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516도로의 명칭을 반드시 바꿔야 하는 이유

-군사쿠데타의 미화, 유신독재의 망령이 떠오르는 잔재-

"잘못된 역사를 바꿔나가는 것도 또 하나의 역사"

제1횡단도로, 또는 다른 이름이 있으면 부르겠지만, 현재로선 달리 방법이 없어서 516도로라고 부르겠습니다. 제주도 해안가를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를 빼고 제주도의 남북을 이어주는 도로로는 가장 오래된 도로가 바로 516도로입니다. 1973년 개통된 1100도로보다 4년이나 앞서 개통이 되었습니다.

제주도에는 수많은 도로가 존재하지만 세월과 시대흐름에 맞춰 도로의 이름이 변경되어 왔습니다. 제주시와 중문을 잇는 지금의 ‘평화로’는 처음에는 서부산업도로에서 서부관광도로를 거치고 나서야 2006년에 제주평화의 섬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지금의 ‘평화로’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같은 시기, ‘번영로’ 또한 제주동부산업도로에서 동부관광도로를 거쳐 ‘미래의 번영된 제주’에 대한 희망의 뜻을 담아 지금의 ‘번영로’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도로명을 변경하면서 행해진 이유와 절차라고는 ‘사회 환경의 변화와 제주도민의 사회적, 지리적 통합 등을 이유로, 제주발전연구원에 도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것 말고는 없습니다. 제주도 차원에서 추진하였기 때문입니다.


<516도로>

자, 그럼 제주도에서 가장 오랜 된 두 개의 횡단도로 사정은 어떠할까요. 지금의 516도로와 1100도로, 두 곳 모두 처음에는 횡단도로라고 불렀습니다. 먼저 개통이 되었다 해서 516도로는 제1횡단도로, 나중에 개통된 1100도로는 제2횡단도로라고 불렀습니다.

516도로에 대해서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개척만 하고 내버려둔 도로를 복구한 것은 1958년, 이때만 해도 비포장 도로였고, 한라산을 관통하여 제주시와 서귀포를 이어준다고 하여 그냥 ‘횡단도로’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1962년에 와서 횡단도로의 포장이 시작되고 1969년에 포장이 완료되면서 516도로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무려 7년 6개월이라는 오랜 기간이 걸렸고, 기존에 존재하던 도로를 아스팔트로 포장함에 따라 차량으로 5시간이나 걸리던 도로가 불과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게 되어 분명히 좋아진 부분이 있었겠지만, 기존도로를 일부 확장하고 포장만 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군사정변으로 대변되는 516이란 명칭을 도로명으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횡단도로의 포장 공사를 추진한 인물은 바로 김영관 도지사입니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해군소장이었던 김영관이 제주도지사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도로 개발이 시작되고, 그때 횡단도로도 포장이 시작된 것인데요, 도로 포장이 거의 완료 될 무렵, 제주도청 공무원이 직접 박정희를 찾아가 휘호를 받아오고, 그 휘호를 그대로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 비석으로 세우면서 516도로로 불러지게 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 라고 또렷하게 쓰여 있는 기념비>

516도로!

1969년에 붙여진 이름이 50년 가까이 변함없이 불러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제주도의 다른 도로들은 시대의 흐름과 환경에 맞춰 계속해서 변경을 거듭해 왔는데, 왜 유독 516도로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일까요. 516이란 단어는 이름만 들어도 군사정변과 연결이 되고 유신독재의 망령이 떠오르는 명칭임이 분명합니다.

서슬퍼런 군부독재 속에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던 516도로 포장 공사,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 또한 말이 국토건설단이지 병역기피자나 조직폭력배로 꾸려진 단체로서 516도로에 투입된 인력들은 대부분 조직폭력배 출신들이었다고 하니, 군부에 의해 인권이 유린된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공정률이 70%였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를 의식하여 선거 5일 전에 개통식을 여는 등 정치적으로도 철저하게 이용되었던, 사연이 많은 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로의 명칭을 변경하자는 얘기는 계속해서 나왔었습니다. 헌법을 유린하고 폭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군사쿠데타를 미화하고 그를 기념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될 수도 있고, 치욕적인 과거를 그대로 존치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주도로 여행을 오는 많은 사람들 또한 516도로 명칭을 보고 유신 독재의 잔재가 평화의 섬 제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고는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제주시 아라동에 세워진 기념비>


