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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밥을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이제 서서히 공부에 열중이어야 할 나이에 있는 아이들 얘기며, 이런 저런 살아가는 얘기들을 한참 나누던 중 이 친구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저에게 묻습니다.
 

‘경제사정은 어떠하냐..돈은 많이 벌어놨냐?’

‘많이 벌고 말고가 어딨냐..월급쟁이의 한계가 있는데 그냥 한달 벌어 한달 사는거지머..’

‘에구..니인생이나, 내인생이나 별차이 없네...’

이친구가 무슨얘기를 꺼낼려고 이런 질문을 하나, 혹시 돈이라도 꿔달라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재산하나 반듯하게 장만한 것도 없는데 3억5천을 전부 어디다 썼을까?’

‘엉? 3억5천이라니.. 뭔소리냐?

밥 먹다 말고 소주 한잔을 들이키고는 이유을 털어 놓습니다.
직장생활 20년동안 받아 온 월급을 합해보니 지날달까지 3억5천이 되더란 얘깁니다. 몇일전에 집에서 시간이 나길래 지금까지 20년동안 모아온 월급명세서를 일일이 계산기로 두들겨 보았답니다.
 

‘참으로 할 일 없는 친구네..그걸 합해 본 것도 그렇지만, 월급명세서를 20년동안 모았단 말야?’

‘응..내가 한달간 일한 결과이고, 보람인데 놓은건데 버리기가 이상하더라고...그래서 한장 두장 모으던게 지금까지 20년이나 모였네...’
‘20년전 직장생활의 첫 월급명세서를 보니까 감회가 새롭더라구....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20년 동안 나..뭐했나 싶어...한심하기도 하고, 하긴 너도 알다시피 다른 생각할 여유 조차도 없이 20년을 달려온 것 같다.’


이 친구 말끝을 흐리더니 소주잔을 기울이며 눈가에 촉촉한 물기가 맺힌 것을 보았습니다.

‘야야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그리고 나중에 20년전 월급명세서나 함 보여줘라’ 하고는 식사를 마치고 몇일 후 월급명세서를 보고 싶기도 해서 그 친구 집에 들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두꺼운 종이로 된 화일이 너덜너덜 해진, 언듯 오래된 고문서 같아 보이기도 하는 화일을 저에게 건네면서 친구놈 눈가에 또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무엇이 이놈을 우울하게 만드는걸까, 집으로 돌아 오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릴적부터 친구로 지냈던 사이인지라 집안 내력까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친구녀석의 아픈마음을 눈치는 챌 수 있었습니다.  형제들 많고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친구녀석, 동생들 학비 대야 한다고 공업고등학교만 졸업하고는 바로 사회에 뛰어들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고등학교때 돌아가시고 어려웠던 가정형편은 더욱 어려워져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을 하였죠.



동생들이 넷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나이로 보면, 고등학생동생인 한명, 중학생 한명 초등학교 고학년에 두명, 이렇게 넷이 있었으니 형으로서의 책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자기 자신의 앞가림을 하기에도 힘겨운 시기에 오로지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20~30대의 젊음을 헌신했으니 지금에 와서 20년동안 쌓여 있는 월급명세서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고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간의 3억5천이라는 돈 중에 손에 넣은 것은 없지만  평소에도 친구녀석은 동생들이 학교를 착착 졸업해가며, 사회에 뛰어들고 성인이 되가는 모습을 보며 늘 자랑스러워 했으니 후회는 없을겁니다. 또한 동생들 입장에서 보면 형이 얼마나 고마울까요.


지금 몸담고 있는 직장, 몇 년째 다니고 있냐고 물어보니, 처음 사회생활 할 때 1~2년씩 두 곳의 일자리를 경험한 후에 현재의 직장에 일을 한 지가 18년째를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엊그제 같아 보이는데 세월도 많이 흘렀습니다. 어려운 가정에 가장의 자리에 서서 동생들 바라보며 쉼 없이 앞 만 보고 달려온 친구, 한 곳의 직장에서 오래 머무르다 보니 이제는 그만두기도 은근히 겁이 난다고 합니다. 가장에게서 볼 수있는 책임감 때문일까요,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조그만 사업도 못해보고 쌓여가는 월급명세서와 함께해 온 눈치밥의 월급쟁이 20년, 그래도 이 친구 '이렇게 다닐 수 있는 직장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고 늘상 얘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4년전에는 친구의 노모께서 별세를 하셨고 이제는 동생들이 모두 출가를 하였습니다. 친구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왠지 모를 마음 한구석이 아려옴이 느껴집니다. 전화를 해야겠습니다. 저녁 한번 사겠다고, 그리고 친구녀석에게 말해줘야겠습니다.
'아무리 황금만능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네녀석은 돈보다도 더욱 값진 인생을 살고 있는 멋진녀석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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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축복가득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삶을 고스란히 그곳에 투자하여도 아깝지 않은 그런
    좋은 직장을 다닌다면 한결같이 발바닥에 땀나게 20년
    이상을 다녀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2008.10.08 22:17
  3. 하늬바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봉 16만원에 연장근로수당 10만원이라... 20여년동안 어렵게 살다보니 연장근로 꼬박꼬박 챙겨왔을 당신, 우리내 월급쟁이들의 전형을 보는것 같아 가슴이 징하네요.
    세계적으로 노동시간 많은나라, 대한민국의 현실에 찹찹 합니다.

