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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을 못 버틴 금속공예벽화, 예술적 가치도 잃어버려  

무분별한 외자유치와 개발로 인해 제주도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제주도에는 아직도 때가 묻지 않고 오래 전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들이 아주 많습니다. 마을이 갖고 있는 특색을 잘 살리고 제주만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이 한껏 묻어납니다.

제주시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김녕리 마을이 바로 그곳입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가루처럼 흩날리는 해변의 곱고 하얀 모래,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는 눈을 똑 바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 물빛, 여기에 거문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류가 만들어 낸 만장굴의 빛나는 세계자연유산을 품고 있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주 다행스런 현상이지만, 자연과 경관적 유산들이 존재하다보니 제주도에선 유난히 개발이 더딘 마을이고, 지형적으로도 척박한 환경을 갖고 있어 늘 가난한 마을이었고 이에 따라 고되고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야했던 대표적인 마을 김녕리, 때문에 억척스러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물질과 해녀문화가 가장 발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해녀마을이라고도 합니다.

지난해, 무형문화유산인 해녀와 빼어난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이곳 김녕리 마을에 눈길을 끄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습니다. 다채로운 자원을 가지고 있는 김녕리 마을의 가치를 일깨우고 싶어서 기획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한국농어촌공사가 지원하고 제주에 이주해 살고 있는 금속공예작가와 각 부문 디자이너들이 힘을 모아 조성된 ‘GNG 아트빌리지, 고장난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름 하여 ‘다시방 프로젝트’, 이방인이나 이주민에게 여유로운 터전을 만들어 준 제주도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 프로젝트는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현무암과 재활용품을 금속디자인과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취지하에 제주시와 협업하여  18명의 작가의 손을 거쳐 34가지의 작품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김녕마을의 해안가 서쪽 끝에서부터 시작하여 약3km에 걸쳐 건물과 담벼락에 다양한 형태의 금속공예 벽화를 비롯하여 거리에 금속조형물 등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는데요, 이곳은 김녕.월정 지질 트레일 구간이기도 하고, 제주올레20코스의 시작점이기도해서 접근성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주도만의 독특한 문화를 예술로 표현하여 설치 초기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고 무미건조했던 도보트래킹 길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게 되어 많은 관심을 이끌어 낸지 이제 1년하고도 6개월이 조금 넘었습니다.

결코 길지 않은 세월이 지난 지금, 과연 당시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던 예술작품들은 안녕할까요? 물론 당시에도 저 또한 개인적으로 적잖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맘에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술작품들이 대부분 금속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금속이라고? 제주도의 산남지역인 서귀포와는 다르게 북쪽인 제주시 부근 특히 김녕리 마을이 속해 있는 구좌읍 쪽에는 직접적으로 바닷바람을 맞는 곳이고 지형적으로도 해수면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해발고도 탓에 해풍에 취약한 마을이기도합니다. 때문에 예로부터 대부분의 구조물들은 해풍에 잘 견디는 재질로 만들어져 왔고, 염분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관리되어 왔습니다. 오죽했으면 자동차도 부식되는 속도가 다른 곳에 비해 빠를까요.

유난히 해풍이 많고 부식 속도가 빨라 금속 구조물에 취약한 제주도, 그리고 김녕마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공예품들을, 그것도 비 가림 시설이나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시설이 전무한 야외에 무방비로 노출이 되어 만들어진다니 적잖은 우려를 했었는데,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백색의 도장으로 마무리를 하여 깔끔하고 상큼한 느낌을 주었던 작품은 어느새 누렇게 변하여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제주해녀의 억척스런 이미지를 잘 표현해 냈던 검은색 계열의 작품은 페인트가 죄다 벗겨져 떨어져 나가고, 이 또한 붉게 녹이 슬어 쇳가루가 뚝뚝 떨어져 내립니다. 공터 한가운데 설치된 커다란 철제 조형물은 밑 둥에서부터 부식이 되어 기반 자체가 위태롭게 변했으며, 사람들이 근처에 갈 수 없을 정도로 부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모진 바닷바람에도 아직은 온전한(?) 작품들도 있고, 이미 상당부분 부식이 진행되어 흉물로 변해버린 작품들도 있습니다. 몇 가지 작품만 소개를 한 뒤,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타이틀은 Root1, “나만의 뿌리, 나만의 신념을 키우기에도 여행만큼 좋은 것은 없는 듯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아마도 마음의 뿌리를 키워 나가는 것 아닐까 한다. 그렇게 내안의 중심을 지킬 수 있는, 걸음이 뿌리가 된 나만의 여행이 시작되는 곳 제주.”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타이틀은 섬집아이, “제주의 강인한 여성 해녀, 평범한 어머니의 삶을 살 수 없었던 그녀들은 어린아이를 떼어 놓고 물질을 가야했고 제주의 섬집아기는 울며 엄마를 따라 나서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아이의 손을 억지로 떼어 놓으며 생업을 위해 물질을 나가야만 했던 제주해녀의 애달팠지만 존경스러운 삶을 떠올려 본다.”라는 의미의 작품입니다.