<서귀포시 토평동에 세워진 기념비>

박근혜 탄핵 정국에 맞물려 얼마 전에는 516도로 기념비가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누군가가 박정희의 휘호가 새겨진 기념비에 붉은색 페인트로 ‘독재자’와 ‘유신망령’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것인데요, 박정희의 휘호가 새겨진 기념비는 제주시 산천단 인근과 서귀포시의 토평동, 두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훼손된 기념비. 사진.제주의소리>

훼손된 기념비는 산천단에 세워진 것으로 지난 12월15일에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는데요, 아라동 사무소에서는 이 사실을 발견한 즉시 기념비를 천막으로 가리고 복구공사를 시행하여 불과 보름도 되기 전에 예전의 모습으로 깔끔(?)하게 복원을 시켜놓았습니다. 주민불편사항도 아닌데 아주 의례적으로 발 빠른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훼손된 기념비에 천막을 쳐 놓아 보호하고 있는 모습>


<깔끔하게 음각을 되살린 모습>

516도로의 건설과 관련된 기념비는 이 두 곳 말고도 성판악 휴게소에도 세워져 있습니다. 당시 제주도지사였던 김영관의 업적을 기린 것인데요, 이 공적비 뒤에는 “한라 산록의 기적을 다짐하던 그대, 열을 모아 손을 붙인 1962년 3월 24일, 백리 가파른 산을 뚫어 잠자던 들판에 생명을 불어넣은 아 그대는 이 땅을 연 개척자, 밀물처럼 일어오는 이 길의 감동과 함께 우리는 그대의 위업을 영원히 추모하리라. 33만 도민의 이름으로 이 비를 세우다.”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성판악 입구에 세워진 도지사 공적비>

군사정변을 미화하고 기념하는 명칭인 516도로, 이제는 이 수치스러운 명칭을 과감하게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비단 정치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다른 도로명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여 바꿔 왔듯이 구시대의 잔재가 깊이 박혀 있는 부분이라 새롭고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제주도의 다른 도로는 대부분 명칭을 여러 차례 바꿔왔고, 지난2014년부터는 전국적으로 도로명 주소가 시행이 되면서 지역과 연관된 부르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도로의 이름들이 속속 등장하였는데도 불구하고 516도로 만큼의 성역의 공간처럼 버젓이 통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렇더군요. 잘못된 역사도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에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시대는 흐르고 있고 역사도 바뀌어 가고 있으며, 바뀌는 것도 역사의 일부분입니다.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굳이 주장을 한다면 애초에 부르던 ‘횡단도로’ 또는 ‘제1횡단도로’ 로 부르자고 한다면 그 부분에서도 반대 할 것은 뻔합니다. 그런 논리라면 붉은 색 페인트로 훼손된 기념비도 역사의 일부분이니 그것도 그대로 놔두질 그랬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어차피 516도로의 정식 명칭은 지방도 1131호선입니다. 과거에는 국도 11호선이었는데,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지방도로 바뀐 것입니다. 제주도내 대부분의 도로가 숫자로 명시된 정식 명칭으로 불러지지 않고 지역적 또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도로명을 따로 사용하고 있고 실제로 도로명 주소로도 표기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2014년 시행된 도로명 주소법에 의해 제주시 방향 516도로변에는 ‘516로’라는 신주소가 부여된 상태입니다. 도로명을 바꾸려면 이 부분부터 손을 대야하는데요, 시민들의 힘으로 도로의 이름을 바꾸고자 한다면 애로사항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도로명주소법 시행령 제7조의 제3항에 따라 516도로의 주된 사용자(세대주, 건축주, 사업장 대표) 5분의 1 이상의 동의서를 첨부해 신청해야 하고, 신청서를 접수한 행정관청은 접수한 날로부터 30일 이내 14일간 공고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에 들어가야 하며, 이후에도 도로명주소위원회의 심의 등 까다로운 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도로명 변경을 요청하는 경우이고, 제주도 차원에서 추진을 하면 아주 쉽게 해결될 부분이라고 보여 지는데, 현재로선 제주도에 그걸 기대한다는 건 힘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절차가 까다롭고 행정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하여 이대로 둘 수만은 없다고 보여 지고요,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주체가 되어 한라산을 가로 지르는 지역적 상징성을 담아 새로운 명칭을 제시하고 516도로라는 명칭의 사용을 스스로 자제하고 억제함과 동시에 서명을 받아 추진을 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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