    2008.10.08 23:44
  4.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8.10.08 23:51
  5. 왠지 제 부모님의 이야기같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40대 가장의 이야기가 아닌, 저의 아버지 어머니께서 내쉬는 한숨같아 공감되면서가슴이 아픕니다.

    힘들게 번 조그만 수입으로 자신의 가족과 형제들을 보살피시며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신

    파르르님의 친구분, 정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버지이십니다.

    2008.10.09 00:02
  6. 그당시면  수정/삭제  댓글쓰기

    88년이면 월 최저임금이 11만원 하던 시절입니다.
    33만원이라고 써 있는걸 보니 최저임금의 세배니까...
    지금으로 치면 250만원 정도 수준이네요.

    2008.10.09 00:10
  7. 총각아저씨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들을 읽어보다가 느낀건데요....
    그당시 월급보다 많이 받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네요...
    근데... 명세표를 보시면 급여액의 1/3정도가 "연장수당"이라는걸...
    한푼이라도 더 버시려고 얼마나 일을 많이 하셨으면....

    2008.10.09 00:37
  8. Favicon of https://labstal.tistory.com BlogIcon 뷰라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이 아프네요 정말.....

    2008.10.09 00:43 신고
  9. 시간..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나이 어느덧..31..이제 32이 다가오네요..
    살면서 사는게 힘들다고 툴툴대기만햇는데.. 이글을보니..가슴이 뭉클하고...제가참 한심해보이네요..언제나..머든..쉬운일은 없는 법인데.. 쉽지 않다고 하소연만했던 제모습이 창피해집니다..
    저희 부모님들이,..자식들위해 그렇게 고생해셧을것을 세삼스레..떠올리게되고..
    저도.. 그 20년이란 세월을 이분처럼..열심히 살았노라고 말할수 있게된다면 참으로 행복할것 같습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
    언제나 그 20년의 노력과 땀만큼 가득찬 행복을 누리시길..바랍니다..

    2008.10.09 01:15
  10. 정신나간놈의 2mb정부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는것은 금융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리먼브러더스는 부도났다.
    국가기관인 산업은행장은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리먼브러더스 인수는 대통령하구 상관없다.
    언론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방송사 사장 인사는 낙하산이다.
    임기는 보장하겠지만 사퇴압력은 넣겠다.
    산에 올라 촛불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반성했지만 유모차 부대는 아동학대죄다.
    집회의 자유는 보장하겠지만 집회는 원천봉쇄 하겠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겠지만 인터넷은 고소없이 수사하겠다.
    근데.. 이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외환보유고는 충분하지만 외화 모으기 하겠다?"
    ㅎㅎㅎ 지나가는 개가 다 웃는다.
    먹고살기 힘겨운 서민들이 봉이냐! 달러 모으기가 왠말인가?
    지들은 외국나가서 달러 펑펑쓰고 돌아다니며 외화 축낸놈들이
    이제는 달러를 모으자고 조둥아리를 함부로 놀리고 있다.
    먹고살기 힘든 서민들 열받아 화병 생기라고 일부러 그러나봐 18
    만만한게 홍어?이냐!

    2008.10.09 01:15
  11. 민광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한직장에서 20년이 넘으셨다면 그친구분도 무슨일을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있는 일의 달인이 될 수준이시네요. 20년이라... 아직 어려서 저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정말 열심히 사셨네요. 그런 열정으로 저도 살고싶습니다.

