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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단돈 1만 원짜리 중고 교복의 사연

by 광제 2014.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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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만 원짜리 중고 교복의 사연

 

거실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아내,

다른 때 같으면 퇴근하는 남편을 보고 바깥 날씨가 어떠니 하면서 한마디 걸어옴직도 한데,

한번 힐끗 쳐다보기만 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하는 아내,

 

사람이 들어와도 보는 둥 마는 둥, 대체 무얼 하느라 저리도 열심일까.

조용히 다가가 살펴보니, 아이들 학교 교복에 박힌 명찰 자수를 한 올 한 올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교복의 이름표는 왜 뜯어내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더 의아한건 교복에 적힌 이름이 우리아이의 이름이 아니었던 것,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의 교복을 손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웬 교복이야?"


"응...누구, 줄 아이가 있어서 그래~"


"새 교복도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누굴 준다는 거니?"


"민철이 친구 중에 진수라고 알지?"


"응...알지"


"걔, 교복이 없어서 줄려고 중고교복 하나 사왔어, 이름 다시 박아서 줄려고..."


"진수 교복을 왜 당신이 사주는 건데?"

 

 

아들친구 중에 진수라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의 교복이 아내가 장만을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중고교복으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여름이 끝나고 막 추워지기 시작하던 얼마 전,

학생들은 대부분 입고 있던 하복을 정리하고 두터운 동복을 꺼내 입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저희들도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두터운 동복을 꺼내 입혔지요.


그로부터 얼마가 지났을까,

아들 녀석이 여벌로 갖고 있던 동복 윗도리 하나를 친구인 진수에게 빌려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이유가 참으로 딱했던 것입니다.


아들 친구인 진수는 몇 해 전에 말 못할 사정으로 부모의 손을 떠나 할머니와 지내고 있었는데,

동복으로 갈아입을 시기가 되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하복을 입고 다녔던 것입니다.

 

보다 못한 아들 녀석이 동복을 마련할 때까지 만이라도

여벌로 갖고 있던 윗도리를 친구에게 빌려주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정을 전해들은 아내, 바로 그길로 시내에 있는 중고 나눔장터로 달려간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도 있겠지만, 저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시내 대부분의 학교 중고 교복들을 수집해서 저가에 팔고 있는 나눔장터가 있거든요.

 

그곳에서 중고교복을 단돈 1만원에 비교적 상태가 좋은 걸로 골라 구입하고는

이왕에 주는 거 이름까지 반듯하게 달아서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들과 친구사이로 지냈던 녀석이라

아내는 진수네 집안 사정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상태,

자고나면 불쑥불쑥 자라는 아이들, 지난겨울에 입었던 교복을 입지 못해 새 교복을 장만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못된다면 얼마동안을 하복을 입고 추위에 떨어야 하는지를 아내는 짐작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또한 남의 이름이 달린 교복을 빌려 입고 다니는 진수의 기분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을 것,

망설일 것도 없이 중고교복을 사다가 손질하는 아내의 손길이 바쁜 이유입니다.

두 아이만을 키우는 어머니가 아닌 세상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 같은 아주 큰 어머니 같은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 이름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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