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녀석 때문에 족보를 꺼내들었습니다

족보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았던 20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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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인 저의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올해10살입니다.
몇일전이었습니다.

아빠~ 하고 부르더니 “아빠, 나는 몇 대야?”


순간 저는 이녀석이 무엇을 여쭤보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제가 다시 궁금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죠?
학교에서 조상님에 대한 공부를 하던 중 선생님께서 집에 가서 몇 대손인지 알아보라고 하셨답니다. 순간 머뭇 거린 저는,

“어, 그래 아빠가 21대손이니까 니가 22대손이 되겠네..22대손이다.”

라고 말해주고는 붉어지는 얼굴을 내심 감추고는 자리를 일어섰습니다.
볼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왜냐구요? 이녀석은 한번 질문을 시작하면 꼬리를 물고 줄기차게 해대는 집요한 성격을 갖고 있거든요. 일단 자리를 피하지 않고는 어떠한 봉변(?)을 당할지 모를일입니다.

다음날 책꽂이 깊숙이 보따리에 묶여 꽂혀있던 낡은 족보를 꺼내 들었습니다. 무심한 주인이 오랜 세월 들여다 보지도 않았기에 족보가 한결 낡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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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때 아버지께서는 오랜 투병끝에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족보라는게 있는지 조차도 말씀을 안해주시고, 물론 제가 여쭤 보지도 못한 불찰도 큽니다만은 그렇게 가신 후 10여년이 지난 후 이사를 하게 되어 짐을 정리하던 중 괴짝 깊숙이 박혀져 있던 족보를 발견했죠, 그리고는 한번 슬쩍 흘겨보듯 하고는 책꽂이에 꽂아뒀다가 오늘에야 꺼내들었습니다.

나에게도 이제는 아들이 있고 아들녀석이 커서 손자를 낳을거고, 오랜세월이 흐른후에는 내가 후손들의 조상이 될거라는 생각이 든 후에야 꺼내든 족보였습니다.

                  아들녀석의 질문하나가 나를 돌아보는계기가

아버지께 죄스럽고 조상님께 죄스럽고, 낡은 족보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눈시울이 붉어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가정들처럼 문종도 없고, 아버지 형제분들이 많이 계셔서 족보를 정리해 주실분도 안계시고 족보를 읽는법 조차 모르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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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 보기에도 챙피하고 해서 급한 마음에 친척어른을 수소문끝에 찾아 뵜습니다. 물론 어른께서는 이제라도 족보를 들고 찾아온 것을 보고는 다행이라 하십니다. 족보가 너무 오래되어 다시 정리를 해야겠다며 도와주시겠다고 합니다. 아들녀석이름도 족보에 올려야 될거 아니냐며...

사실 족보에 관한 포스트를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집안일이라 챙피하기도 하고, 무슨 자랑거리도 아니고, 하지만 포스트를 쓰는 것이 저에 대한 질책을 하고 또한 반성의 의미와 앞으로 족보관리에 나름대로의 구심점이 될거라는 생각에 결심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동안 죄송합니다. 아버지, 얼마 있으면 손자녀석의 이름이 올라간 새로운 족보가 나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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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oon1991.tistory.com BlogIcon 오드리햅번  수정/삭제  댓글쓰기

    족보 중요하지요.
    우리집은 아버님 돌아가시전 새로 만드셨어요.

    2008.08.18 11:02 신고
  2. Favicon of http://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계의 뿌리를 잘 간직하셨네요~~

    2008.08.18 11:51
  3. whrqhrh  수정/삭제  댓글쓰기

    족보는 구시대의 유물이 아닌가 합니다. 거이다가 구라죠 ㅎㅎ ^^ 매매의 대상도 많았고 돈에 많이 바뀐것도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게 족보가 나온게 조선시대 중반기에서 후반기에 생성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족보가 많이 생성이 되었고 지금의 족보의 원형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이전 자료... 고려시대 신라시대 족보의 지료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고려시대 신라시대는 여자가 성을 이어 받아서 제사를 지낸집안도 많습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하드라도 여자가 성을 이어 받는 세상이었습니다. 그것도 아무 문제가 없는...

    여기서 족보의 잘못된게 나옵니다. 족보는 남자 중심으로 편찬이 되었고 지금이야 마누라와 딸의 이름도 올라 갑니다.(우리집안의 경우.. 10년마다 편찬을 하더군요)

    제 생각에는 족보의 경우는 없어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2008.08.18 15:02
    • 공감  수정/삭제

      외가 친가 족보로 보면 쟁쟁합니다.
      그래서?
      제 질문입니다.
      지금, 자손들 중엔 이런 이도 있고 저런 이도 있고.
      외가 족보는 선대로 집성촌에서 이루어진 오래된 증거들이 있지만, 친가쪽은 저도 글세올시다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호적도 없애는 세상에서 족보는 무슨.
      오히려 족보 없는 집안에 대해 우리집안은 이렇다 하고 자랑하는 것은 소수의 가진자가 뻐기는 것처럼 속물로 보입니다. 돈 주고 산 족보가 아니라면 한국 국민이 다 양반에 오래전부터 귀족이었다는 소리인지. 서로가 속이고 속아주는 웃기는 코메디라고 생각합니다.

