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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죽다가 살아 돌아 온 필리핀 세부 여행기

by 광제 2011.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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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가 살아 돌아 온 필리핀 세부 여행기

13년 전, 신혼여행을 앞두고 아내가 몸이 아프는 바람에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여행을 일정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 때문에 신혼여행 한번 제대로 다녀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늘 아내에게는 미안했었답니다.

아내는 원체, 여행하고는 체질상 맞질 않았던지 가까운 지역일지라도 하룻밤 묵어야하는 여행일정이라면 늘 배앓이를 하며 같이 간 일행의 애간장을 녹이는 스타일이긴 하였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해외여행의 기회를 무산 시키고 싶진 않았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는 아내에게는 일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나에게는 처음으로 아내와 단둘이서 오붓하게 며칠 동안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 더욱이 남들은 다가는 해외신혼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만회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지난주, 5일간의 일정으로 필리핀 최고의 휴양지라고 일컫는 세부(CEBU)를 아내와 단둘이서 다녀왔답니다. 출발하고 돌아오는 일정을 빼고 나면 현지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일정은 3일에 불과하지만 동남아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세부로의 여행은 비행기의 항공 스케쥴이 나오면서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더군요. 세부지역의 자연환경은 제주도와 비슷해서 제주도 사람이 여행지로는 조금 그렇지 않나?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자연경관만을 보려고 떠나는 것은 아니지요. 듣기만 했었던 그 지역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먹을 것도 현지 식으로 해결하고 가능하다면 생활상까지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여행이 될 거라는 생각에 간단 비상약품과 옷가지 몇 개만 챙겨들고 떠났습니다.


처음 본 세부하늘의 풍경

하지만 여행 첫날부터 혼쭐이 나고 말았답니다.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보아왔던 그림 같은 풍경에 너무 기대가 컷던 것일까요. 도착한 시간이 한밤중이라 숙소에 짐을 풀고 맞이한 첫날 아침 막탄 세부의 하늘은 짙게 깔린 먹구름에 어두컴컴한 날씨, 더욱이 강한바람에 바다위의 높은 파도, 마치 폭풍전야를 보는 것 같았답니다.

<세부일정 중 최악이었던 호핑투어, 기억에는 오래 남을 듯>
 
무엇보다도 첫날 오전 일정에 호핑투어가 잡혀 있어서 잔뜩 흐린 날씨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만들었는데요, 급기야 숙소를 나서면서부터 하늘에서 빗줄기가 투둑투둑 떨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비 날씨에 강한바람, 그리고 높은 파도, 세부에 오기 전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의 바다 속 체험은 물 건너 갈판입니다.

비가 내리는 세부

험난한 일정을 예고하는 높은 파도의 세부 바다

어찌되었건 어렵사리 방카에 몸을 실어 스노쿨링을 위한 모처로 이동을 시작, 애초에 약 15분이면 도착한다던 목적지는 높은 파도 때문에 무려 30분이나 걸렸고, 악조건 속에서도 스노쿨링과 낚시 체험, 그리고 식사일정까지 모두 소화하는 데까지는 그런대로 별 어려움이 없었지요.


파도와 날씨 때문에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호핑투어

그런데 호핑투어를 마치고 본섬으로 귀환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강한바람과 높은 파도, 그리고 빠른 조류 때문에 타고나갔던 방카를 접안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타고나갈 때부터 파도를 뒤집어쓰며 어렵사리 방카에 올랐는데, 돌아올 때는 포구에 접안을 할 수가 없어 내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포구에 접안을 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

바나나보트를 타고 가까스로 방카에서 탈출

방카를 움직이는 네 명의 도우미들이 무던히 애를 쓰면서도 수차례 걸쳐 시도한 접안은 계속해서 실패로 돌아가고 이렇게 본섬을 코앞에 두고도 발만 동동 구른 시간만 40여분, 이러다간 꼼짝없이 바다 위에서 고기밥이 될 신세입니다. 궁여지책으로 평소에는 방카를 대지 않는 얕은 지대로 가까스로 방카를 움직인 끝에 현지인들도 처음 시도를 해본다는 바나나보트로 옮겨 탄 후에 포구에 내릴 수가 있었답니다.

<배앓이를 시작한 아내, 여행이 고행으로 바뀌는 순간>

간밤에 잠자리를 들면서 조그마한 소망이 있었다면, 제발 밝아오는 아침에는 세부 특유의 화창한 날씨를 보여 달라는 것이었답니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지요.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젖혀 바깥 날씨를 보니, 날씨는 여전히 잔뜩 흐린 날씨입니다. 제주도에서 온 것을 알고는 심통을 부리나 싶더군요. 다시 배를 타고 떠나야 하는 일정인데 높은 파도를 생각하니 참 암담하더라구요.


세부항을 떠나 보홀섬으로 향하는 여객선
 
우산에 일회용 비옷까지 챙겨들고 세부 본섬으로 이동, 세부항에서 보홀섬으로 떠나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세부항에서 보홀섬까지는 쾌속선을 이용해서 달린다고 해도 무려 2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이른 아침부터 슬슬 배앓이를 시작한 아내가 걱정입니다. 급격한 환경변화를 적응하지 못하는 탓이지요. 결국, 배 위에서의 두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웃는 얼굴이 고왔던 보홀섬 로복강에서의 소년

보홀섬의 미스테리, 초콜릿 힐

보홀섬을 돌아보는 내내 아내는 거의 모든 음식을 입에 댈 수도 없었지요. 그나마 악조건 속에서도 아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맘에 들어 했던 곳이 보홀섬이다 보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빠듯한 일정 탓에 보홀섬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니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지만 향후 5년 안에 '여행 시 꼭 가봐야 할 섬'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보홀섬은 진주의 나라 필리핀의 또 다른 진주임에 틀림없어 보이더군요.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라는 말이 새삼 생각나더군요. 막탄 세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눈을 뜬 아침, 세부 지역 특유의 화창하고 맑은 날씨가 숙소앞 바다위에 펼쳐진 것입니다. 늘 보아오던 옆서 같은 풍경은 아니지만 앞선 이틀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화창한 날씨입니다.

본래의 세부 모습을 보인 마지막 날 아침 풍경 

그런데 어쩐답니까. 마지막 날 일정은 날씨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필리핀의 문화와 유적지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짜였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이런 일정이라면 날씨가 조금은 시원한 맛이 있으면 더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걸 보니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합니다.

마지막 날 식사 또한 현지 식 고집을 버리고 한식당을 찾아다녀야만 했답니다. 배앓이를 하는 아내 때문이었지요. 사전에 세워두었던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여행의 묘미입니다.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펼쳐졌던 현지의 날씨, 의도하지 않았던 환경과 전혀 다른 세상과의 만남,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익숙하지 않았던 초짜 여행자에게는 이번 5일간의 세부여행이 오히려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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