단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고양이를 발견하기 전에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답니다. 박물관 구경을 마친 후 제주시로 방향을 잡았던 길은 이 길이 아니었거든요. 반대방향이었습니다. 한참을 달리던 중, 갑자기 유턴을 했지요. 여간 해선 이런 일이 없었는데, 왜 그러냐고 아내가 물었답니다. 반대편길이 조금 가까울 것 같다며 핸들을 돌린 것이지요. 분명 우연이라면 우연일수 있지만, 뭔가 암시를 받았다는 느낌. 아내 또한 이런 생각을 동시에 했다는 것. 이 고양이 기필코 살아야만 했던 운명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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