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으로 만나 지금까지 탈도 많고 말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결혼기념일만 되면 유독 신경이 쓰였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5년차가 되다 보니 이제는 아내 또한 기대치가 내려가고
나름대로의 요령도 생기고 하니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만,
결혼초기에는 무슨 대단한 이벤트인 냥 여간 신경이 쓰인 게 아니었습니다.
결혼 초 대략 3년간은 기념일을 잊지 않고 잘 기억합니다.
행여나 잊기라고 하는 날에는 큰일이라도 날까봐 휴대폰에 알림기능으로 넣어 두기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근사한곳을 찾아 외식도 해보고 아내가 갖고 싶다는 고가의 선물도 이날만큼은 서슴치 않고 사주기도 했지만
몇 년이 더 흐르다 보니 이게 쉽게 잊혀지는 겁니다.
신혼초의 꿈같았던 기억들도 어느덧 시들해지고 결혼기념일 때문에 티격태격 다투는 일까지 심심찮게 생깁니다.
실제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당시의 결혼기념일,
무엇인가 대단한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었던 아내는 기념일 저녁이면 시치미 뚝 떼고 물어옵니다.
"자기!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얼굴에는 이미 의미심장한 기운이 가득하고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맹수의 눈빛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정도 되면 번개가 머리를 스쳐가듯 아차! 싶습니다.
"어? 어~~그게 말이야....;;"
이미 때는 늦어 버려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립니다.
이럴 때는 구차한 변명보다는 그냥 잊어버린 것을 인정하고 근사하게 저녁 한 끼 사주는 것이 현명한 대처 방법입니다.
하지만 늘 불만인 것은 '왜 꼭 결혼기념일은 남자가 챙겨야 하는지' 입니다.
남으로 만나 둘이서 결혼을 했으니 축하를 받아야 한다면 둘이서 같이 축하를 받아야 하는데,
언제나 남자가 여자한테 생일 축하하듯 챙겨주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세태는 저희 부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부부에게서도 일어나는 현상인데,
왜 그런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도 아내에게 "결혼기념일 축하해!" 라는 축하의 인사를 건네면서도
저는 아내에게서 단 한번도 이런 축하를 받아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있다면 보험회사나 카드회사에서 날라 오는 문자메세지가 전부였습니다.
이제는 블로그를 통해 이렇게 공개를 하게 됐으니 블로그 지인들로부터도 축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월14일은 발렌타인데이, 3월14일은 화이트데이, 공교롭게도 1월14일은 결혼기념일입니다.
대망의 결혼 15주년이 되는 날이지요.
몇 년 전에는 이벤트 회사에 신청을 하여 아침 일찍 꽃다발과 함께 케익을 배달시켜
잠이 덜 깬 아내를 감동시켜 주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아내가 이런 것을 싫어합니다.
한마디로 돈이 아깝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결혼기념일입니다.
이런 소리한다고 팔불출이란 소리 들을지 모르겠지만 집안이 언제나 활기차고 웃음꽃이 피게 하려면 일단 아내의 기분이 좋아야 합니다.
돈 아깝게 선물 같은거 사지 말라는 아내,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지난해에는 은근슬쩍 돈 봉투를 호주머니에 넣어주며
사고 싶은 것 사라고 했더니 못이기는 척 하면서도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올해도 미리 준비를 해야할 듯합니다.
글에서는 조금 투정을 부려봤지만.....
결혼으로 인해 가장 많은 희생을 하는 쪽은 아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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