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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맛집&카페

순아 커피, 제주의 100년 된 가옥이 카페로 변신하다

by 광제 2018.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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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아 커피, 제주의 100년 된 가옥이 카페로 변신하다


가마솥 같은 무더위가 삶의 패턴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리는 요즘입니다. 예전 같으면 더위를 피해 어딘가 좀 다녀오면 며칠은 견딜만했지만, 요즘 더위는 피서라는 충전의 도구도 별무소용입니다.

그저 최고의 더위탈출이라면 에어컨이 빵빵 터지는 시원한 건물 안에서 책이나 읽으면 그나마 잠시지만 잊혀지는듯합니다.

사람마다의 더위를 피하는 방법도 가지각색, 숲으로 바다로 떠나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의 피서도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여기에 특색 있는 카페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외부에서 한눈에 봐도 오래된 일본식 가옥, 이 가옥이 카페로 변신을 한지는 꽤 되었지만 와본다고 하면서도 한번을 와보지 못했네요.

이제는 주변 상권이 상당부분 죽어버려 다시 살려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 제주 관덕정 인근입니다. 원도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관덕정이 코앞에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일본식 적산가옥, 100년 세월동안 이 자리에 있었으니, 관덕정에서 시작된 제주의 아픈 역사를 똑똑히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특색 있는 이 카페의 주인을 친구로 두고 있는 지인과 함께 찾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100년이라는 세월을 품고 있는 건물답게 시공간을 건너온 느낌마저 듭니다.

대부분 목제로 만들어진 이 건물을 100년 동안 관리를 해온 것 또한 대단합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온전하게 남기려고 했던 수고가 그대로 엿보입니다. 애정이 없이 과연 보존할 수 있었을까 싶더군요.


가능하면 올라가지 말라고 한다는 나무계단이 눈에 들어옵니다. 왠지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한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는 좁은 계단,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발을 뗄 때마다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나더군요.

2층은 오리지널 일본식 다다미방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조용히 손님을 대접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분위기입니다.

단이나 복도, 천정과 문짝의 나무느낌도 그대로 살아 있고, 리모델링을 의뢰받은 건축가조차도 손을 대려다 그대로 남겨 둔 흙벽이 건물의 가치를 느끼게 해줍니다.

곳 저 곳을 살펴보며 한참을 머물다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벽에 걸린 사연이 눈에 들어와 천천히 읽어 내려갑니다.

오래전에 우리와 함께 살다 가신 분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내도마을 바닷가 근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셨고 해방 후 한골(이호)로 시집을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 후 4.3사건과 한국전쟁을 겪으시고 이념갈등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였지만 제주인의 억척스러움과 자생력으로 타국에서의 시간을 힘들게 견디어 내셨습니다.

근면절약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보상으로 자식들의 성공과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고 고향에 돌아오시겠다는 희망으로 이 건물을 구입하셨습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계시지만 당신의 삶의 고단한 이야기가 담긴 이집과 희망의 메시지를 선물로 남겨주셨습니다.

가끔 그리운 고향인 제주에 오실 때마다 좋은 호텔, 맛있는 음식을 마다하고 여기 낡고 비좁은 집에서 며칠을 지내시며 옛날 당신이 드셨던 소박한 밥상을 받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살암시라 살암시믄 좋은날 온다.’라고 하시며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00년이 되어 가는 이집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냥 손쉽게 철거하고 깨끗하게 현대식으로 만들까, 하지만 의식 있는 건축가의 조언으로 이 건물은 없어지지 않았고 모두에게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우리의 이야기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시대의 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순아는 모두에게 여유로움과 휴식의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더운 여름 바닷가 거친 돌밭에서 힘겨웁게 꽃을 피워내는 숨비기 나무처럼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지만 또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합니다. 순아는 저의 큰어머님이십니다.

숱한 사연과 이야기가 있는 집이었네요.

풍경 좋은 곳에 위치하고 화려한 장식을 한 카페들이 넘쳐나는 요즘, 이렇게 감성을 자극하는 카페에서 잠시 쉬어 가는 것은 어떨까요.
순아커피. 수요일 휴무 일요일은 오후에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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