물질을 나서는 해녀를 나타낸 작품



타이틀은 굴곡, “굽어 꺾인 깊은 굴처럼 한평생 고된 인생을 위한 위로”라는 의미의 작품



낚시의 짜릿한 손맛과 청정해역의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팡도라네’ 작품입니다. “짐을 지고 가다가 편히 내려 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주의 널따란 돌인 ‘팡돌’과 그 돌 ‘안에’를 결합하여 발음하기 쉽도록 한 신조어이다. 작품이 영구 설치되는 김녕리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팡돌 안에서 잠시 쉬다 가시라는 힐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팡도라네’는 제주현무암의 구조를 닮은 시각적 모티브와 제주 쉼팡이라는 기능적 모티브에 더하여 김녕리 아이들과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참여 지향적인 공공조형물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일상으로부터의 일탈과 자유로움을 표현,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가는 상징적 작품인데요, 가장자리에서부터 점점 녹이 슬고 칠이 벗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작품 자세히 보겠습니다. 한눈에 봐도 해녀의 얼굴을 표현한 작품인 걸 알 수 있습니다. 깊은 주름과 노랫말로 해녀의 얼굴을 표현한 작품이 맞는데요, 처음에는 검은색의 칠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여 강인하고 억척스러우면서도 고된 삶을 살아오면서 새겨진 깊은 주름까지 잘 표현해 냈지만 자세히 보십시오.



지금은 칠은 다 벗겨지고 온통 붉은 색의 녹물만 해녀의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칠이 다 벗겨져 흉물로 변해 버린 노랫말 작품



무겁게 등에 짊어지고 있는 망사리, 평소 같으면 해산물이 잔뜩 들어 있어야 정상이지만 작품에는 망사리에 꽃을 담아 표현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다에 남겨 둔건 꽃 같은 청춘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이 작품은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해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상처투성이입니다. 작품에 칠해진 도장은 다 벗겨져 나가고...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망사리는 점점 녹이 슬어 보기 싫게 변해가고..



해녀의 얼굴 또한 그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바닷소리 선율에 따라 물고기들이 해녀들의 삶 속에 어우러지는 것을 표현한 이 작품은 더욱 심하게 망가졌습니다.



녹이 진행된 지 꽤 오래된 듯, 벌겋게 부르트고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조만간 칠은 다 벗겨지고, 전체적으로 녹이 슬어 콘크리트 벽을 타고 흘러내릴 것이 뻔합니다. 



바닷가 조그마한 공터에 이르러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조형물 앞에 선 순간 놀라움은 극에 달합니다. 이작품은 김녕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흉물로 변해 버린 조형물



이미 작품 전체로 녹이 진행되어 보수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철거를 해야만 할 정도, 작품임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작품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공공미술 작품으로서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흉물 그 자체입니다.



설치 당시에는 깔끔한 백색 톤의 이미지였던 이 작품 또한 이미 흉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건 예술작품이라 할 수 없죠.



예술작품을 설명하는 안내판도 대부분 글귀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칠이 벗겨져버렸습니다.



강인한 제주해녀를 원더우먼으로 표현한 이 작품과 더불어 위에 소개한 몇몇 작품은 녹이 슬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작품은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고, 어떤 작품은 녹이 슬고 칠이 벗겨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흉물로 변해버렸는데, 과연 무엇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제주도 해안 마을에 그것도 야외에 설치하는 구조물인 경우 절대로 철제가 재료인 구조물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이곳 김녕 마을에 조성된 작품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같은 금속공예라고는 하지만 재질이 조금씩 다릅니다. 금속이라고 해서 다 같은 금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steel)과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순수한 쇠붙이도 있지만, 녹에 강한 스테인리스(stainless)도 있고, 녹이 전혀 슬지 않는 귀금속 재료들도 있습니다. 금이나 백금 또는 은처럼 귀금속 재료들은 전혀 녹이 슬지 않기 때문에 귀금속 대접을 받는 것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김녕마을의 작품들을 전부 귀금속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금속 중에 저렴하면서도 녹이 슬지 않는 재료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구리입니다. 동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금-백금-은 순서 다음으로 녹이 슬지 않은 금속재료입니다. 이 구리에 10% 이하의 금을 첨가한 금속을 적동(red copper)이라 하는데, 위에 녹이 슬지 않는 몇몇 작품들이 바로 적동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입니다.

그렇다면 김녕마을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두 적동으로 했으면 어땠을까요. 당연히 그랬다면 이처럼 흉물로 변해 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재료의 질에 따라 표현해 낼 수 있는 작품의 성격도 고려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전문가는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철을 사용해야만 했던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란 얘깁니다.

녹이 슨다는 말은 즉 산화 된다는 말입니다. 철이 산소와 결합하게 되면 산화되어 녹슬게 됩니다. 구하기 쉽고 값이 싼 재료, 그리고 작품의 성격 상 부득이하게 철로 만들어져야 할 작품이라면 산소 또는 물과 접촉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코팅을 하는 부분에서 방법을 찾아 봤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항상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우리는 담벼락에 못을 박아 만들어 놓은 작품 하나에도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고 파헤치고 건설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오랜 세월이 흘러 화석으로 변해도 그 모습을 잃지 않는 소라껍질이 제주의 돌담과 어우러진 모습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품이라는 금속공예들이 담벼락에 설치되기 전에도 이미 김녕마을은 제주의 소중한 가치를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척박한 환경을 잘 나타내주는 하얀 모래의 농토, 제주스러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나지막한 밭담들, 평화스러운 마을 안길, 역사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도대불(민간등대)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김녕마을은 마을의 어귀에서부터 ‘금속공예벽화마을’로 이름이 바뀌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마을을 대표하고 있는 많은 작품들은 작품이 아닌 흉물로 변해 버린 까닭에 이제는 ‘김녕금속공에흉물마을’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고장난 길’이라고 이름 지어진 프로젝트의 타이틀처럼 김녕마을의 안길이 진짜 고장난 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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