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해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11월30일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티오피아)에서 최종 확정


제주해녀문화가 드디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애초 우리나라 시간으로 11월30일 밤에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조금 늦어져서 12월1일 새벽 0시 20분경에 발표확정하였습니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날아 든 낭보인데요, 2009년 제주도 차원에서 해녀문화보존 및 전승에 관한 조례 제정과 함께 시작된 인류문화유산 등재 노력이 7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역사적인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등재가 확정되면서 우리나라에는 2001년 종묘제례를 시작으로 판소리와 아리랑, 강강술래, 줄다리기 등 모두 19개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제주해녀문화는 2014년 3월에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심사과정에 돌입했는데요, 한 달 전인 10월 31일에 유네스코 심사기구에서 등재권고를 하면서 사실상 확정이 되었고 이번 제11차 유네스코 정부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이 된 것입니다.

지난달 유네스코는 제주해녀문화를 등재권고하면서 세계적인 희소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제주해녀만의 공동체 문화에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제주해녀문화가 지역 공동체가 지닌 문화적 다양성의 본질적 측면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었습니다.


공동체의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는 의식,  해마다 바다의 용왕에게 제를 지내 무사안녕을 기원합니다(사진제공.해녀박물관)


한꺼번에 물질을 나서는 해녀들의 모습, 돈독한 공동체 문화를 볼수 있습니다.(사진제공.해녀박물관)
 
‘좀녀’라는 이름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제주해녀는 제주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바다의 물결과 날씨를 살피고 바다에 물질을 나가기 전부터 해녀들은 활발한 소통을 해왔습니다. 또한 어머니에서 딸로 물질이 이어지면서 더욱 견고하게 공동체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척박하기만 했던 제주도에서 여자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추운겨울에도 살을 에는 바람과 세찬 파도와 싸우며 목숨을 걸고 바다 속을 헤매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제주의 어머니 세대들입니다. 오죽했으면 ‘소로 태어날지언정 다시는 여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을까요. 때문에 제주해녀는 강인한 대한민국어머니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난 기성세대들 또한 해녀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을 대부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닷가와 물질에 얽힌 일화를 떼어 놓고는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주의 해녀들은 보통 수심10미터까지 잠수를 합니다.(사진제공.해녀박물관)

지금은 물질을 하는 해녀의 수가 많이 줄었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동네의 바다는 휘~~~~~~유~~~~하고 뿜어져 나오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그칠 줄 모르는 아주 생동감이 넘치는 그러한 바다였습니다. 마을의 바닷가 어귀는 오후4~5시경만 되면 물질을 마친 해녀들의 길게 늘어선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곤 했었지요.

하지만 자칫하면 제주도 사람들 모두의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는 해녀어머니의 추억들을 이제는 영원히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해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70년대에 1만4천명에 달하던 제주의 해녀들은 80년대에 7800명, 90년대에 6800명, 2000년에 5700명서 점점 줄어들어 2014년 말에는 불과 440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중에서도 60대 이상 고령자가 83.5%, 이 수치 또한 해가 갈수록 고령화가 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제주해녀들이 은퇴를 하는 10여년 후에는 급속하게 해녀의 숫자가 줄어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20년 뒤에는 천명 미만으로 줄어들어 해녀를 보려면 박물관에야 가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해녀문화를 보존하면서 장려를 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제주해녀는 살아있는 제주의 역사입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의 표상이며, 이 시대를 땀 흘리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모든 이의 근본입니다. 사면이 바다인 제주도, 섬 속 바다에서 한평생을 세찬바람과 싸우며 모질도록 삶을 개척해왔던 제주도의 해녀, 거친 파도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모진외세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으며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제주의 땅과 바다를 지켜냈습니다.

고무로 된 잠수복이 없던 시절에도 얇은 무명옷 하나만 입고 일 년 열두 달 차디찬 바닷물에 뛰어 들었던 해녀, 겨울바다에서 물질을 끝낸 해녀들은 불턱(바닷가에 불을 피워놓는 공간)에 모여앉아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던 것이 유일한 휴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불턱에서의 공동체의식은 일제강점기 일제수탈에 맞선 제주 항일운동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제주도가 일제의 무자비한 수탈로 신음할 때 제주 동부지역의 해녀들이 시발점이 되어 들고 일어선 제주해녀의 항일투쟁, 이 투쟁은 제주항일운동 사상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기도 했지만, 어민이면서 여성이 주도한 전국최대규모의 항일투쟁이기도 했습니다. 일제의 억압과 제주해녀의 항일,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야만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거침없이 바다에 뛰어들어 억척스럽게 생존투쟁을 해온 제주의 해녀(사진제공.해녀박물관)

제주해녀, 언제부터 제주도에 해녀가 생겼는지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문헌으로는 1105년(고려 숙종 10) 탐라군(耽羅郡)의 구당사(勾當使)로 부임한 윤응균이 "해녀들의 나체 조업을 금한다."는 금지령을 내린 기록과 1629년 이건의 『제주풍토기』,『규창집』이란 문헌에 "潛女(잠녀)"라고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최고900여년~최소38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제주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이제 어머니세대에서 당당하게 세계적인 문화유산에 올려놓았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습니다. 지금보다 더 체계적으로 물질 기술을 전승하고 우리의 소중한 해녀문화가 다음세대에도 영원히 잊혀 지지 않게 해녀문화보존에도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당당하게 등재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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