      2008.08.18 15:21
    • 웃기네요...  수정/삭제

      열심히 노력해서 당신네 가문에 영광이 되게끔 이름을 좀 올리시지요...
      이런 글들이 올라오는 것 보니, 족보를 팔고사고 많이들 했겠구나 싶네요.

      가문이 있는 집안은 정말 족보 중요하고, 결혼할때나 그럴때 왜 가문있는 집안이냐고 물어보던게 자꾸만 생각나네요.

      자기 집안이 아무 뿌리도 없는 그런 집안이니까, 남들 집안도 다 그럴것이라고 일반화하지 맙시다. 사실, 제대로 된 집안은 상당히 드뭅니다.

      2008.08.19 05:19
    • qwer  수정/삭제

      그래서 그걸 따져서 뭘 한답니까.

      물론 사람의 성품에 영향을 주는 것에는 가풍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치지만.

      일단은 사람됨을 제대로 봐야되는 건 아닐까요.

      뼈대있는 집안이기 때문에 근본없는 집안과 결합은 안된다는 생각은 진짜 구시대, 즉 계급이 일반화되어있던 시대에나 중요한 개념이지.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지위가 변하는 현시대에는 뼈대있음을 내세우는 것이 전혀 맞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P.S) 아 족보가 필요하긴 하겠네요. 조상중에 매국행위자가 있나 확인은 해야할 것 아닙니까?

      2008.08.19 11:50
    • 돋움  수정/삭제

      뭐 그렇긴 합니다만 이제는 족보가 귀족 운운의 증거라기보다는 그 집안에 대한 문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글에서는 족보에 올린다는 것은 집안 사람이 된다는 의미인 만큼 그런 방향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2008.08.19 11:55
  4. Favicon of https://donzulog.tistory.com BlogIcon 돈쥬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우리집에도 족보가 있냐고 했는데 실컷 비난만 받았어요 ㅠㅠ 그러면서 아빠 엄마는 족보를 꺼내들고 오셔서 봐라!! 읽고 해석해와, 안습.

    2008.08.18 15:12 신고
  5. 아라미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골은 지금도 같은 성씨들끼리 집성촌을 이루는 곳이 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근본도 모르는 사람들을 족보에 올려주곤 하더군요 근래의 일은 아니지만 해방 이후에....

    2008.08.18 15:43
    • 돋움  수정/삭제

      저희 어머님 집안이 그런 경우인데 마을 사람들 모두 '송'씨죠. 인척들이 모두 한 마을에 있다는...

      2008.08.19 11:52
  6.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8.08.18 18:03
  7. zhd  수정/삭제  댓글쓰기

    whrqhrh님, 공감님

    족보가 구시대의 유물이고 거짓이 섞인 것은 맞지만 나름대로 기능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소속감, 자부심, 집안의 명예에 대한 책임감과 성취동기 같은 교육적 효과입니다.
    우리 선조들도 그런 긍정적 효과 때문에 자부심과 명예의 상징으로 족보를 소중히 간수해 온 것이죠.

    노비 해방 이후 감쪽같이 사라진 노비들의 후예가 양반들의 족보에 모두 스며들었을테니 선조들도 족보의 진실성은 믿지 않았을 겁니다.

    2008.08.18 18:48
  8. 보채미  수정/삭제  댓글쓰기

    족보만 가지고 나는 양반이네~ 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허새 부린다고 다 양반대우를 해준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도 조상을 모신 사당이 있냐 없냐.
    그리고.. 자손이 있다면 그 자손이 사라질때 까지 제사를 모셔야 하는 불천위가 계시냐
    안계시냐에 따라.. 아무리 쟁쟁한 족보를 가졌다고 해도 양반으로 대우를 못 받았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존재를 하며 아직도 시골에 종가를 둔 집성촌은 이조건을 갖춘 진짜 양반의
    후손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에 말씀 하신 몇분중.. 서로가 속이고 속아준다.. 이것은 존재 하지 않습니다.
    보면 아니깐요 그리고 그 조건을 충족하는 문중들 끼리 다 요즘은 네트워크화 해서
    자신의 가문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게 아니라. 전통문화 계승을 목표로 약간의 돈을 모아서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수탈과 지배의 주체가 아니라. 이나라를 지탱해온 선비정신을 아직도 이어 나가는 각문중 사람들이
    보시면.. 여기 댓글을 쓰신 분들에 대해 분노를 느끼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양반들은. 일제의 창씨 개명에 저항 하여 이름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고
    일제도 양반을 건들어 문제를 크게 하지 않기 위하여 문제 삼지도 않았습니다(특히 영남)

    제가 쓴 댓글에 반론을 제기 할 분들 많으시겠지만..

