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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아빠도 놀란 딸애의 고단수 사랑법

by 광제 201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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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놀란 딸애의 고단수 사랑법

지난 일요일 저녁 무렵, 초인종이 울리고 누군가 다녀간 듯 하더니 잠시 후 집안이 시끌벅적합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거실로 나가보니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애가 사탕꾸러미를 받아들고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화이트데이를 맞아 누군가가 사탕선물을 주고 간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러고 보니 오늘이 화이트데이였습니다. 하마터면 그냥 넘어갈 뻔 했네요.

내용물이 뭐가 들었을까 궁금해서 까보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딸애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한참을 만지작거리고 있기만 합니다. 얼굴은 볼그랗게 상기된 채 말입니다. 엄마와 오빠, 누구의 접근도 차단한 채 애지중지 다루고 있는 사탕꾸러미. 구경 좀 하자고 했더니 아빠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눈을 깜빡이며 눈치를 주는 아내, 가만두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저 사탕 누가 주고 간거야?"

"옆 동에 사는 같은 반 친구 철민이가 좀 전에 주고 갔어."

"흠.....그래??"

아빠인 제가 보기에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 밖에 안 된 녀석들이 사탕을 선물하고 받고 그러는 것이 조금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뭐라 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지금 딸애의 기분이 어떠한지 은근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래서 딸애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공주님 기분 째지겠는데..그러데 철민이가 왜 사탕을 선물한거래?"

"글쎄..나도 모르겠어 아빠~! 나는 철민이를 좋아하지도 않는데..이상하네?"

"그래?? 그럼 철민이 혼자 우리 공주님을 좋아하는 거란 말야?"

"그런가봐 아빠~! 나는 얘 싫은데....."

이건 또 무슨 경우랍니까. 사탕을 받아 든 딸애의 표정으로 봐서는 분명 좋아라 하는 모습인데 아빠에게는 사탕선물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듯 뻘쭘한 표정까지 지어보입니다. 멀찌감치서 가만히 보고 있던 아내가 눈짓으로 나를 부릅니다.
 
"쟤가 싫은 게 아니야...가만히 두고봐..."

"싫다는데 싫은 게 아니라니 그건 또 뭔소리야?"

"쟤가 발렌타인데이 때 철민이 한테 초콜렛을 선물했데.."

"엥? 그럼 뭐야 이건...저 사탕은 단지....흠..."

처음에는 어떤 개구쟁이 녀석이 감히 우리 공주님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이야 라고 상황을 지레 짐작했었는데,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그건 아니었나봅니다. 사탕선물은 지난 발렌타인데이 때, 딸애가 먼저 했다는 것입니다. 이치로 따진다면 결론적으로 철민이는 한달전 받은 초콜렛에 대한 화답이라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철민이에게 초콜렛을 선물한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조차도 철민이 엄마에게 전해 들어서 알게 됐다는데, 아내의 말을 듣고 나서야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대충 윤곽이 드러납니다. 가족들에게는 철민이가 자기를 좋아한 나머지 사탕을 주고 간 것이며 정작 사탕을 받은 기분도 별로라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딸애. 가만 보니 자기가 철민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안 그런 척 앙큼하게 시치미 떼며 나름대로 자기중심으로 상황을 만들어 가네요. 이런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쳐 가는 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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