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독특(?)한 나만의 설날 풍경
"아버님, 어머님! 저희들 왔습니다.."
할머니~! 소리를 지르며 현관으로 들어서는 외손주들의 얼굴을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며 쳐다보시곤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시는 장모님.
어김없이 이부자리를 펴놓고 나오십니다.
먼저 두 분께 새배를 드리고는 안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정갈스럽게 깔린 이부자리 밑으로 손을 넣어보니
전기매트에서 따뜻하게 열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포근한 이불속에 들어가 있으니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버립니다.
연일 계속된 야근에 패턴이 들쭉날쭉한 회사생활을 하는 막내사위의 새배를 받으신지도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결혼 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 귀가가 늦어질 때면 늘 베란다 창문에서 기다리시곤 하셨던 장모님....
데이트시절 아내와의 데이트를 마치고 바래다 줄때면 언제나 아파트의 베란다에 몸을 숨기고 서 계셨다가
막내딸이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가시곤 하셨지요.
결혼초의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처가에 갔을 때입니다.
눈을 좀 붙여야 되겠다 싶어 안방으로 들어가 베개 하나 달랑 받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단잠에 개운한 몸을 일으키니 방바닥에 깔려 있어 썰렁했던 전기매트에는
따뜻한 온기가 흐르고 있었고 포근한 솜이불이 몸을 덮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몸으로 느낀 장모님의 사랑의 시작이었습니다.
1986년부터 시작된 직장생활.....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야간근무와 주간근무를 오가는 근무패턴 때문에 항상 피로는 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 같은 패턴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간혹 처가에 놀러갈 때면 지친 몸을 뉘일 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몸을 뉘어 눈을 붙이라라 치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시다가도 슬그머니 오시곤 솜이불을 조용히 덮어주시고는
행여나 깰까봐 방문까지도 살며시 닫아두고 나가시곤 하십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습니다.
장모님의 방에서 눈을 붙인 시간이 단 10분이든, 아니면 몇 시간이든 신기할 정도로 몸이 개운하다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아무리 잠을 자도 풀리지 않던 만성적인 피로가 개운하게 풀린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처갓댁이 풍수지리학 적으로 내 체질에 맞아서 그런가?" 할 정도로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자나 깨나 조심조심....
야근을 해서 피곤하지는 않은지.....
먼 길 운전해서 오느라 졸립지는 않은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항상 막내 사위의 안부를 걱정하시며 사시다보니
당신 품에서 쉬어가는 사위를 보고 흐뭇해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새배를 하기위해 찾아간 설날에도 먹음직스런 곶감을 접시에 넣고 꺼내 오십니다.
사위가 평소에도 곶감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따로 잘 챙겨두시곤 하십니다.
잠깐 동안 인사를 드린 후 안방 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오늘도 변함없이 포근한 이부자리가 곱게 펴져 있습니다.
"들어가 눈 좀 붙여~"
이럴 때는 못이기는 척 들어가 줘야 좋아하십니다.
잠시 후에는 어김없이 따라 들어와 전기매트의 스위치를 켜 놓고 방문까지 조용히 닫아 놓으십니다.
장모님이 막내 사위에게 쏟아 주시는 정성에 보답을 못해주는 것 같아 언제나 마음이 쓰립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당신에게도 장성하여 가정을 꾸린 아들이 둘씩이나 있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유난히 사위를 챙기시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장모님께서 왜 이토록 유난스러울 정도로 사위를 챙기시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낳아주신 어머니에게서는 가슴 저미는 그리움이 있는 반면....
장모님에서서는 언제나 변함없는 가슴뛰는 설레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 뒷자리에선 장모님이 챙겨주신 김치냄새가 솔솔 풍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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