    제가 겪었고.. 지금도.. 저희 문중이 계속 해 나가는 일들을 보면 자부심 느낍니다.

    욕하실려면 하세요, ^^

    2008.08.18 19:07
    • whrqhrh  수정/삭제

      생각의 차이죠 ^^ 욕까지야..^^ ㅎㅎ 조그만한 생각이 차이가 나중에는 크게 나타나죠^^

      이 논쟁은 옳고 그름이 없는 그런 논쟁이 아닌가 합니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을수 있습니다. ^^


      저희 집안은 족보를 산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잘난 집안도 아니고.. 거이 평민 비슷한 집안이라..ㅡ.ㅡ;; 그리고 반 집성촌입니다만.. 밀양에서 서예로 유명한 집안 할아버지도 계십니다. 밀양 경찰서 앞 돌에 글을 적으신분이라.. 저도 그렇게 유명한지는 몰랐죠ㅡ.ㅡ;
      몇년전에돌아가셨습니다만...

      아무튼 제가 사는곳이 밀양이다 보니 밀양 박씨가 많습니다. 밀양박씨가 좀 유명하기도 하죠 ㅎㅎ 암행어사 박문수도 있고... 뭐 좀 이름 있는 양반가죠 ㅎㅎ

      저 집안만 해도 제가 32대손인데 밀양박씨는 50대손이 훨씬 넘어가버립니다.


      자 문제입니다. 족보는 조선 중기에 명나라에서 전해져 와서 정착이 되었습니다 !! 양반 고유의 문화 코드로 장착되기까지 얼마걸리지도 않았지만요...

      즉 족보가 우리 생활에 쓰며든게 500년이 안됩니다. !!

      김해 김씨만 해도 70대손까지 있는걸로 압니다. 족보라는게 생성되기 이전 자료는 어디서 나왔을가요?


      그리고 선비 정신이라는것은 기본이 사대주의 정신입니다. 소중화... 대표적으로 율곡 이이가 그랬고 퇴계이황이 그랬습니다. 이건 그들의 글을 보면 부정할수 없는 현실입니다.. 쩝..

      족보는 속이고 속아 줍니다. 조선중기 이전 족보 자료를 한번 잘 보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된거 한국내에서는 없는걸로 압니다.


      아 그리고 족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집안의 소속감과 의무감 그리고 집안의 고유의 문화를 잘 이어가게 하는 그런 부분이 많다고 생각 합니다.

      2008.08.18 22:34
  9. Favicon of https://egrim.tistory.com BlogIcon 이그림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 들렸다 갑니다

    2008.08.18 21:52 신고
  10. kendos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손을 이야기 할 때는 22대손이 아니라 22세손이라고 하고 조상을 말할때는 10대조할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2008.08.19 12:06
  11. 감초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기의 본관도 모르고, 뿌리도 모르면서, 국사를 배우고, 세계사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

    2008.08.20 01:09
  12. 보채미  수정/삭제  댓글쓰기

    whrqhrh 님 지금 결정적 오류를 범하셨는데요 선비 정신의 기본이 사대 주의 라뇨?
    선비가 먼지도 모르는 사람이시군요. 공부 다시 하시구요.
    그당시 지배 계층은 족보를 다 가지고 있었구요 그것에 대한 증거로는 김대문이 지은 화랑세기
    (내용은 그렇다 치고 책이름 만으로도) 자신의 조상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구요
    심지어 지금 일본에도 지배 계층은.. 그 족보를 유지 하고 있습니다. 특히 백제왕 후손은
    아주 자랑스럽게 우리나라 취재진에게 보여주는걸 방송에서 봤구요.
    즉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족보가 들어 왔다는 것은 어불 성설이란 말입니다.

    님처럼 우리나라 역사를 사대주의니 하며 비하하는것 자체가 이미 사대주의에 빠져 있는 겁니다
    정신 차리십시요...

    2008.08.20 09:26
  13. Favicon of http://노1221@hanmail.net BlogIcon 왕족보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조선 고려 시대에 지배층인 양반 계급이 10% 이하의 구성비 였고,80% 이상의 대부분이 노비등 하류 계층이었으나, 1850년대이후 양반 계급의 성과 족보를 사서 양반 성에 편입된 경우가 많았죠.. 실제로 노비들을 성이 없이 개똥이, 을순이. 마당쇠 등으로 불리다가 85%이상이 김,이, 박가의 성으로 족보를 사서 족보에 편입된 경우가 대다수...

    2008.08.20 10:59
  14. Favicon of http://springdad.tistory.com BlogIcon 춘부장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족보네요. 대정2년이라고 써 있는 걸 보니.. 왜정때 증간하신 모양입니다.
    자신의 뿌리를 기록하는 문화는 정말 칭송 받아 마땅합니다.

    2009.08.2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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