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꾼들의 감귤 서리, 어떡하나
날이 갈수록 열기를 더해가는 제주올레, 올레꾼들에게 조금은 부끄러운 소식을 하나 전해드려야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애들 보기 창피한 일인지도 모르겠는데요, 요즘 제주는 감귤수확기입니다. 이때쯤이면 제주의 길가 돌담길 너머에는 온통 노란 물결입니다.
노랗게 다 익은 감귤이 주렁주렁 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아직 수확 초기라서 그런지 거의 대부분의 열매들이 수확하지 않고 매달려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근을 지나는 올레꾼들에 의해 감귤이 서리를 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난 끼 많은 어린 시절에나 봄직한 서리, 그런데 애들이 아닌 어른들에 의해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주올레 코스 중에서 감귤 밭이 없는 코스는 없습니다. 감귤나무가 한 개도 없는 우도올레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개발된 15개 코스에는 모두 감귤 밭을 스쳐 지나게 됩니다. 비록 팔을 뻗으면 감귤이 손에 잡힌다고는 하지만 몰래 따 먹는 모습이 좋아 보일 리는 없습니다. 차라리 수확하는 농부를 찾아가 몇 개 달라고 하는 것이 서로에게 기분 좋은 일일 것입니다.
몇 개월 전, 어느 민가에서 텃밭에 심어 놓은 오이가 올레꾼들이 지나가고 난후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감귤 수확기에 집중적으로 감귤에 손대는 광경은 또 처음입니다. 수난을 당하는 감귤나무는 대부분이 길가에 심어진 나무들에서 볼 수 있는데, 하얗게 감귤꼭지가 그대로 나무에 붙어 있으면 사람이 몰래 딴 것입니다.
감귤 몇 개 따먹는다고 대수냐고 하실 분 계실지 모르지만, 일 년간 피땀 흘려 일군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욱이 올해는 감귤이 시세가 좋지 않아 농민들의 심기도 많이 불편합니다. 힘들게 가꾼 감귤농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이래선 안 되는 겁니다.
지나치는 감귤나무의 가지에는 무차별 떨어져 나간 흔적들이 하얗게 남아있는데요, 마침 감귤을 수확하는 동네 삼촌들이 있어 말을 붙여봤습니다.
(제주에서는 어른을 보면 무조건 "삼춘!" 하고 불러야 합니다. 옛부터 그래왔습니다^^)
“삼춘덜 미깡 땀수꽈?”
-->>(삼춘! 감귤 수확하시는 거네요?)
“아따 말 곤는 거 보 난 제준생이여~”
-->>(말투를 보니 제주사람인가 보네.)
“예..시에서 와수돠~요즘 미깡값 하영 떨어졌댄 허멍 예”
-->> (네, 제주시에서 왔습니다. 요즘 감귤 값이 많이 하락 했다면서요?)
“말도 마라 게 올리도 영 글러싱게”
-->> (말도마세요. 올해도 가격이 영 시원치가 않네)
“에구 게매예 삼촌덜 힘좀 나게시리 값이라도 하영 받아사 좋을 건디.”
-->> (에구 그러게 말입니다. 감귤값을 많이 받아야 삼촌들 힘이 좀 날건데...)
“건 경허고 이놈의 올레꾼덜 담 넘어 댕기멍 미깡이나 따먹지 말암시민 조켜~경 안해도 속상헌디..”
-->> (그건 그렇고 올레꾼들, 담 넘어 다니면서 감귤이나 따먹지 말았으면 좋겠네..그렇잖아도 속상한데...)
잠깐 동안 나눈 대화였지만 하얗게 변한 나뭇가지를 보며 썩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행여 올레걷기 중에 감귤을 수확하는 농가가 있으면 능청스럽게 몇 개 달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파르르의 제주올레]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파르르의 한라산과 제주]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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