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멋스런 제주

제주해녀가 반드시 세계유산에 올라야 하는 이유

by 광제 2013. 8. 27.
반응형



제주해녀가 반드시 세계유산에 올라야 하는 이유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일본해녀는 강력추진, 제주해녀는 글쎄...
 
어머니는 제주에서 태어난 것이 죄인이라고 시간만 나면 말씀하셨습니다.
바람과 돌이 많아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 진통제에 의지한 채, 깊고 차디찬 바다에서 한평생을 살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아침시간, 어머니는 학교로 향하는 저를 붙잡고 항상 당부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놀당, 네 시 되면 개껏이로 오라 이~~!"

학교 갔다 와서 놀다가 4시가 되면 개껏이로 와달라는 말입니다.
'개껏이'는 바닷가를 이르는 제주어입니다.
물질을 해서 잡아 올린 해산물이 너무 무거워서 거들어 달라는 소리입니다.

아이를 낳고서도 쉴 틈도 없이 불과 삼일만 지나면 물질에 나섰고
섬 지방 특유의 세찬 바닷바람을 평생 가슴으로 받아 내셨던 제주의 어머니세대.

제주에서 나서 제주에서 자란 해녀 어머니, 그리고 우리가족...
바닷가와 물질에 얽힌 일화를 떼어 놓고는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없을 듯합니다.
바다에서 모질게 한평생을 보내신 어머니는 이제 세상을 떠나시고,
환갑을 훌쩍 넘긴 누님 두 분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지금도 활발하게 물질을 하고 계십니다. 

40여 년 전, 동네의 바다는 휘~~~~~~유~~~~하고 뿜어져 나오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그칠 줄 모르는,
아주 생동감이 넘치는 그러한 바다였습니다.
마을의 바닷가 어귀는 오후4~5시경만 되면 물질을 마친 해녀들의 길게 늘어선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곤 했었지요.


사진-해녀박물관 소장

제주도 사람들 모두의 가슴 속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해녀 어머니의 추억들을 이제는 영원히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해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70년대에 1만4천명에 달하던 제주의 해녀들이 이제는 불과 4천명 남짓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중에서도 60대 이상 고령자가 80%이상 이라는 것,
이들이 은퇴를 하기 시작하는 10여년 후에는 급속하게 해녀의 숫자가 줄어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20년 뒤에는 천명 미만으로 줄어들어 해녀를 보려면 박물관에야 가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 2006년에는 해녀박물관을 건립하고
그 이듬해 제주해녀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추진을 하게 됩니다.
제주해녀와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아마(海女)' 라고 부르는 해녀문화가 존재하고 비슷한 위기와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선 활발한 추진운동, 제주도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존재하는 해녀,
세계유산으로 등재시켜 전 세계에 알리려고 한일양국이 공동 추진했던 해녀문화,
하지만 제주도에서 조금 안일하게 대처하는 사이, 일본에서는 단독으로 이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의 NHK 아침드라마 'あまちゃん(아마짱)' 시청률 20%를 넘기는 인기 속에 해녀들의 인기도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해녀는 제주해녀의 비해 숫자가 절반 수준,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이번기회에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칫 우리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사이에 일본에서 유네스코 유산에 등록되고 나면 우리는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젖먹이를 데리고 물진에 나섰던 제주해녀. 사진-서재철

제주해녀는 살아있는 제주의 역사입니다.
고무로 된 잠수복이 없던 시절에도 얇은 무명옷 하나만 입고 일 년 열두 달 차디찬 바닷물에 뛰어 들었던 해녀,
겨울바다에서 물질을 끝낸 해녀들은 불턱(바닷가에 불을 피워놓는 공간)에 모여앉아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던 것이 유일한 휴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불턱에서의 공동체의식은 일제강점기 일제수탈에 맞선 제주 항일운동의 원천이기도 하였습니다.

제주도가 일제의 무자비한 수탈로 신음할 때,
제주 동부지역의 해녀들이 시발점이 되어 들고 일어선 제주해녀의 항일투쟁,
이 투쟁은 제주항일운동 사상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기도 했지만, 어민이면서 여성이 주도한 전국최대규모의 항일투쟁이기도 했습니다.
일제의 억압과 제주해녀의 항일.....
유네스코세계무형문화유산, 일본의 아마에게 빼앗겨선 절대로 안 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도정보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진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에 쏟아 부었던 제주도정의 노력을 많은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줬었지요.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그리고 제주해녀의 유네스코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선 후자가 훨씬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제주도정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시민들은 벌써 발벗고 나섰습니다.
일본 해녀 유네스코 단독 등재 추진 소식을 듣고,
시민들이 주축이 된 서귀포시SNS서포터즈(회장 문동진)에는 제주해녀를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하여
페이스북을 통해 응원페이지를 만들고 각계각층의 관심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중입니다.
2014년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날까지 계속해서 응원참여를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관련페이스북페이지= http://www.facebook.com/jejusumbisori/

어려움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가 되려면 일단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장은 국가가 지정하는 문화재로 지정이 되야 하는데, 무형의 유산인 경우는 이를 전승할 전승자가 필요합니다.
제주해녀의 경우는 현재 누구 한명을 선정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는데, 이 법률 또한 개정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당당하게 제주해녀가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제주해녀.....
언제부터 제주도에 해녀가 생겼는지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문헌으로는 1105년(고려 숙종 10) 탐라군(耽羅郡)의 구당사(勾當使)로 부임한 윤응균이
"해녀들의 나체 조업을 금한다."는 금지령을 내린 기록과 
1629년 이건의 『제주풍토기』,『규창집』이란 문헌에 "潛女(잠녀)"라고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최고900여년~최소38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제주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해녀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의 표상이며, 이 시대를 땀 흘리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모든 이의 근본입니다.
사면이 바다인 제주도, 섬 속 바다에서 한평생을 세찬바람과 싸우며 모질도록 삶을 개척해왔던 제주도의 해녀,
거친 파도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모진외세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으며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제주의 땅과 바다를 지켜냈습니다.

"바다에서만 사난, 벌이가 그거라, 벌어당 아이덜 키우곡 물질 아니민 공부도 못시켜."

(바다에서만 사니까, 돈벌이가 그거밖에 없어, 돈 벌어다 애들 키우고, 물질 아니면 아이들 공부도 못시켰다는 이야기) 

서귀포시 법환동에서 태어나 아홉 살부터 물질을 하며 살아온 이제 92세의 해녀, 양정열 할머니의 넋두리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힘겨운 삶을 이겨냈던 이 땅과 바다의 어머니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제주사람들을 길러온 정신의 뿌리이자 지금의 제주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제주해녀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반드시 등재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주해녀가 반드시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음아고라에도 응원페이지가 개설되었습니다.
부디 찾아주시어 힘찬응원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응원페이지 바로가기

추천도 꾸욱~!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