    2008.10.09 03:09
  12. 홍진우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고민 고민 하던차..
    제목에 이끌려 여기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가슴깊이 진심이 담기고 좋은글 오랫만에 읽고 기분이 좋습니다
    두분 우정이 오래 가셧으면 좋겠습니다

    2008.10.09 03:45
  13. 이승철  수정/삭제  댓글쓰기

    쌍욕을 해도 늘 웃는 친구, 내 맘속 괴로움을 받아 주는 친구, 내 표정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아는 친구, 언제나 소주에 김치만 있어도 좋아하는 친구, 제 자랑입니다. 전 그런 친구가 몇명 있습니다.그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당신들은 성공하신 분들입니다. 친구가 옆에 있으니까요.두분 건강하시고 오랜 우정 지켜 가세요.

    2008.10.09 07:32
  14. storm53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진정한 영웅들이십니다. 민초들은 하루하루 근심에 힘들어하고 고통스러

    워하는데 높은 자리에 있는 양반들은 어찌 자신들 배불리기만 고민하고 있는 걸까요?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지내면 제대로된

    지도자가 나올테지요. 그때까지 모두들 평안들 하시길...

    2008.10.09 07:58
  15.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티스토리 입니다^^
    회원님의 포스트가 현재 다음 첫화면 카페.블로그 영역에 보여지고 있습니다. 카페.블로그 영역은 다음 첫화면에서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회원님께서 작성해 주신 유익하고 재미있는 포스트를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다음 첫화면에 소개 하게 되었으니, 혹시 노출에 문제가 있으시다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티스토리와 함께 회원님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08.10.09 10:37
  16. 감동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찡한얘기네요.. 너무맘아파요..
    저희도 가족이 일곱이라 조금은 그맘이해할것같아요...
    자기월급받아서 어디쓸거없이 다 밑에동생들에게 들어가고...
    자기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이 없었다는게 넘안타깝네여...
    힘내세요 ! 앞으로 더 행복하실거에요 ! ^^

    2008.10.09 13:00
  17. 아자아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게요. 뭐하고 살았을까요. 경찰인 울 신랑 초봉이 상여금 없이 2십만원이 안되던 시절 89년도 이야기네요. 상여금 합해서 님과 비슷한 3십1만4천원이었던가..ㅎㅎㅎ. 두달에 한 번 3십, 두달에 한번 1십7칠만 몇천원 받던 시절부터 급여 명세서가 멜로 나오기 전까지 저도 신랑 봉급표 모아두었는데... 양가 어머니 가끔씩 드리는 용돈, 중,고등학생이 된 아들들 키우느라 지출한거(과외비 조금밖에 안드는데, 수학과외만 하거든요. 나머지 스스로 해결 교육방송,문제집 등등) 글구 겨우 서른평아파트(여기 지방이어요) 대출받아 올봄에 이사하고... 애 낳기전하고 애들 학교 입학하면서 부터는 나도 조금씩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데도 사는건 늘 빠듯하고 가끔씩 신랑은 님의 친구분과 같은 한숨으로 버거워하며 자조를 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꼬맹이었던 시절 애들사진 보여주고 지 아빠보다 더큰 아들들 불러내 아빠 안아 주라고 하지요..ㅎㅎ 그 보상으로 통닭 한마리와 맥주가 네식구의 위안으로 따라 붙고...

    2008.10.09 13:51
  18. 가스총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 글도 아름답지만 님의 댓글이 더 마음에 다가 오네요.
    우리 마눌님이 이런 글 좀 봤으면 -_-

    2008.10.09 14:47
  19. 졸린바보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한국렌탈??
    넌 누구냐..가아니라 뉘신지??

    2008.10.09 16:47
  20. 정희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과 같은 전 남편은 누나 빚 안갚아준다고 저한테 이혼하자더군요..
    12년전 급여가 80만원.. 매년 5만원씩 올라 9년뒤 급여가 140만원.. 세금빼면 130될까말까
    100일된 아이 맡기고 맏벌이 하여 내가 70벌고(비정규직).. 아이둘 어린이집 40만원(종일반)...
    그래도 21평 아파트에 세피아 굴리고 꼬박꼬박 보험넣고.. 나름 50이하의 체중을 유지하며
    이쁜 아내 되려고 애썼는데.. 지금까지 사신건 혼자하신게 절대 아닙니다..
    아내의 절대적인 노력의 결과죠..피는 물보다 진하다는거..아뇨! 신뢰가 뒷받침된 사랑과 헌신이
    피보다 진하죠.. 힘내시구요.. 하이팅!!

    2008.10.09 23:20
  21.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훈훈하네요. 좋은 사이로 계속 유지되시길..

    2008.10.1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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