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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귀가 늦어 찾아 나선 딸, 이유를 알고 보니

by 광제 201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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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늦어 찾아 나선 딸, 이유를 알고 보니

학교 갔던 딸애가 집으로 들어올 시간이 한참이 지났는데도 들어오질 않습니다. 아들 녀석 같으면야 잠깐 친구들하고 노느라 늦어지는 거겠지 하지만, 딸애의 늦은 귀가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요즘 사회가 어지간히 뒤숭숭해서 말입니다. 전화라도 있으면 해보기라도 할 텐데, 안절부절 못하던 아내가 결국은 찾아 나서고 집에서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급한 연락에 대비하여 제가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흐른 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뛰쳐나갔습니다. 딸애가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활짝 웃는 딸애의 얼굴을 보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딸애를 찾아 나간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근처에 있었는지 바로 쫓아 들어왔습니다. 딸애가 들어 온 것에 안도하는 저와는 다르게 아내는 신경이 바짝 곤두 서 있는 모습입니다.

타들어가는 목을 냉수로 축이고는 왜 늦었냐고 딸애에게 다그치는 아내. 다급한 상황을 짐작했는지 딸애도 바짝 긴장하는 눈치입니다.

"대체 어딜 갔다 늦은 거야? 얼마나 찾았는지 알어?"

"저기~~저쪽 계단에 사는 아줌마 때문에...."

"어떤 아줌마? 그 아줌마가 왜?"

"그 아줌마가 케잌을 사준다고 해서 기다리다 늦었단 말야.."

"뭐야? 그 아줌마가 왜 너한테 케잌을 사주는데?"

경황이 없어 미처 살피지 못했는데 그러고 보니 늦게 들어온 딸애의 손에 케이크가 들려 있었습니다. 딸애의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계단에 살고 있는 얼굴도 모르는 아줌마가 케이크를 사줬다고 하는데, 케이크를 사러 간 동안 그 아줌마의 집에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 시간이 가까워 오도록 다른 집에 있다가 자세한 이유도 모른 채 들고 들어온 케이크. 문제는 모른 사람이 뭐 사준다고 하면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고 가르쳐 왔던 상황이라 더욱 문제가 심각해 보입니다.


그 아줌마의 집이 어디냐며 딸애의 손을 잡고 따라 나섰습니다. 어떠한 의도가 있었는지 최소한 이유는 알아야 했습니다. 아내와 나 그리고 딸애, 이렇게 셋이서 케이크를 들고는 그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놀란 눈을 한 채 현관문을 여는 아주머니. 이미 얼굴을 아는 듯 딸애에게는 반가운 인사를 합니다. "어~ 너 왔구나..에고 이쁜 것.." 다급하게 찾아온 우리 둘의 입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주머니는 딸애의 머리를 쓰다듬기만 합니다.

"우리 딸이 학교에서 한 시간이나 늦게 집에 들어 왔는데, 이집에 있었다면서요?"

"아~!걱정하셨구나..네 우리집에 있었어요..잠깐 들어오세요.."

따지러 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는 의외로 태연하면서 차분한 어조로 집안으로 들오라며 손짓을 합니다. 잠깐 들어와 차라도 한잔 하며 말씀드린다는데. 하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아주머니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낮 시간이라 깜빡 졸았다고 합니다. 졸다가 초인종소리에 놀래 잠이 깬 아주머니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자신의 5살짜리 딸애가 얼굴도 모르는 여자애의 손을 잡고는 울먹이며 집안으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데리러 나갔어야 할 딸애를 깜빡 조는 바람에 나가지 못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여 어린이집 교사에게 전화를 해봤답니다.

어린이집 차량은 단지내 주차장에서 5분여를 기다려도 아주머니가 나오지 않자 애들 데리고 그냥 가려고 하는데, 애가 혼자서도 집에 갈수 있다며 그냥 집으로 뛰어 가더랍니다. 그래서 별일 있겠나 싶어 그냥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애가 자기 집으로 찾아 들어갔으면 아무 일 없었는데, 문제는 계단 입구에서 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입구를 못 찾아서 그랬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마침 이 광경을 집으로 들어오던 저희 딸애가 목격을 하고는 집으로 데려다 준 것인데, 아주머니가 보기에는 우리애가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고 합니다.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아 잠시 들어오게 한 뒤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어보니 케이크라고 하여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하곤 딸애가 좋아하는 케잌을 사다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흐른 시간이 한 시간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걱정을 끼쳐드리게 돼서 연신 죄송하다는 아주머니. 얼굴을 붉히며 성급히 초인종을 눌러댔던 우리 둘의 모습에 괜히 미안해집니다. 들고 갔던 케잌은 다시 딸애의 손에 들려진 채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따라 딸애가 예전보다 부쩍 커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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